▲결과적으로 제주의 도시개발사업은 반환경적 주택가 조성과 대규모 아파트 단지 건설에 집중돼 도시불균형과 난개발을 초래하고 있다. /사진=한라일보 DB
건축계획심의제 사업성 추구하는 수단으로 전락
주택·상가 혼재… 대규모 아파트단지·승용차 우선
지구단위계획으로 건축규제한 일산 신도시와 대조
난개발을 막아 쾌적한 도시환경을 조성하고 녹색도시를 구현하기 위해 진행 중인 도심권 도시개발사업이 사실상 마무리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개발에 앞서 당위성을 제시하기 위한 각종 연구용역이 시행됐던 것과 달리 정작 개발 이후에는 주민 삶의 질의 변화와 지역경제 활성화 등에 대한 분석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결국 효과 분석도 없이 청사진만 제시한 채 양적 팽창만 추구해온 셈이다. 향후 진행될 것으로 보이는 구도심 재정비사업과 각종 택지개발 등을 위해서는 그동안 진행해온 도시개발사업에 대한 진단이 앞서야 한다.
▶도시개발사업 현황=제주시는 지난 50년대부터 지금까지 20여개 지구에 대한 도시개발사업을 완료했다. 2000년대 들어서만도 이도2지구와 시민복지타운이 완료됐으며, 아라지구와 노형2지구는 현재 진행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최근 분양을 끝낸 아라지구의 제주아라스위첸 분양가는 3.3㎡당 720만원으로 그동안 제주도에서 분양된 아파트 중 가장 높은 가격을 기록했다. 그러나 분양 두 달만에 일부를 제외하곤 사실상 전 세대가 분양돼 아파트에 대한 제주도민의 높은 수요 욕구를 보여줬다.
지난해부터 도시개발사업이 본격화된 노형2지구 역시 높은 지가로 분양가 또한 고공행진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신제주 생활권 중심에 위치한데다 상권과 학군 등 입지여건이 좋아 사업 시작 전부터 체비지 매각 시점을 문의하는 전화가 쇄도하기도 했다.
▲친환경생태도시로 탈바꿈한 경기도 일산신도시 마두동 주택가. 지구단위계획을 통해 2층 이하 주택 건설만 허용하고, 근린생활시설은 불허하고 있다. ·/사진=Daum지도 로드뷰
▶도시발전 불균형·난개발=제주지역에서 진행되는 도시개발사업은 도시개발사업에 필요한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대부분 환지방식(토지주들이 개발지역 내 땅을 내놓고 일정 지분을 갖는 토지주 개발방식)에 의한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시행되고 있다. 반면 현재 진행 중인 삼화지구를 비롯해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토공)에 의해 진행된 일도·연동·화북·노형지구는 토지를 모두 사들여 개발하는 택지개발 방식으로 시행됐다. 사업방식은 다르지만 토지 이용의 효율성을 높이고 주거생활을 향상시켜 경제 발전을 도모한다는 동일한 목적을 지향하고 있다.
문제는 기존 취락을 정비하고 무질서한 난개발을 방지한다는 당초 계획과 달리 한결같이 1층에는 상가가 들어선 2~3층 규모의 주택가를 조성해 상가인지 주택가인지 구분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땅값이 높은 부지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다 보니 아파트 분양가격을 상승시키고 있다. 무엇보다 제주시 신도심권 중심에 도시개발이 집중되면서 읍면지역은 물론 원도심권의 공동화를 더욱 가속화시키는 문제가 심각하다.
결국 행정당국은 노형2지구를 도심권 마지막 도시개발사업지구라고 밝혀 도시개발사업이 오히려 도시발전의 불균형과 난개발을 불러왔음을 인정했다.
▶허점투성이 완벽한 제도=제주특별자치도는 지난 2006년 7월 특별자치도를 출범시키면서 '제주특별법'을 통해 건축계획심의제도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제주지역에서는 도지사가 지정·공고하는 구역 안에 건축물을 건축하려면 건축계획에 대한 형태·색채 및 도로 등에 대해 도건축위원회의 심의를 받은 후 기본설계를 해야 한다. 사실상 모든 건축물이 건축심의 대상이 될 수 있어 환경친화적 도시경관을 조성할 수 있는 완벽한 제도가 도입된 것이다.
그러나 모든 건축물이 건축심의 대상인 제주시 연동신시가지와 건축심의 대상 건축물이 없는 경기도 일산신도시 마두동의 비교 결과는 건축계획 심의 제도의 필요성에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녹지공간을 찾기 힘들 만큼 삭막하고, 상가와 주택가가 뒤섞인데다 이면도로에 가득히 들어선 주차차량은 제주시 연동이나 구도심권이 크게 다를 게 없다. 반면 일산신도시는 곳곳에 녹지공간과 주차공간을 조성하고, 근린생활시설이 들어서지 않은 다양한 형태의 주택가를 형성했다. 건축계획심의제도 없이도 건축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 친환경생태도시로 탈바꿈한 사례다.
이같은 현상은 제주와 일산의 지구단위계획 수립 수준의 차이에서 비롯됐다. 지난 2000년 7월 도시계획법이 개정되면서 도입된 지구단위계획은 구역 내 용도구역지구계획과 도시기반시설계획, 건축물의 규모와 형태, 미관, 경관계획 등의 기준을 제시한다.
▲주택가인지 상가인지 구분하기 힘든 제주시 연동 주택가. 제주특별법을 통해 전국에서는 유일하게 모든 건축물의 형태와 색채를 규제할 수 있는 경관계획 심의 제도를 도입했지만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사업성 우선·경관 배제=제주도 지구단위계획은 연동신시가지에 대해 3층 이내의 건축과 함께 1층에는 근린생활시설 입점을 허용하고 있다. 반면 일산신도시는 2층 이내의 건축만 허용하고 근린생활시설 입점을 불허하고 있다. 그마저도 독립된 출입구는 2개 이상 설치를 할 수 없게 해 2층으로 이어지는 외부계단을 만들 수 없다. 보다 더 완벽한 제도를 도입한 제주도가 실제로는 다른 지역보다 도심경관이 후퇴될 수밖에 없는 결정적 이유다.
특히 택지개발을 진행하는 토공은 물론이고 토지구획정리를 시행하는 행정당국도 이같은 내용의 지구단위계획을 입안하고 있다. 정해진 시간 안에 빨리 팔아야 적자를 피해 사업성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축계획심의를 아무리 강화해도 지구단위계획 수립 단계에서 이같은 계획을 포함시키지 않는다면 제주특별법상 건축계획심의제도는 이처럼 사업성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래서 국제자유도시 이미지에 걸맞는 도시계획을 제시하고, 제주문화를 고려한 건축의 균형적 배치계획과 경관유지를 통해 제주 고유성을 회복하기 위해 수립했다는 지구단위계획은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이정민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정책자문위원(도시계획 박사)은 "제주의 도시개발사업은 사업성만을 고려한 나머지 양적인 주택공급과 승용차 위주로 진행됐다"며 "제주도와 일산의 비교는 완벽한 제도를 도입해도 지구단위계획 수준에 따라 결과물이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