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57) 제주시 우도면 오봉리

[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57) 제주시 우도면 오봉리
다섯 마을이 오손도손 살아가는 아침햇살 눈부신 곳
  • 입력 : 2015. 09.15(화) 00:00
  • 표성준 기자 sjpyo@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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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종달리 지미봉이 보이는 우도면 오봉리의 그림같은 마을 풍경(위)과 제주의 동쪽 끝 아침햇살이 눈부신 마을 전경(아래).

해학을 담고 있는 스토리텔링이 풍부한 성실한 마을
300여년전 마목장 설치… 1800년대 초 사람들 거주
해돋이 장관… 8월까지 139만명 찾은 천혜의 관광지
지역사회 관광수익 창출 위한 ‘숙박형 관광지’ 꿈꿔


오봉리마을위치도

성산 일출봉 북쪽 선착장에서 도항선을 타고 우도로 들어간다는 것은 서귀포시에서 제주시로 이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산읍은 서귀포시고 우도면은 제주시다. 뱃길과 행정은 다른 모양이다. 동서 길이 2.5km, 남북길이 3.54km 우도면 북쪽 마을 오봉리를 찾아가는 뱃길에서 마주한 파도에 부서지는 아침 햇살은 참으로 눈부시다. 우도는 해돋이를 보며 들어가라는 친구의 충고가 고마웠다. 탐라순력도 우도점마(牛島點馬)에 등장하는 말들은 숙종23년 1697년에 국영목장이 설치되어 기르기 시작한 말들이다. 제주목사 이형상이 순력은 1702년. 설치 초기의 모습이 된다. 목장의 용도로 사용되다가 사람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은 역사적 기록으로 헌종 9년 1843년 경작지로 개간을 요청한 것이 받아들여지면서다. 한두영(76) 노인회장이 설명한 설촌유래와 일치하는 대목이다. "저희 6대조께서 구좌읍 월정리에 살다가 우도목장을 밭으로 개간해서 살 수 있다니까 들어와 살기 시작했습니다. 7대조 위에 할아버지 묘들은 월정에 있습니다." 주로 구좌 사람들이 들어와서 생활 영역으로 삼아서였을까? 1986년 4월1일 우도면으로 승격되기 전까지 구좌읍 연평출장소가 우도라는 섬 12개 자연마을을 관장하고 있었다. 오봉리는 우도면으로 승격되면서 북쪽 지역 다섯 개 마을인 주흥, 전흘, 삼양, 상고수동, 하고수동이 모여 이뤄졌다. 다섯 五에 만날 逢이라 함은 대등한 결합을 느끼도록 한 지혜의 산물.

알림의 의무는 같지만 방식을 달리하는 봉수와 등대가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오봉리 속 전흘동(錢屹洞)의 지명 유래가 오봉리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속칭 '돈올레'다. 옛날 상선이 전흘동 앞바다를 지나다 돌풍을 만나 난파하였다. 배는 몰아치는 폭풍에 밀려 전흘동 가까운 해안에 좌초했는데 배에 실려있던 엄청난 엽전들이 바다 밑에 깔렸다. 파도가 칠 때마다 조금씩 해변으로 밀려왔다. 이 동네 사람들은 그 엽전을 주워서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 감태와 같은 떠밀려오는 거름용 해초들이 모두 돈이었다는 것이리라. 밭에 거름으로 쓸 수 있는 해초들이 많이 밀려드는 곳이어서 밭농사 작황을 항시 풍년이 되도록 할 수 있었기에 바다에 밀려드는 해초들을 향하여 먼저 끌어올리는 자가 임자니까 "저 돈 봉그라~!" 하고 외쳤을 것이다. 부촌(富村)의 꿈을 향하여 근면하고 성실한 삶을 유도하는 고단수 스토리텔링으로 받아들였다. 이 밖에도 과부 아들 '송중이' 전설과 같은 슬픈 전설에서부터 이야기꽃이 활짝 피어있는 마을이기도 하다.

우도 특산물 땅콩농사에 바쁜 마을 주민.

별방진 지역에서도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봉수대를 설치하여 위급 상황을 알릴 수 있도록 한 모습에서 역사적으로 구좌지역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그 옆에 하얀 등대와 독특한 대조를 이루면서 바닷가에 세월을 주제로 설치된 작품처럼 느껴진다. 오봉리는 '우도해양도립공원'이라고 하는 관광자원 범주 속에 들어있는 마을이다. 해안도로 뿐만 아니라 집들이며 길가, 밭담들까지 모두가 공원의 구성요소다. 올해 8월말까지 139만여명이 이 공원을 다녀갔다. 평균 증가율을 적용하면 올해 내에 200만명이 다녀가는 곳이 된다고 한다. 오봉리 사람들은 밀려드는 관광객들과 어떠한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일까?

고흥범 이장.

고흥범(59) 이장의 설명은 이렇다. "우리 마을은 관광버스가 지날 수 없는 협소한 도로구조 때문에 관광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여건입니다. 단체관광객의 입장에서는 우도의 반쪽만 보고 가는 결과지요. 그래도 조사해본 바에 의하며 자전거와 스쿠터를 비롯하여 모든 교통수단이 하루 평균 5000대가 우리 마을 안길을 지나갑니다. 톳이며 천초들을 길가에 말려 놓으면 밟고 지나가서 피해가 막심합니다. 그래도 참고 살아가는 실정입니다." 우도면의 다른 마을들에 비해 아직도 옛날 포근한 모습이 많이 남아있다는 이유가 상대적으로 낙후된 도로사정 때문이라는 게 아이러니다. 공직생활을 오래 했다는 고호수(78) 노인회 감사는 구좌면 연평출장소 시절 3600명이던 인구가 절반으로 줄었다고 통탄했다. 우도를 떠나게 되는 이유는 생활불편. 관광객이 많이 다녀간다고 하지만 젊은이들의 일자리 창출과 연결 짓지 못한 이유 때문이라는 호된 꾸지람을 누가 들어야 되는 것인지. 외형은 화려해졌지만 이 섬을 지키고 살아온 사람들이 밀려나는 형국을 바라보면서 우도에서 바라보는 제주섬의 미래를 걱정하게 된다. 우양범(46) 청년회장은 "연륙교를 통해서 출퇴근이 용이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우도 주민들은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로 대체될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오봉리에서 대대로 살아온 사람들이 이 섬을 지키고 싶은 고뇌가 깊게 서려있다. 우도면 내에 다른 마을보다 밭과 바다를 생업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가구가 많다보니 관광산업에 대한 기대 심리도 더 크다. 이구동성으로 바라는 것은 숙박형 관광지로 키워나갈 정책을 추진해 달라는 것이다. 도항선에서 내려서 한 바퀴 휙 돌고 나가는 관광지는 주민 피해만 늘어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으니 그렇다. 오봉리 주민들을 위하여 야간공연장을 명품화 시킨다면 '그 유명한 공연'을 보기 위해 하루를 숙박해야 하니까. 실질적인 주민 소득 증대에 기여하게 되리라는 생각이었다.

볼록거울 속에서 자전거가 지나가는 하고수동 해수욕장.

경관 중심의 우도해양도립공원의 틀에서 벗어나 우도의 전통적인 삶과 혹독한 자연조건을 이겨낸 우도 사람들의 문화를 공연으로 승화시킨 작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주민들이 무대에 서서 공연의 주체가 되는 그런 관광지를 꿈꾸고 있었다. 이러한 오래된 꿈이 현실이 되지 못하게 된 이유는 고흥범 이장의 탄식을 통해서 나왔다. "제가 이장 책임을 수행한 지 3년 동안 면장이 5명이나 바뀌었습니다. 어떤 일관성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도립공원이라 정해놨으면 이에 상응하는 특별한 행정적 신념이 요구되는 것. 오봉리 주민들의 꿈은 행정적 협력 없이는 한계가 분명하기에.

<공공미술가> <인터뷰 음성파일은 ihalla.com에서 청취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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