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수의 스피시즈 한라산엔시스 탐사(19)]제1부 아득한 기억, 알타이-(19)초원에 피는 할미꽃, 가축과의 공존

[김찬수의 스피시즈 한라산엔시스 탐사(19)]제1부 아득한 기억, 알타이-(19)초원에 피는 할미꽃, 가축과의 공존
몽골초원서 발견되는 익숙한 할미꽃… 가축과 공생하며 번성
  • 입력 : 2017. 06.26(월) 00:00
  • 조흥준 기자 chj@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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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할미꽃(Pulsatilla flavescens). 사진=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김찬수, 김진, 송관필

몽골 모두 6종 자라… 노랑할미꽃 대표적
다양한 생태환경 때문 종내 변이 다양해


김찬수 박사

반가우면 아는 사인가? 그동안 강가, 높고 낮은 산, 모래언덕과 같은 지형을 탐사했다. 그러나 눈에 들어오는 풍경 대부분은 초원이다. 우리나라와는 경관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런 만큼 마주치는 종들도 대부분 낯설다. 사실 몽골초원을 탐사하기 위해 이곳에 온다면 누구나 느끼게 될 것이다. 종들이 너무 달라 아예 알아보고 싶은 마음조차 싹 가신다고. 그러다 보니 오히려 국내에서는 잘 아는 종조차도 낯설어 보일 때가 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초원을 탐사하는데 익숙한 꽃이 눈에 들어 왔다. 할미꽃이었다. 할미꽃들은 꽃만 보면 비교적 단순해서 제주도에서 보는 꽃이나 여기서 보는 꽃이나 다 그게 그거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할미꽃을 보면 꽃대가 밑을 향하여 굽은 모양이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를 연상했던 듯하다. 한자로는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를 나타내는 백두옹(白頭翁)이라 했는데 이것은 열매가 익었을 때 모양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라틴어 학명 중 속명 풀사틸라는 원래 '종모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같은 꽃을 보고도 이렇게 보는 이마다 느낌이 다르다.

우리는 이 몽골 벌판에서 할미꽃을 처음 봤을 때 "야! 할미꽃이다"하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카메라를 들이 대기에 바빴다. 이건 이 꽃이 특별히 아름답다거나 탐사의 목표가 됐던 꽃이라서가 아니다. 단지 익숙한 꽃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초원할미꽃(Pulsatilla bungeana)

몽골할미꽃(Pulsatilla ambigua)

한번 보고 나니 자주 눈에 띄었다. 문제는 이 종들이 자라는 곳이나 생김새가 비슷하여 모두 같은 종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할미꽃이 몇 종 되지도 않을뿐더러 같은 장소에서 여러 종을 만날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모두 별 의심 없이 할미꽃이라고만 하면 됐다.

몽골초원에는 6종의 할미꽃이 자란다. 가장 뚜렷하게 구분되는 종은 노랑할미꽃이다. 이 종은 꽃이 노랗게 피기 때문에 눈에 잘 띠기도 하거니와 다른 종과 구분하기도 쉽다. 주로 시베리아잎갈나무숲 또는 자작나무숲의 어느 정도 햇볕이 드는 곳 또는 그 주변에 자란다. 이런 곳이면 꽃이 피는 6월경에 이 꽃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할미꽃(Pulsatilla cernua var. koreana)

가는잎할미꽃(Pulsatilla cernua var. cernua)

스텝초원이라면 이 할미꽃을 빼놓을 수가 없을 것이다. 초원할미꽃이다. 학명 중 분게아나는 러시아식물학자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이 종은 꽃이 좁은 종모양이고 열매의 까락이 3㎝에 달하랄 정도로 긴게 특징이다. 다른 할미꽃들에 비해서 대체로 포기도 크고 줄기도 많이 나온다. 다양한 생태환경에 자라기 때문에 종내 변이 다양하다. 몽골에서도 이 종은 3개의 변종으로 더 자세히 구분하고 있다. 그리고 비슷한 생태환경을 선호하는 몽골할미꽃도 있다. 학명 중 엠비구아는 '의심스러운' 또는 '불확실한'의 뜻이다. 아마도 가장 흔히 분포하고 변이도 많은데 착안한 게 아닌가 한다. 이 종은 털이 비교적 짧고 성기게 난다. 이들은 개화기를 잘 맞춘다면 초원을 화려하게 수놓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몽골초원에서 할미꽃은 가축의 좋은 먹이자원이다. 특히 봄철에 일찍 새싹이 나오기 때문에 염소, 양, 말, 소와 같은 가축들이 매우 좋아한다고 한다. 가축을 키우는 목동들은 이 식물이 겨울동안 허약해진 가축들에게나 살을 찌워야하는 가축들 모두에게 매우 유용한 식물로 평가하고 있다고 한다.

열매가 맺은 후에는 시들어 버리거나 생체량이 급격히 줄어들기 때문에 소나 말은 크게 선호하지는 않지만 염소와 양에게는 여전히 뜯어먹기 좋아하는 풀이다.

이렇게 뜯겨 먹히지만 역설적이게도 가축이 없으면 번성할 수 없는 게 이 할미꽃이다. 경쟁자들을 적절하게 조절해 줌으로써 이 종들도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할미꽃은 특히 키가 작기 때문에 가축들이 환경을 만들어 주지 않으면 생명을 유지하기가 힘들 것이다. 공존의 한 방식을 보는 듯하다. 제주도에서도 목축시대에는 할미꽃이 지천이었다. 지금은 거의 사라져 무덤가에서나 볼 수 있는 희귀식물이 되어 가고 있다.

글=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김찬수, 김진, 송관필

우리나라 할미꽃 종류는?

세잎·분홍·동강할미꽃 등 여러 종 분포
전국 분포 종 할미꽃 ‘조선백두옹’ 불려
가는잎할미꽃 유일하게 제주서만 발견


우리나라엔 어떤 할미꽃들이 살고 있을까? 우선 남한에선 볼 수 없지만 산할미꽃이 있다. 일반적으로 할미꽃은 꽃줄기가 30-40㎝에 달하지만 이 산할미꽃은 8㎝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특산식물로 북부지방의 높은 산 양지쪽에 자라는데 함경북도 관모봉에 자란다는 기록이 있다.

세잎할미꽃은 평안남도 맹산에 자란다. 이 종은 중국의 동북지방, 러시아의 우수리에도 자라는 것으로 보아 맹산이 남한계로 보인다.

분홍할미꽃이라는 종 역시 북한에 자라며 남한에서는 볼 수 없는 종인데 중국의 동북지방과 러시아의 아무르, 우수리지방에 분포한다.

동강할미꽃이 강원도와 충청북도의 석회암지대에 자란다. 이 종은 한국 특산식물인데 비교적 최근인 2000년도에 발표되었다.

나머지 한 종이 전국에 널리 분포하는 할미꽃이다. 그런데 이 집단은 좀 복잡하다. 중국에서는 크게 이 모두를 조선백두옹이라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학계는 이를 두 개의 집단으로 나누어 하나는 할미꽃이라 하고 있다. 여기에서 할미꽃은 중국의 동북지방과 러시아의 아무르, 우수리, 그리고 우리나라 전국에 분포한다.

그런데 가는잎할미꽃은 국외로는 중국과 일본에도 자라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에만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이 가는잎할미꽃은 중국의 중남부 아니면 일본열도에서 제주도로 상륙하였을 것이다.

북방에 분포하는 할미꽃집단이 아니라 그 외 지역에서 분화한 집단에서 제주도로 들어 왔으니 분단분포종의 하나이다. 이런 분포유형의 종들도 제주도의 종들이 어디에서 들어 왔는지 밝히는 또 하나의 단서를 가지고 있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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