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영의 제주 마을탐방] (3)사람 사는 냄새 나는 건입동

[조미영의 제주 마을탐방] (3)사람 사는 냄새 나는 건입동
영주십경 두개 품은 경관과 유·무형자산 풍부한 동네
  • 입력 : 2018. 05.15(화) 00:00
  • 조상윤 기자 sycho@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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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천 하구 낀 포구가 지금은 국제부두로
4·3때 수용소… 의미있는 장소로 거듭나야
사라봉엔 모충사·칠머리당굿 보존회까지



제주의 뛰어난 절경을 이르는 영주십경 중 제2경 사봉낙조(沙峯落照)와 제9경 산포조어(山浦釣魚)를 자랑하는 마을 건입동. 서쪽으로 탑동을 경계로 산지천을 끌어안고 동쪽으로 화북을 경계로 사라봉을 끼고 있다. 물과 산을 다 품고 있으니 기원전후 시기인 탐라국 초기부터 사람들이 거주했으리라 본다.

제주시내를 관통하며 흐르는 산지천은 제주시민들의 젖줄과도 같다. 수도가 개통되기 전까지 중요한 식수원이었다. 깨끗한 윗물은 음용수로 쓰고 단계를 나눠 씻는 물, 빨래하는 물 등으로 구분해 썼다. 다리 밑에서는 칸을 나눠 목욕을 하는데 밤에는 만원이 된다. 그러면 간혹 음용수로 뛰어드는 이들도 있어 옥신각신 다투기도 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추억이 되며 사라진다. 1966년 하천 복개공사로 산지천은 30여 년간 콘크리트 건물 밑에 갇혀버린다. 이후 1996년부터 2002년까지 하천복원사업을 통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비록 예전의 빨래터와 목욕탕은 사라졌지만 시민의 휴식처로 거듭나고 있다.

공덕동산에서 바라본 건입동 전경.

산지천 맞은편 김만덕기념관 뒤로 돌아가면 금산수원지가 있다. 금산물, 노릿물, 지장각물,광대물 등의 용천수가 흐르고 공덕동산에는 난대림이 울창했던 곳이다. 옛 선비들이 이곳의 경치가 하도 좋아 만경정, 영은정 등의 정자를 지어 시를 읊고 연희를 즐겼다 한다. 영주십경의 산포조어가 이 곳에서 내다보는 풍경이라고도 하니 가히 상상해 봄직하다. 아쉽게도 지금은 건물들이 에워싼 형국이라 옛 모습을 찾을 수 없다. 다만 산책로를 따라 계단을 오르면 인공폭포 위쪽으로 연결된다. 이 곳에서 어렴풋이 내다보이는 바다와 건입동의 전경으로 아쉬움을 달래본다.

수원지 앞쪽에는 제주 최초의 발전소 터가 있다. 1926년 이 곳에 화력발전소를 세워 전기를 생산했다. 난생처음 전기를 접한 신기함에 밤이면 구경꾼들이 모여들곤 했다고 한다. 그 옆에는 목욕탕이 있었다. 발전기의 엔진을 냉각하는 순환수 덕분에 온수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라봉 노을.

항구만큼 많은 이야기가 들고 나는 곳이 또 어디 있으랴? 고(故) 김석종 옹은 그의 책 '포구의 악동들'에서 다음과 같은 일화를 소개한다.

"늦은 가을이 되면 산지포구로 중선들이 들어온다. 이름 봄 서해안을 거쳐 신의주까지 조업을 나갔던 배들이다. 산지천에서 물놀이를 하던 아이들은 멀리서 아버지 배를 알아보고 뛰어간다. 반 년 만에 만나는 아버지도 반갑지만 더 반가운 것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곤밥(쌀밥)이다. 제주에서는 보리쌀에 좁쌀을 섞어 먹는 게 고작인데 육지에서 조업을 하는 동안에는 쌀을 구입해 밥을 한다. 그래서 돌아오는 배에는 선원들이 먹다 남긴 곤밥이 있곤 하는데 아이들은 이것을 먹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려온다." 빈궁하던 시절의 추억이다. 이처럼 산지천의 하구를 낀 작은 포구는 이후 산지항이 되고 제주항으로 변해 지금은 국제부두가 됐다.

영은정터 표석

부두 맞은편 커다란 공터가 있다. 주정공장 터이다. 1940년경, 동양척식주식회가 연료를 생산하기 위해 세운 공장이다. 고구마에서 알코올을 추출하는 방식인데, 이를 위해 제주도민들은 '빼데기(절간고구마)'를 공출하느라 허리를 쥐어짜야 했다. 이후 4·3사건 때는 군부대에서 접수해 고구마창고를 수용소로 사용했다. 1989년 공장은 해체되고 수용소 터에는 아파트가 건립돼 옛 기억은 사라지고 있다. 비록 어두운 역사이지만, 잊지 말아야하는 우리의 과거이다. 의미 있는 장소로 거듭나길 바란다.

신구의 조화를 이룬 동네 골목.

그러나 건입동 최고의 백미는 사라봉이다. 시내와 인접한 곳에서 이런 멋진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바다를 낀 산봉우리를 돌아 지는 해를 지긋이 바라보면 하루의 피곤이 사르르 잊힌다. 비록 지금은 삐죽삐죽 솟아오른 나무들이 시야를 가리지만 깊은 그늘이 주는 시원함을 위해 감수할 만 하다. 민둥산이었던 이곳에 식목일마다 학생들이 동원돼 나무를 심은 효과이다. 당시의 아이들은 백발의 노인이 돼 구부정한 허리가 된 반면 이 나무들은 곧게 뻗어 울창하다.

사라봉 초입에는 모충사가 있다. 멀리서도 우뚝 보이는 항일의병항쟁 기념탑과 거상 김만덕의 묘가 있다. 또한 제주 문형문화재 제71호 칠머리당굿 보존회도 이곳에 자리한다. 원래 칠머리당은 사라봉 아래쪽이었으나 항만 확대공사 등으로 부지가 사라지자 이전을 거듭하며 지금에 이른다.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며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이 외에도 우당도서관과 국립제주박물관 등이 사라봉 자락을 끼고 위치한다.

그러고 보니 건입동은 뛰어난 자연환경은 물론 유무형의 자산을 고루 갖추고 있는 곳이다. 이런 환경에서 살고 있음에 두둑한 자부심을 가져도 좋겠다.



[인터뷰] 고창근 건입동 주민자치위원장·김미숙 건입동장


"동문시장까지 걷고 싶은 거리로"


고창근 위원장

▶고창근 건입동 주민자치위원장

건입동은 자랑거리가 많다. 영주십경 중 2개의 절경이 이곳 건입동에 있다. 사라봉의 낙조와 산지포구의 배낚시는 지금도 볼 만하다. 또한 거상 김만덕의 정신을 이어받은 곳이다. 만덕기념관과 객주터 복원으로 이를 계승할 것이다. 과거 제주는 제주항을 통해 문물이 유입됐다. 건입동 곳곳에 그 흔적들이 있다. 공장과 발전소 등 근대의 상징과도 같은 유적들이 있다. 비록 지금은 터만 남았지만 이는 우리의 자산이다. 아쉬운 것은 제주항에서 산지천으로 이어지는 구간이 활성화되지 못한 점이다. 세계 어느 곳을 가든 항구 근처는 활발하다. 하지만 제주항 인근은 적막하다. 상가도 없고 거리는 불편하다. 제주항을 기점으로 동문시장까지 연계하여 걷고 싶은 거리로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원도심을 살리는 방법이다.



"살기 좋은 마을로 건강해지길"


김미숙 동장

▶김미숙 건입동장

일단 작은 실천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다. 그래서 우선 졸락코지 주변의 정비사업에 힘쓰고 있다. 공유도로를 점령한 어구들이 미관과 위생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아 이를 치우고 있는데 작은 마찰들이 있다. 그래도 모두를 위해 환경개선을 해야 한다. 또한 건입동 관할 도로에 꽃씨를 심었다. 도로를 예쁘게 가꾸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그 외에도 어린이들의 안전통학을 위한 방안과 지역의 학교와 상주 기관을 연계하여 백일장 등의 행사를 개최할 것이다. 동네가 오래되다 보니 어르신들이 많다. 90세 이상 어르신들을 전수 조사하여 관리할 것이다. 무엇보다 사람이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들어 건입동이 건강해지길 바란다.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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