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공장 건설하면서 옛 풍광 훼손단애 암반·흙 이용 산지항 확장공사
이번 글은 1910년대~1930년대 제주성 밖의 산지천 하구와 금산언덕, 사라봉 서쪽 기슭, 즉 산지항 동쪽 단애를 담은 다케노 세이기치의 그림을 당시 관련 사진들과 소개하면서 그 일대의 공간 역사를 보다 입체적으로 눈여겨보고자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당시 제주성안에 살던 다케노 나이 10세. 그 전후 그의 기억의 풍경은 우선 우리를 그림①로 초대한다. 이곳은 현재의 공간적 범위로는 산지교와 용진교 사이 산지천 동쪽 부근이다. 무엇보다도 그림 우측 산지천을 가로질러 일명 금산언덕으로 뻗은 산길(◆표시)이 눈에 띈다. 다케노는 그림① 뒷면에 그 산길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발전소(빨간색○)가 설치되고 오른쪽 일대(파란색□)에는 용천수가 솟아 산지천 방향으로 흘러 내리는 한편, 그 근방에는 단추공장(다케노는 도내 해안지방은 전복, 소라류의 대생산지 임을 언급)이 들어섰다고 적고 있다. 즉 이곳은 지금의 금산언덕, 속칭 지장깍 동네이다.

① 1910년경 제주도 읍내 산지천 하구와 금산언덕 일대(다케노 세이기치 그림, 25x36cm)
필자의 소견으로는 지금까지 이 각도에서 100여 년 전 금산언덕 일대를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진 또는 그림은 없었다. 다케노 그림은 따라서 바로 그 누락된 부분을 시각적으로 보충하고 있다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산지천을 가로질러 금산언덕으로 올라가는 지름길(현재, 고서흥 공덕비가 세워진 길의 초입), 제주성 밖 금산물이 흘러 나와 산지천으로 흐르는 모습, 산지천 하구의 민가와 해안 풍경 등을 그림은 담고 있다.
이 그림을 접하면서 이는 흥미와 호기심은 필자로 하여금 최근에 다시 이 일대로 발길을 돌리게 했다. 물론 현 시점, 그 장소에 가서 그림의 풍광을 그대로 온전히 맛볼 수는 없지만, 그림 속 장소 내지 건물들의 파편에 기대어 잠시나마 그들 각각의 장소성과 주변 환경과의 필연성 내지 관계성을 가늠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럴 땐 우연히 발부리에 체이는 돌멩이 하나에도 그 역사의 숨결이 느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일대 답사는 내게 기대 이상의 많은 흔적들을 남겨주었다. 그림① 금산언덕 일대(파란색□)는 비록 지금은 산기슭이 깎여 평평한 지형의 '금산수원지'로 정비되었지만, 다행히 그림①에서 표시된 용천수(지장깍물, 광대물) 표석에서부터 '산포조어' 관망지점, 단추공장, 거울공장 터 등을 추정한 다양한 표석이 현재 그 일대에 세워진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는 역사의 무게를 작은 표석으로나마 전하고자 하는 건입동 마을 사람들의 남다른 역사의식의 발로이리란 생각도 하였다.

② 1890년대 산지천 하구와 옛 건입포('사진으로 본 100년 전의 한국', 가톨릭출판사, 1986년)

③ 1920년대~30년대 사라봉 서쪽 기슭, 즉 산지항 동쪽 단애 (다케노 세이기치 그림, 17.5x74cm)
한편, 그림①에서 산지천 하구(파란색○)로 눈을 돌려보자. 그리고 여기에 해당하는 지점은 사진②와 그림④의 파란색○에 해당한다. 여기서 보는 것처럼 산지천은 한라산에서 뻗어내려 지금처럼 일직선으로 바다로 흘러가는 구도가 아니라, 거의 90° 가까운 각도로 동쪽으로 꺾여 흐르다 바다로 흘러 내렸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하구 모퉁이에는 민가들이 들어서있다(그림①, 사진② 초록색○). 그 지점에서 민가를 지나 해안가 동쪽으로 뻗어 나가면 그림③의 경관이 펼쳐진다. 다시 말하면 이 그림은 금산언덕 해안 단애가 마치 병풍처럼 사라봉까지 이어진 경관을 묘사한 것이다. 솔직히 필자가 이 그림을 처음 접했을 땐 그림 판독이 불가능했었다. 그만큼 필자 자신이 현대적 공간 감각에 익숙해졌다는 말이다. 그런데 마침 그림④와 사진⑥이 그림③을 해독하는 단서가 되었다. 물론 이에 대한 역사적 언급은 '건입동지'(2008년) 등에도 나온다. 하지만 산지항을 형성했던 당시 해안 풍광을 이처럼 시각적으로 뒷받침하는 자료는 볼 수 없었다. 다케노는 그림④와 같이 이 일대 약도와 이 일대 단애를 이루었던 해안가를 그리면서, 그것이 나중에는 매립되고 본격적인 근대 산지항의 면모를 갖춤과 동시에 나중엔 주정공장 등이 들어서면서 이러한 풍광이 사라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④ 1920년대 후반 산지천 하구와 사라봉 서쪽 기슭(금산 일대 단애) 매립 약도(다케노 그림 ③의 뒷면 일부)

⑤ 1927년 전후 산지항 항만공사기 산지항 동쪽 단애 암반 제거 광경('20세기 제주시', 제주시, 2003년 재판)
"절벽 아래 해안에는 검은 용암바위가 열병을 지고, 돔, 볼락, 키사미 등이 잡히는 암벽 낚시터로도 적합했다. (중략)어린 시절에는 이들 바위지대에 자주 놀러가곤 했었다. 그러나 소화14년~16년(1939년~1941년)이 되면서, 이곳 바위지대는 절벽 위의 밭과 황무지를 깎아 무너뜨려 평평히 만들고, 위의 바위지대 부근에도 그 흙을 운반해서 평지로 만들었다. 그곳에 고구마를 원료로 한 주정공장을 건설했기 때문에 옛날 그 풍광이 눈에 띄게 훼손되고, 낚시 등도 불가능하게 되었다."(그림④ 뒷면, 다케노 글)
주지하다시피 이곳 해안 단애에서 깎아내린 다량의 암반과 흙은 1928년 산지항 확장공사에 이용되었다. 사진⑤는 사람들이 산지항 동쪽 금산 일대 해안 단애 암반과 흙을 파내고 있는 장면이다. 지면엔 그것들을 운반할 요량으로 '도라쿠' 선로(광차궤도)가 깔려있다. 1928년 5월 토목기사 가지야마 아사지로가 내도하여 서부두 쪽 방파제 건설 현장을 시찰할 당시만 해도, 이 일대 동쪽 해안 단애가 깎이고 거기서 캐낸 암반과 흙이 광차궤도로 한창 운반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濟州島紀行' '조선' 160호, 1928년 9월호).

⑥ 1935년경 건입동 거주 고병민이 촬영한 산지마을('사진으로 보는 제주역사1', 제주특별자치도, 2009년)
'건입동지'에도 산지축항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기록을 전하고 있다. "1928년부터 산지항 확장공사가 이어지는 동안 항구 주변지역은 상전벽해가 됐다. 서부두 쪽으로는 방파제를 쌓고, 동부두 동쪽 지대에는 사라봉 서쪽 기슭이 깎여 나갔으며, 사라봉 등대 서북쪽 '제터' 옆까지 동부두가 확장되었으며, '동부두~법무부 제주출입국관리사무소~고우니모루~일도2동'을 잇는 큰 길이 뚫리기도 했다."
여기서 또 알 수 있는 사실은 다케노 그림③과 사진⑥의 자태를 드러내던 과거 사라봉 일대(금산언덕까지)가 위의 도로 개설로 두 동강 나면서, 언제부터인가 사라봉 등대가 있는 동쪽 일각만이 마치 처음부터 사라봉 원형으로 인식하는 새로운 공간 관념이 싹트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케노의 그림①과 ③은 사라봉이 서쪽으로 길고 완만하게 단애를 이루면서 산지천까지 뻗고, 그것이 당시 포구와 민가의 배경은 물론, 그 너머 금산언덕 기슭에서는 용천수가 나와 산지천으로 흘러내렸던 과거의 산지천 하구 풍광을 사진 이상으로 생생하고 입체적으로 담아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미학자·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