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지금도 어딘가 살고 있을 그 이웃

[책세상] 지금도 어딘가 살고 있을 그 이웃
이정명의 신작 장편소설 '선한 이웃’
  • 입력 : 2017. 06.16(금) 00:00
  • 손정경 기자 jungkso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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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한국 현대사 꿰뚫으며

국가권력의 도구적 가치가 된

'정의’·‘선’에 대한 화두 던져



소설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확실하다. 절대적 선함은 없다는 것. 선과 악, 정의와 불의는 시대적 맥락 안에서 얼마든지 가변적이라고 작가 이정명은 말한다. 그는 선한 의도로 행한 개인의 행위가 때론 악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 꼬집는다. 그 개인이 어떤 시대를 사느냐에 따라.

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작가는 '1980년대 대한민국'을 작품의 배경으로 택했다. 자유는 말살됐고 인권은 유린됐다. 언론은 교묘히 통제됐고 그 틈으로 선동과 공작이 난무했다. 그리고 여느때처럼 국민들은 그 시대를 살아냈다.

작가 이정명은 4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신작 장편소설 '선한 이웃'을 통해 생존을 위해 악에 부역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이들의 고뇌, 갈등 그리고 최후의 선택을 그린다. 독재정권 하인 1984년 9월 벌어진 서울대 프락치 사건. 작가는 이 사건을 모티브로 운동권의 실세로 지목된 인물과 그를 쫓는 공작원, 젊은 연극 연출가와 그의 연인 그리고 모든 공작의 배후에 서 있는 관리자 등 다섯 명의 시점으로 그 격동의 시대를 돌아본다. 작가는 각각의 인물을 차분히 조명하며 혼돈의 구렁텅이로 개개인을 몰아가는 국가권력에 주목한다. 또한 그 이면에서 '정의'와 '선'이 도구적 가치로 변질되는 과정을 생생히 조명한다.

일례로 공작원 김기준의 삶을 살핀다. 김기준은 한때는 법으로 정의를 도모하는 법관의 길을 꿈꿨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가족을 빌미로 접근하는 국가권력의 압박에 시달리다 결국 정보기관 공작원으로 발탁된다. 사실 그는 무고한 시민을 '좌익분자'로 색출해내는 그의 일이 사회에 얼마나 막대한 해악을 끼치는지 자각하고 있었다. 이에 "얼마나 많은 학살과 범죄가 조국의 이름으로, 평화의 깃발 아래서, 이웃을 위한다는 신념으로 치러지고 저질러졌던가?"라고 자문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그 책임을 자신이 아닌 불의가 지배하는 세상 탓으로 돌려버린다. 그리고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한 '선한 사람'이 되는 길을 택한다. 소설 속 문장처럼 정말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건 살인마나 테러리스트 같은 악한이 아니라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선한 이웃들'이었다.

책의 말미에서 작가는 묻는다. 30여년이 지난 지금, 세상은 얼마나 달라졌고 우리는 얼마나 바뀌었냐고. 작가는 2012년부터 구상했던 원고의 최종 수정을 막 끝낸 시점에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졌고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이 뒤이었다고 전한다. 이어 그는 "마치 1987년에서 시간의 필름을 잘라 2017년에 이어붙인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는 이 이야기가 1987년이 아닌 지금, 2017년의 이야기로 느껴지기도 한다"라고 덧붙인다. 은행나무출판사.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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