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롭고 포근한 마을 안길 풍경(위) 마을 남쪽 새롭게 확장된 도로 언덕 부근에서 바라본 마을 전경(아래)
700여년전 설촌… 제주 서쪽 애월읍 중앙 위치한 작은 마을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 깃든 용마루 언덕 마을의 상징 행정리 분리 연혁 짧지만 십시일반 정성 모아 공동자산 일궈 용마루 김치·제주와이너리·콩산업 등 마을발전전략 기대감
용마루동산, 제한이 동산으로 맥을 이루어 사방이 소나무들이 우거져 있었던 땅. 송냉이(松浪伊)로 불렀다.
1891년 작성된 (말)방애 접(接) 회의록에 등장하는 마을이름이 松朗洞.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송림이 울창하던 마을이었던 모양이다. 마을 북단에 창고터가 있고, 서쪽에 와개왓(瓦蓋田)이 있어서 삼별초 입도 당시에 군량미를 보관하던 창고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설촌 연대는 약 700년 전. 마을 이름엔 풍수사상이 짙다.
신령스러운 한라산의 기운이 힘찬 용맥을 타고 흘러들어 회룡음수형(回龍飮水形)의 명혈대지에 위치한 마을이라고 조상 대대로 믿으며 자긍심을 키워온 마을이다.
참으로 포근하고 정감이 있다. 섬 속 마을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다. 얼마 전 제주에 이주한 필자의 지인이 '한반도 어느 시골마을 분위기가 난다'고 했을 때, 고개를 끄덕였다.
설촌의 역사와 전설을 간직한 용마루 언덕.
마을 중심 부분이 야릇하게 분지의 형태를 취하고 있어서 그렇기도 하거니와 마을 중심을 남북으로 지나가는 큰 길 하며 제주의 다른 마을들과 겹쳐지는 이미지가 적다. 더욱 마을을 안온하게 이끄는 것은 용마루 동산이다.
용이 용바위를 뚫고 용트림 하며 하늘로 올라갔다는 용바위 전설이 있는 곳. 신엄 지역에서 남쪽으로 올라와서 하동 마을에 들어서면 동쪽으로 맨 먼저 맞아주는 동산이다. 높이는 그다지 높지 않으나 주거지역이 낮아서 우러러 보이는 상황이 연출된다. 용흥리 마을 전체를 품으면서 왼쪽으로는 창구터, 짐빌레, 무남동산. 오른쪽으로는 제안이 동산, 난그못, 쇠죽이못으로 뻗어 있어서 둥지를 틀어 놓은 지세다.
애월읍 중앙에 위치한다. 북쪽 신엄리에서 1953년 분리된 마을. 동쪽으로 장전리, 서쪽으로는 상가리와 하가리, 남쪽으로 소길리가 위치한다. 163세대 373명의 주민이 모여 사는 애월읍에서도 작은 마을에 속한다.
1980년에 602명에 달하던 인구가 차츰 줄어들어서 이렇게 된 것은 산업구조 변화에 따른 이농현상의 결과. 취락 형태는 마을회관을 중간에 두고서 상동과 하동으로 나뉜다. 도로망이 특이하다.
마을을 남북으로 이어주는 도로가 동쪽과 서쪽에 두 개 있고 이 도로를 동서로 이어주는 도로가 없다. 이것이 용흥리가 지닌 최대의 문제점이다.
강성익(62) 이장이 밝히는 마을 속사정은 이렇다. "내부에서부터 확장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주택이 들어 설 수 있는 도로망이 있어야 가능하다. 동서를 이어주는 도로 건설이 용흥리의 최대 당면 과제이지만 행정적인 지원 노력이 보이지 않아서 안타깝다." 어찌 보면 조금은 기형적인 도로형태를 지녔다. 길을 따라서 집이 지어지다보니 남북으로 줄지어진 모습이다.
남북으로 난 두개의 길을 이어주는 여러 개의 길이 건설된다면 용흥리는 정주여건 개선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가장 크게 보여줄 수 있는 마을이라는 것이다.
가장 주목할 점은 면적이 협소하고 행정리로 분리된 연혁이 짧지만 꾸준하게 마을 공동재산을 만들어왔다는 자부심이다. 다른 마을들이 마을공동체 소유의 땅을 파는 경우가 있었지만 반대로 주민들이 돈을 모아 마을 땅을 만들어왔다. 용흥리 운동장을 대표적인 사례로 상동과 하동 주차장, 연못들과 주변 땅들을 사들여서 마을 소유로 만든 것이다.
공동체의 결속력을 보여주는 강한 마을이라는 입증 근거로 봐야 옳다. 이런 일체감이 가능한 배경을 양상현(73) 노인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순해서 주민들끼리 싸우는 일이 없어요.
의논을 하면 개인주장보다 마을 입장에서 생각합니다" 덩치는 크지만 분열하고 반목하는 곳보다 용흥리가 부지런하게 치고 나오는 힘이 어디에 있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라 하겠다. 지구촌으로 생각하면 신생독립국 같은 마을이다. 짧은 기간에 마을공동체의 위상을 정립하고 이웃마을과 경쟁에서 뒤지지 않는 힘을 보유하기 위하여 마을주민들이 보여준 결속력은 눈부시다.
주민들이 합심하여 만들어 활용하고 있는 마을 운동장.
용흥리라는 마을 이름을 쓰기 시작한 이후, 용마루 언덕을 놀이터로 뛰놀며 호연지기를 키웠던 어린아이들이 성장하여 우리 사회에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출향인사들의 애향심 또한 대단하여 큰 마을에서도 이루지 못한 곳이 많은 두꺼운 마을지를 만들어냈다. 짧은 기간에 이런 결속력을 만들어낸 원동력이 참으로 궁금하다. 용의 정기가 마을을 감싸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길이 많은 것을 해결해 줄 것이다. 중산간도로 확장으로 시원스럽게 용흥리 남쪽 지역이 바뀌었다. 마을 중심도로 또한 마을 규모에 비해 넓다. 농가 전체의 80%가 감귤농사를 하고 있다. 농외소득을 통하여 가격변동에 민감한 농산물 시장의 위협 요소를 제거하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마을만들기 사업과 관련된 일들을 마을회 차원에서 적극 나서서 추진하고 있는 것. 2014년 주민역량강화 워크숍지원사업에 참여하여 주민의식 개혁을 이루고, 2015년 제주형커뮤니티비지니스 추진마을 사업으로 마을 의제를 선정하고 마을자원 조사와 마을 발전 계획을 수립하였다.
피노키오를 테마로 이색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중심도로 한 부분.
교통이 좋아지면서 식품과 음료 관련 제조업체들도 들어오고 위치적 강점을 살린 마을 발전 전략이 차츰 마을 인구 증가에 일익을 담당하게 되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용마루김치, 제주와이너리, 제주콩산업과 같은 농업과 직·간접적인 관련 제조업체들이 용흥리에 들어서면서 기대감을 키워주는 것이다.
유난히 풍수지리 요소를 강조하는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에 설득력이 있었다. 인걸지령(人傑地靈)이라고 했던가? 뛰어난 인물은 신령한 땅의 기운을 타고 태어난다는 뜻. 마을 전체에 용맥의 기운이 감돌아 사람들이 옹골차다. 온화한 생동감이다.
작지만 강한 마을의 위업을 이룩하기 위하여 뜨거운 열정이 가득한 용흥리. 밭에서 만나는 용도 있었다. 마을공동체의 활달한 움직임이 그 자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