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노예'로 전락한 중국어 가이드

'현대판 노예'로 전락한 중국어 가이드
[특별기획민선 6기 출범 2주년] 제주속 중국 열풍 빛과 그늘 <7> 비정상·부조리 만연 관광시장 (중)
  • 입력 : 2016. 06.22(수) 00:00
  • 표성준 기자 sjpyo@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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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역의 한 시내면세점에서 쇼핑을 즐기는 중국인 관광객들. 초저가상품이 지배하는 중국인 관광시장에서 가장 큰 피해는 쇼핑 수수료로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가이드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사진=한라일보 DB

수당 없이 면세점 상품 판매 수수료로 생계
"할당 못채우면 벌금" 여행사 무소불위 횡포
정부, 무자격 단속뿐 근본 대책은 마련 못해


국내 관광안내사와 일본어 통역관광안내사를 거쳐 중국어 통역관광안내사까지 도합 30년 넘게 제주지역에서 활동 중인 베테랑 가이드 A(여)씨는 지난달 황당한 일을 겪었다. 사연은 이랬다. 중국인 단체관광객을 하루 동안 안내할 가이드를 급히 찾는다는 글이 가이드들의 '단톡방'에 올라오자 A씨는 연락을 취해 다음날 일일 가이드 업무를 수행했다. 그러나 이날 관광지와 기념품점 3곳의 투어를 끝낸 그는 아무런 수당도 받을 수 없었다.

통상 가이드들은 여행사로부터 이른바 '일비(수당)'를 받거나 시내면세점 또는 사후면세점으로부터 관광객들이 구매한 금액에 비례해 판매 수수료를 받고 있다. 그러나 A씨는 "어차피 '일비'는 사라진 지 오래여서 중간 수수료를 염두에 두고 갔는데, 여행사가 사전에 기념품점과 계약을 맺어 모든 판매 수수료를 자신들이 챙기고 가이드에게는 수수료를 지급하지 않도록 손을 써둔 것이었다"며 "너무 억울해서 동료 가이드들에게 '사기당했다'고 말했더니 대부분이 '따져도 그들(여행사)에게 욕만 먹고 속만 상한다'면서 말리더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제주지역에서 활동 중인 가이드들은 A씨와 같은 사례가 이미 보편화됐다고 말한다. 한국관광산업정상화운동본부(이하 '본부') 관계자는 "쇼핑 관광이 일상화된 중국인 단체관광객들이 증가하면서 가이드들은 '약장수' 또는 '호객꾼'으로 변질됐다"며 "심지어 '인두세'를 도입해 제주는 물론 한국관광시장을 황폐화시키고 있는 여행사가 가이드들에게 벌금까지 부과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한 여행사의 자료는 이 여행사가 가이드에게 할당량을 제시하고 할당량을 채우면 보너스(또는 수수료)를 지급하지만 채우지 못하면 벌금을 부과하고 있음을 알려줬다. 예를 들어 인삼을 판매하는 사후면세점의 경우 30명 단체가 방문하면 이 가운데 80%인 24명 이상이 상품을 구매해야 여행사가 가이드에게 수수료를 지급한다는 것이다. 반면 60% 미만일 경우에는 1인당 2만원의 벌금을 부과한다는 조건이 첨부돼 있다. 더구나 여행사 중에는 이 같은 벌금을 보증금 또는 예치금 명목으로 미리 받아내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보증금에서 벌금을 공제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한 조선족 출신의 여성 가이드는 본부 관계자에게 "그래도 일거리를 얻어야 해서 한달치 150만원의 벌금을 가져갔더니 또 가져오라고 한다"며 대책을 물어왔다. 이 같은 비정상적인 관행의 중심에는 중국인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제주를 중심으로 성장한 B여행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여행사는 조선족이나 중국 유학생 출신의 무자격 가이드를 대거 고용한 뒤 '노예'로 길들이고 있으며, 합법 가이드도 이렇게 피해를 입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나 지자체는 무자격 가이드 단속에만 열을 올릴 뿐 근본적인 대책은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본부 관계자는 "'인두세'를 주고 중국인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이 여행사는 가이드들이 받아야 하는 사후면세점 수수료를 가로채고 있다"며 "가이드들에게 보증금과 예치금을 받고, 벌금을 부과하는 것은 자신들이 판매한 초저가 여행상품의 손실을 메우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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