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영종의 백록담] ‘메르스 교훈’ 벌써 잊었나

[현영종의 백록담] ‘메르스 교훈’ 벌써 잊었나
  • 입력 : 2020. 03.02(월) 00:00
  • 현영종 기자 yjhyeo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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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46분 일본 미야기현 동쪽 100㎞ 해상에서 리히터 규모 9.0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지진은 최고 43m 높이의 초대형 쓰나미(지진해일)를 불러 왔다. 쓰나미로 1만5894명(미야기현 9541명)이 사망하고, 2553명이 실종됐다. 대피 생활 중 숨진 이들을 합치면 2만2000명에 육박한다. 건축물 붕괴·반파 40만여채, 농지피해 2만1000여㏊, 어선피해 2만8000여척 등 경제적 피해도 엄청났다.

이와테현의 시모헤이군 후다이마을은 재앙을 비껴갈 수 있었다. 센다이 공항에서 자동차로 4시간 거리에 있는 후다이마을은 1126세대, 2646명이 거주하며, 어업이 주된 소득원이다. 최고높이가 22.5m에 이르는 쓰나미가 덮쳤지만 실종자 1명과 어선 일부를 제외하면 거의 피해가 없었다. 수문과 오타나베 방조제 덕분이다.

높이 15.5m, 폭 205m의 수문과 높이 15.5m, 폭 155m의 방조제는 1984년 완공됐다. 일본정부와 이와테현청의 지원을 받아 모두 36억엔에 이르는 예산이 투입됐다. 수문건설을 주도한 이는 와무라 고토쿠 촌장이었다. 쓰나미로 인한 인명·재산피해를 막기 위함이었다. 수백명의 생명을 앗아간 1896년, 1933년의 쓰나미에서 얻은 교훈이다. 주민들의 반발은 거셌다. 작은 마을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예산이었기에 오해도 많았다. 촌장이 뒷돈을 받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어떤 이들은 마을 전체가 이사 갈 수 있는 돈이라며, 차라리 마을을 옮기자고 비아냥 거렸다. 당시 '만리장성'으로 불리우던 같은 현의 미야코시 방조제(10m) 보다 5.5m나 높았기 때문이다. 후다이 마을과 인접한 다노하타 마을은 8m 높이의 제방을 2개나 쌓았지만 쓰나미를 견디지 못해 46명의 피해자를 내고 500여채의 가옥이 파괴되는 피해를 입었다. 미야코시의 방조제도 유실돼 수백명이 숨지거나 실종됐다.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우리나라를 덮쳤다. 첫 확진자 발생 후 2개월 만에 186명에게 확진 판정이 내려졌고, 38명이 숨졌다. 발원지인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외하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들이 사망하거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당시 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대한의학회는 6개월 이상의 작업을 거쳐 백서를 내놨다. 두 백서는 메르스 사태의 원인으로 ▷초기대응 실패 ▷컨트롤타워 부재로 인한 리더십 혼란 ▷역학조사관 등 방역 인력 부족 ▷불안감만 키운 대국민소통방식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국내에서 확진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지난 29일 기준으로 3000명에 육박한다. 사망자만도 16명에 이른다. 이제 대구·경북을 넘어 서울 등 수도권과 부산·경남·충남 등 전국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다행히 제주는 확진자가 2명에 그치며 상대적으로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결코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정부의 안일한 대처와 우왕좌왕 대책, 일부 몰지각한 이들이 부른 비극이다.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병난(病亂)'을 이겨내야 한다. 더불어 다시는 이같은 비극이 되풀이하지 않도록 확실한 대책을 만들어 가야 한다. 쓰나미와 메르스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현영종 부국장 겸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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