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가지 사례로 살펴본 스웨덴
중간·중도 뜻하는 '라곰' 정신
더나은 내일 위한 끝없는 노력
스웨덴 국회의원의 일상을 소개한 TV 다큐멘터리를 본 일이 있다. 전용 주차장도 없고 더러는 걸어서 출퇴근하는 그들에겐 특권이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았다. 지역주민들이 대화를 원할 때 언제든 응해야 하는 게 국회의원들의 의무라는 말을 했다. 출장비 내역 등 예산을 어디에 썼는지 거리낌없이 공개하는 그들이었다. 당연한 일이 당연하지 않게 여겨지는 우리 사회에서 본 스웨덴 국회의원들의 모습은 신선하고 놀라웠다.
나승위씨의 '스웨덴 일기'는 스웨덴에서는 왜 그런 일이 가능한지 들여다본 책이다. 2009년 스웨덴 회사에서 일하게 된 남편 때문에 스웨덴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살고 있는 그는 '스웨덴 도로에는 총알 택시가 없다'부터 ''인민의 집'을 지은 남자들'까지 스웨덴의 23가지 표정을 포착하고 있다.
스웨덴은 세계에서 교통사고율이 가장 낮은 나라에 속한다. 저자는 운전면허 시험을 보고 나서 그 이유를 알게 된다. 한국에서 무사고 운전 경력 15년을 자랑했지만 두 번이나 떨어진 끝에 간신히 붙었다. 배려와 양보가 부족했던 탓이었다. 운전자 개인의 책무에 안전띠, 도로교통 체계 등 안전운전 시스템이 더해지며 교통사고율을 낮춰왔다.
무상 의료 시스템은 어떤가. 스웨덴에는 개인 병원이 없다. 모든 병원은 국가에서 일괄 운영하고 개인이 특정 의사를 찾아가 마음대로 진료할 수 없다. 스웨덴 사람들은 1년에 약 20만원의 의료비, 30만원의 약값 등 50만원 정도만 있으면 어떤 병이든 치료받을 수 있는 나라다.
교실의 풍경은 어떨까. 단 한 명의 아이도 학습 재료의 유무나 가격 때문에 상처받거나 소외되지 않게 국가가 관리하고 있다. 지은이는 학교 교육을 둘러보며 스웨덴의 정신이자 철학이라고 할 수 있는 라곰(Lagom)을 떠올린다. 라곰은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중간, 중도 등을 뜻한다. 라곰의 정신을 중시하는 스웨덴 사람들은 1등을 우대하지 않고 튀는 엘리트를 좋아하지 않는다. 스웨덴의 현대 정치사 속 혁명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서 민중을 다독여 피를 흘리지 않았던 데도 라곰이 작용했다.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는 대범한 연정을 통해 사회민주주의 가치를 훨씬 잘 실현할 수 있었고 그것이 복지국가 스웨덴을 지탱한 힘이었다.
하지만 스웨덴은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춰진 나라가 아니다. 사회 지도자들과 구성원들은 여러 허점을 고치고 모순들을 조정하며 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100년 넘게 스웨덴 사회를 떠받쳐온 정치 이념인 사회민주주의 목표는 '종착지인 유토피아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유토피아를 향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운동성'이다. 파피에. 1만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