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전환기 제주문화계를 건너는 사람들

[백록담]전환기 제주문화계를 건너는 사람들
  • 입력 : 2017. 05.01(월)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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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차 한잔 앞에 놓고 제주문화 현장 이야길 꺼낼 때마다 목소리가 높아졌다. 제주지역 예술인들이 설곳을 잃어가고 있는데도 손을 써야 할 기관에서 뒷짐을 지고 있다는 거였다. 지역에서 오랜 기간 활동하며 꾸준히 창작자들을 만나는 자리에 있는 그는 "이러다 지역 예술인들이 주저앉아 버릴까 걱정된다"고 했다. 공연이든 전시든 발표를 위해 훈련받고 학습하는 과정을 거치며 성장해가야 하는데 그럴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개인이나 단체가 적지 않다는 주장이었다.

제주에서 열리는 행사가 해마다 늘고 있다. 올해 제주문화예술재단이 3차에 걸쳐 공모한 제주문화예술활동 지원 대상에 선정된 사업만 해도 공연장 상주단체 육성, 창작공간 프로그램, 제주신진예술가 지원, 국제문화예술교류, 우수 기획 프로그램, 일반 예술활동 분야 등 380건이 넘는다. 이들에게 지원되는 금액은 모두 합쳐 30억원을 웃돈다. 각종 공모 지원을 받지 않는 사업까지 합치면 비수기 없는 전시, 공연, 출판 등이 이어진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제주 문화예술 활동에 대한 지원이 증가하고 그 양상이 다양해지는 모양새지만 위기감을 느낀다는 제주 예술인들을 여럿 봤다. 그들은 단지 여러 공모사업에서 탈락한 일을 두고 불만을 드러내는 게 아니었다. '문화예술의 섬 제주'라고 외치지만 실제 문화예술생태계는 건강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들은 포장지만 그럴 듯한 문화예술상품으로 수다스럽게 제주를 말하고 있는 일각의 행태를 지켜보는 게 괴롭다고 했다.

지역 공연계를 돌아보자. 예산을 쥐고 공연장을 운영하는 곳에선 스타성을 갖춘 작품을 불러와 제주 무대에 세우는 일을 손쉽게 벌인다. 관객들이 박수치며 좋아하니 성공한 기획으로 비쳐진다. 하지만 이런 일이 몇차례 반복되다보면 지역 공연예술인들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관객과 소통할 무대는 점점 줄어든다.

미술계는 어떤가. 규모 큰 국제전시를 치를 때 지역 작가는 구색맞추기 식으로 섭외한다. 국제전 위상을 감안할 때 지역 작가 비중을 마냥 높일 수 없다는 논리로 말이다. 오는 9월부터 3개월동안 계속되는 제주도립미술관 제주비엔날레만 해도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언급한 제주작가 참여 비율이 10%도 안됐다.

혹자는 '동네 잔치 만드느냐'고 할지 모르나 지역의 현안과 이슈에 대해 고민을 가장 많이 해온 이들이 지역의 예술인들이란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제주4·3을 널리 알린다며 거액의 시상금을 들여 국내외에서 4·3평화문학상을 공모하고 있지만 그보다 수십년 앞서 제주4·3 현장을 누비고 자료를 뒤적이며 비극의 역사가 불러온 파장을 시와 소설 등에 담아온 이들이 제주의 작가들 아니었던가.

어떤 이들은 이 무렵 제주문화계를 두고 전환기라고 불렀다. 제주라는 이름 하나 내건 문화예술 행사가 홍수처럼 밀려드는 이 땅의 현실이 그렇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이런 진단을 내리는 사람들이 지역문화 정체성을 탐색해온 제주 예술인들이다. 그들은 바깥과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변화하고 생성되는 존재가 지역문화라는 점을 알고 있기에 누구보다 엄중하게 이 시기를 건널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니 지역 예술인들이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파이를 뺏겼다고 불평만 늘어놓는다는 식의 말은 삼가자. 1년에 창작 공연 한편 없어서야 되겠냐며 허드렛일 마다않고 생계를 이으며 오늘도 연습실로 향하는 예술인들이 제주에 산다.

<진선희 교육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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