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배움터를 가다/폐교의 어제와 오늘](10)동광분교(1967~2009)

[옛 배움터를 가다/폐교의 어제와 오늘](10)동광분교(1967~2009)
안개낀 것처럼 캄캄하던 시절 온 몸으로 학교를 짓다
  • 입력 : 2011. 08.23(화) 00:00
  • 진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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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영씨가 찍은 동광분교 마지막 수업.

4·3으로 무동이왓 등 5개 마을 파괴 후 힘겹게 동광리 재건
통폐합 단골 결국 서광초 흡수… "학교터는 주민 소득 위해"

"안개가 낀 것처럼 캄캄하던 시절이었다. 누구에게 손을 벌릴 생각도 안하고 방법도 몰랐다. 주민들이 오직 한 몸으로 학교를 세운 셈이다."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옛 동광분교장 어귀 팽나무 아래 쉼터에서 만난 신원숙씨(78·동광리)는 동광분교장이 설립되던 시절의 이야기를 묻자 그렇게 말했다.

▶곡괭이·삽 들고 분교장 탄생시켜

동광리는 4·3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마을이다. 제주도와 제주4·3연구소가 펴낸 '제주4·3유적'(2004)을 보자. 동광리는 4·3 당시 지금의 동광육거리를 중심으로 무동이왓, 조수궤, 사장밧, 간장리, 삼밧구석 등 5개의 자연마을이 있었다. 무동이왓이 130여가구로 가장 컸다. 하지만 1948년 11월 중순 이후 중산간마을에 대한 토벌대의 초토화 작전이 이루어지면서 마을은 모두 파괴되고, 주민들의 희생이 잇따랐다.

마을 복구가 이루어진 해는 1953년 무렵이다. 옛 동광분교장이 들어선 간장리를 주축으로 마을이 복구되기 시작했다. 1969년 양잠개척단지가 조성됐고, 1986년에는 농촌취락구조사업으로 석교동이 만들어졌다. 1988년에는 안덕지구 문화마을 조성사업으로 문화마을이 들어섰다. 1981년 82가구 402명이던 마을 인구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근래엔 178세대 495명에 이른다. 청년층과 장년층 인구가 두텁다.

▲무동이왓에 세워진 '잃어버린 마을'표석.



학교 설립은 마을 재건이후 10여년이 흘러 성사됐다. 4·3의 광풍을 피해 뿔뿔이 흩어졌던 주민들은 자연스레 학교 재건운동에 뜻을 모은다. 동광리는 이미 1930년에 동광개량서당이 문을 열었고 그것은 1939년 5월 동광간이학교, 1945년 4월 동광공립학교로 맥을 잇는다. 동광간이학교는 당시 안덕공립보통학교에 이은 안덕 지역의 초등교육기관으로 통학 학생들이 창천, 덕수, 상천은 물론 색달리까지 미쳤다.

4·3의 폐허를 딛고 일어서기에도 힘겨운 주민들이었지만 교육에 대한 열망은 내려놓지 않았다. 다른 마을 초등학교로 향하는 통학 거리가 너무 먼데다 길도 험해 날씨가 거친 날에는 아예 등교를 포기하는 일이 있었다. 취학 연령을 넘기는 아이들도 하나둘 늘어났다. 이를 벗어나려는 노력이 이어졌고 마침내 1967년 저학년 대상 동광분교장 설립 인가가 이루어졌다.

▶재일동포 현금 지원 개교에 도움

개교까지 어려움이 많았다. 마을주민들이 저마다 곡괭이와 삽을 들고 학교 공사에 뛰어들었지만 예산이 턱없이 모자랐다. 신원숙씨는 기초공사를 해놓고 돈이 없어 마을 사람들이 일손을 놓았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양순석 강두화 등 동광리 출신 재일동포 2명이 현금을 보탰다. 옛 동광분교장 입구엔 이들의 공적을 기리는 기념비가 나란하다. 마을에서는 이들만이 아니라 재일동포 양순호도 현금을 지원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동광분교장이 헐리기 전 모습으로 오태영씨가 촬영했다.

▲동광녹색농촌체험마을 방문자센터로 바뀐 분교장. /사진=진선희기자

어렵사리 탄생한 학교였지만 마라·삼달분교와 함께 서귀포시 지역의 분교로 남아있던 동광분교는 소규모 학교 통폐합 대상으로 곧잘 오르내렸다. 지역 주민들은 통폐합에 동의할 수 없었다. 1998년 제주도교육청에 진정서를 냈다. 청년회도 학생수 확보 운동에 나섰다. 2005년 다시 통폐합이 수면위로 떠올랐지만 '안된다'고 했다. 제주신화역사공원, 영어교육도시 등 안덕·대정 일대 대규모 개발 사업에 기대를 건 일부 주민들은 머잖아 인구가 증가할 것으로 봤다. 1980년대 중반에도 그랬다. 동광분교장에서 발간한 '동광리향토지'(1986)는 그해 1~3학년 15명의 단급학교 규모를 언급하며 "산업도로와 고속화도로 개통에 따른 인구 증가가 전망되어 발전이 기대된다"고 했다.

10여년에 걸친 존폐 논란은 결국 2009년 3월 통폐합을 앞두고 동광분교장 폐교에 현실적으로 대처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서광초등학교 동광분교장 통폐합 관련 대책위원회'는 분교장 시설을 체험학습실로 활용하는 등 주민 소득사업 연계를 위한 실질적 방안을 모색했다. 동광분교장은 유치원과 초등학교 1~2학년을 두는 'K-2'학교를 시도해 폐교를 막으려 했지만 무산됐었다.

[ 동광4·3영상물제작위 오태영씨 ] 마지막 수업을 기록하다

동광리4·3영상물제작위원회에서 활동하는 오태영(46·사진)씨는 동광분교장에서 1~3학년을 보냈다. 그는 동광분교의 폐교에 반대했던 이다.

"1~2학년때는 집과 가까운 곳에 학교가 있어야 한다. 낯선 학교생활에 적응해야 하는 아이들에게 안정감을 주기 위해서다. 학생수가 적더라도 학교나 도서관은 동네마다 하나씩 남아있어야 하지 않을까."

동광녹색농촌체험마을 방문자센터 등으로 쓰고 있는 이국적 풍광의 동광분교 건물은 2001년 10월 신축이 이루어졌다. 슬레이트지붕에 시멘트를 바른 돌집이었던 학교 건물이 헐린다는 소식을 들은 오씨는 며칠을 드나들며 필름카메라로 그 모습을 기록해놓았다. 그가 찍은 사진엔 옛 교정의 연못, 학교종이 여전히 살아있다.

2009년 2월 마지막 수업이 진행될 때도 카메라를 들고 학교를 찾았다. 교육청 간부 누구하나 발길을 돌리지 않은 쓸쓸한 수업이었지만 오씨는 당시 교사가 학생 7명에게 일일이 편지를 써서 나눠준 일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의 사진 속에는 교사가 현관까지 나와 마지막 수업을 마친 아이들을 배웅하고 있었다.

"학교가 사라져 아쉬움이 컸지만 그래도 녹색농촌체험마을을 통해 지역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어서 다행이다. 동광분교는 동광리 사람들의 공동체가 배어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위한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되는 등 교육의 현장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앞으로 옛 교정을 중심으로 공동체 정신을 키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 개발돼 널리 운영되었으면 한다."

"녹색농촌 휴양지 동광리로 오세요"
배움터 체험마을 방문자센터 변신


동광분교장은 동광녹색농촌체험마을 방문자센터로 변했다. 2009년 3월 폐교 이후 마을에서 10년 장기계약으로 임대해 쓰고 있다.

동광리를 방문하는 이들은 옛 학교에 짐을 풀고 난 뒤 마을로 떠날 채비를 하면 된다. 동광분교 아이들의 꿈이 자라났던 2개의 교실이 청소년 60명을 한번에 수용할 수 있는 숙박 시설로 바뀌었다.

녹색농촌체험마을 프로그램은 마을 일대에 분포한 자원을 바탕으로 땅을 일궜던 옛 사람들의 삶에서 놀거리와 즐길 거리를 찾는 현대인들을 위한 레저까지 다양하다. 종류만 수십가지에 이른다. 조랑말 체험활동, 곶자왈 탐사, 청정고사리 꺾기, 오름 탐사, 잃어버린 마을 탐사, 굴렁쇠굴리기, 감자 범벅만들기, 대나무 활쏘기, 야외 영화감상, 승마 체험, 태양광그린빌리지 탐방 등이 마련됐다.

이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동광리에 발을 디디는 이들은 한해 3000명에 가깝다. 지난해에도 도내외 2929명이 동광녹색농촌체험마을을 둘러봤는데 이중 968명이 방문자센터에 있는 숙소에 머물렀다.

동광분교장은 지역 주민들이 가꾸고 다듬어온 공간이다. 2001년에는 주민 숙원사업이던 푸르른 잔디운동장을 크게 늘렸다. 이즈음엔 조명 시설을 보강해 야간 축구장을 조성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이종필 동광녹색농촌체험마을 사무장은 "동광분교장 자리의 방문자센터 등 내방객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며 "8월중에는 마을안 2만여평 규모의 체험장 부지에 메밀씨앗을 뿌려 이를 활용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동광리는 지난해 6월 '살기좋은 생태문화마을'을 비전으로 장기발전 계획을 세웠다. 옛 배움터가 그 중심에 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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