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찬미의 한라칼럼]해녀의 숨비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더라도

[고찬미의 한라칼럼]해녀의 숨비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더라도
  • 입력 : 2017. 11.28(화) 00:00
  • 김현석 기자 ik012@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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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란 인간에게 본디 생명을 의미하지만 제주 해녀에게는 역설적으로 살기 위해서 참아내야 하는 사투의 대상이다. 차가운 파도 아래서 끝끝내 참다가 바다 위에 떠 오른 후 거칠게 내뱉는 해녀의 '숨비소리'는 생과 사의 경계에서 터져 나온 구슬픈 신음이자 강인한 생명의 소리이다.

극한의 고통 가운데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 강한 의지를 토해내는 이 숨비소리가 제주 바다에서 더 이상 들리지 않을 것이란 고민은 제주에서 꽤 오래되어 왔다. 고도로 산업화 된 현대 사회에서 전통적 물질을 하는 제주 해녀는 우리에게 이제 일상의 존재라기보다는 과거의 유물과도 같은 존재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며칠 뒤면 1주년을 맞이하게 되는 제주 해녀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는 이렇게 사라져가는 해녀와 전통문화를 지키려는 바람과 그 노력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이 성과를 기점으로 도정이 제주 해녀 문화 보존 및 전승 계획을 세워 적극적으로 정책을 펼치려고 한다. 자연과 공존하는 법을 알고 서로 베풀면서도 질서를 엄격히 지키는 여성공동체 고유문화를 지녀 왔던 제주 해녀의 위상이 국내외 널리 알려진다면, 해녀 스스로 자부심을 높이는 데 앞으로 큰 힘이 될 것이다. 과거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며 경제적·사회적으로 소외되어 온 고령의 해녀들이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복지혜택과 더불어 걸맞은 대우를 받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또한 해녀의 가치와 문화를 알리는 각종 문화행사나 학술행사 등이 장려되는 것도 환영할 만한 소식이다.

그러나 그 정책 방향을 좀 더 세밀히 들여다보면, '무형'의 제주 해녀 문화를 전승하기보다는 '유형'의 제주 해녀 자체를 존속시키고 눈으로 보여주는 데 중점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해녀생태박물관 건립과 더불어 제주 해녀 체험마을을 조성하여 해녀를 관광상품화 하고 제주해녀학교 활성화로 해녀의 양적 감소를 막으려는 계획들은, 실제로 제주 해녀의 삶에 따듯한 관심을 기울여 제대로 이해해 온 게 맞는지 의문을 들게 한다. 과거 열악한 조건 하에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하여 선택의 여지 없이 차가운 겨울 바다에 뛰어들 수밖에 없던 그 고통과 희생의 삶이 해녀 복장 아래서 고수되는 것을 과연 해녀 문화의 본질과 정체성을 이어가는 길로 볼 수 있을까. 시대와 사회가 바뀐 만큼 전통 해녀의 자연감소를 우리는 피할 수 없는 변화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다만, 우리는 제주 해녀의 모습을 도처에서 볼 수 없어도 그들의 정신과 문화를 계승하고 다른 형태로라도 재창조하여 이 사회에 존속시켜야 한다. 정녕 우리가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것은 강한 생활력과 투지로 뛰어든 각박한 생의 한가운데서도 할망바다를 양보하는 나눔의 자세와 상호존중을 근간으로 한 유기적 공동체 정신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과거 수동적 여성상에서 벗어나 스스로 삶을 개척해나가던 해녀야말로 제주 항일운동의 주역을 맡았을 만큼 사회 변화를 이끈 주체적 여성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즉, 제주 해녀는 강한 어머니상뿐 아니라 여성공동체와 여성리더의 모델로도 재조명되어야 할 존재이다. 이렇게 역경에 굴하지 않는 해녀의 숨비소리는 이제 이 땅의 딸들이 사회적 차별과 장애를 뛰어넘으며 내쉬는 숨찬 소리로 다시 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변모된 현대의 숨비소리에 이 사회가 귀 기울여 주고 따듯한 응원을 해주는 것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제주 해녀의 가치와 문화의 맥을 다시 이어가는 한 방법일 것이다.

<고찬미 한국학중앙연구원 전문위원·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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