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칼럼] 잡초와 농부

[한라칼럼] 잡초와 농부
  • 입력 : 2015. 06.09(화) 00:00
  • 뉴미디어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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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빗소리. 아직 사회물이 빠지지도 않은 초보 농사꾼에게 비는 무엇보다도 조금은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기회이다. 이런 글도 쓸 수 있기도 해서 비가 싱그럽고 반갑다.

천성이 우둔했지만 다행스럽게 남부럽지 않은 직업을 가지고 30년 간 직장을 다녔다. 정년퇴임한 후 약초농사를 하겠다며 아내와 함께 대지에 곡식을 심고 가꾸며 영등할망을 세 번 맞이하고 보내드렸다.

엊그제 망종이 지나자 태양은 붉은 색에서 하얗게 변하고 농부가 뿌린 씨앗과 모종, 밭, 환삼덩굴과 소리쟁이, 까마중, 쑥, 명아주, 그리고 고들빼기와 서양민들레(개민들레), 서양등골나무, 솔잎미나리, 여뀌와 바랭이에 이르기까지 이름 모를 검질들은 그 햇볕을 받아들이는 광합성 작용을 통해 자라난다. 너무 흔해서 통틀어 잡초라고 하지만 알고 보면 고혈압이나 변비치료, 통증완화 작용 등을 하는 약초다. 그러나 농부가 농사를 짓는 땅에 자라는 이들은 그냥 농사를 방해하는 검질일 뿐이다.

끈질긴 생명력 때문에 이들에 기대어 사는 작은 생명에서 인간까지 이들과 공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그래도 농부는 그들과의 씨름을 멈출 수 없다.

이마와 등줄기에서 흘러내리는 땀이 갈중이를 흥건하게 적셔도 약초들이 튼실하게 자라는 것을 보면 뿌듯함을 느낀다. 땅이 주는 고마움이다.

땅을 품은 자연에 대한 감사와 함께 두려움이 밀려오는 것은 무엇일까.

제주의 땅값이 오르고 실제로 옆 밭은 얼마에 팔렸다는 이야기와 중장비 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리기 때문이다. 토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일지 몰라도 땅에 쏟은 정성과 땀만큼이라도 되돌려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기며 밭을 갈고 퇴비를 주며 농사를 짓는 이들에게는 그리 반가운 소식만은 아닐 터이다.

예전에는 자식 학자금을 위해 땅을 팔면서도 올해 농사를 열심히 짓고 풍년이 들면 다시 그 땅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가냘픈 희망이라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처럼 하루가 멀다 하고 땅값이 오르다 보면 땅은 생산적인 토지가 아니라 땀 흘려 농사를 지어 봐도 그 수확한 농작물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금싸라기 땅으로 변한다.

땅을 판 농민들 가운데 번듯하게 올라간 고층아파트를 사고 기름기가 흐르는 하얀 얼굴에 까만 선글라스를 올려 쓰고 멋진 외제차를 모는 이도 있다.

하지만 많은 농부들은 하루 종일 땅을 일구다가 어두워지면 땀과 먼지에 뒤범벅이 된 검은 얼굴로 석양노을을 보며 아내와 함께 농사용 차량을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제주의 땅값이 오르고 건물이 들어서고 도로가 건설된다고 해서 마냥 좋아할 일이 아니다. 농부들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

극단적이고 비극적인 이야기이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런대로 버티겠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어떠한 일이 일어날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고 끔찍하기까지 하지 않은가. 땅값이 오르면서 농산물 값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까하는 걱정에다 이런 걱정까지 겹치니 땀 흘려 밭을 일구는 농부의 한숨은 깊고 길어지고 있다.

농부는 하늘과 별과 바람과 비, 자연에 기대며 땅을 의지해서 살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인류가 농경생활을 시작한 후 지금까지 아무리 농기계가 발달하고 첨단과학이 우리를 지배한다고 해도 적어도 아직까지는 진리다. <송창우 약초농사꾼·전 제주MBC 보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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