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색은 어떻게 추억과 환상이 되었는가

[책세상] 색은 어떻게 추억과 환상이 되었는가
시인 장석주 에세이 ‘색채의 향연’
  • 입력 : 2020. 01.10(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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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자꾸만 귤을 손에 들고 주물럭거린다. 아기였을 때 엄마 젖을 만지고 빠는 동안 둥근 것에 대한 감각적 친화력이 무의식 안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엄마의 둥근 젖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작은 입술로 빨던 시절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노랑의 시절이다."

장석주 시인이 "이 세상은 색채의 향연이다"라며 '색깔있는 에세이'를 냈다. 이밥의 눈부신 흰빛, 카레의 노랑, 시금치의 녹색, 마요네즈의 하양이 어느날 선명하게 눈에 들어와 시각 중추에 비벼지면서 감성선을 자극한 결과다.

'색채의 향연'은 그 여정을 따라 흰색에서 검정까지 16가지 색을 이야기하고 있다. 인류 무의식에 원초적 체험으로 깃든 색채 경험을 반추하면서 그 안에서 사유를 길어내고 색채 상징학을 넘어 인문학까지 다다른다.

시인은 사람이 식별할 수 있는 색깔은 1000개 정도라고 했다. 디지털 기술이 더해지면 빛의 삼원색을 조합해 무려 1600만 개에 달하는 색깔을 만들 수 있다. 시인은 그 색들이 어떻게 추억이 되고, 환상을 가져다주고, 그 자체로 정의가 되고 상징과 기호가 되는지 살폈다.

흰색과 만날 때 감각과 감수성은 파르르 떨며 파동을 일으킨다는 시인은 "색채의 향연 속에 있되 색의 부재로써 자신의 존재성을 증명하는 유일한 색채"라고 썼다. 온천지에 생동하는 생령들에선 녹색을 본다. "자,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불행들아, 비켜서라! 저 녹색의 교향악을 들으며 심중 깊은 곳에 직지 하나를 키우는 것이 배산임수의 땅에서 사는 보람이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심연을 품은 파랑, 상생의 기운이 감도는 주황, 속되지 않고 소박하되 기품이 있는 자주에도 시선이 머문다.

마침내 시인의 눈은 우주를 가득 채운 암흑 물질의 색인 검정에 이른다. 검정은 죽은 자에 대한 애도의 표현이지만 컴컴한 밤하늘엔 수많은 별들과 은하가 있다. 호미.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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