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거장 13명의 참스승
동지와 적에서 다시 친구로
전승과 극복 통해 거장으로
정경화, 조수미, 강수진, 장한나, 몽우 조셉 킴, 고은, 김윤식, 조훈현, 승효상, 이현세, 임권택, 조정래…. 그들은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다. 대부분 그들보다 훨씬 크고 위대한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야 했고 스승과의 투쟁을 통해 스승을 뛰어넘었다.
한기홍의 '거장, 스승을 말하다'는 우리나라 문화계 거장 13명과 오랜 기간 교호하고 취재하며 그들의 경이로운 성장을 촉발하고 도운 계기와 인물을 탐구한 책이다. 스승이면서 동지였고, 동지이면서 적이었던 이들이 탁마과정을 통해 다시 친구가 되는 드라마틱한 과정이 펼쳐진다.
성악가 조수미는 많은 스승에게 음악적 테크닉을 전수받았지만 마에스트로 카라얀이 없었다면 자신의 진정한 재능을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카라얀은 조수미에게 '100년만에 한번 나올 최고의 탤런트'라는 상찬을 내렸다.
건축가 승효상에게 스승 김수근은 뛰어넘기 힘든 거목이었다. 스승과의 토론에서 번번이 깨졌다는 승효상의 처절한 고백을 통해 계승과 진화의 고통을 생생히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승효상은 스승 김수근을 뛰어넘기 위해 평생을 바쳤고 그와 다른 건축세계를 구현하겠다는 일념이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고 믿는다.
시인 고은은 절대 은사와 절대 제자라는 수직적 도제행위를 거부했다. 그는 "오히려 사막과 바다, 대지가 나의 스승"이라는 말로 스승관을 우주론적으로 확장한다. 고은은 효봉스님의 잊을 수 없는 가르침을 어제일처럼 증언하면서도 결국 천지만물이 자신의 문학적 스승이었음을 밝힌다.
천재 프로기사 조훈현에겐 일본 바둑계의 거목 세고에 겐사쿠가 큰 스승이었다. 세고에는 조훈현의 더딘 성장을 염려했던 가족들에게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바둑은 예(藝)이면서 도(道)입니다. 큰 바둑을 담기 위해서는 먼저 큰 그릇을 만들어야 합니다."
영화감독 임권택은 정창화 감독에게 영화 테크닉을 전수받았지만 정작 그가 배운 영화의 정신과 소재의 대부분은 영화 현장과 한국의 근현대사를 통해 습득한 것이다. 온통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스승을 구했지만 결국 임권택 자신이 스스로의 스승임을 알게 된다.
지은이는 "참된 스승이 부재하는 시대라 개탄하지만 실상 부재하는 존재는 '진정한 제자'다. 제자 없는 시대에 참된 스승이 존재할 리 없는 것이다. 거장의 삶, 거장의 스승을 통해 제자의 길을 배워보자는 것이 이 책을 기획한 취지다. 치열하게 노력하는 과정 속에서 좋은 스승은 홀연히 나타난다"고 했다. 리더스하우스. 1만6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