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여름의 영화, 영화의 여름

[영화觀] 여름의 영화, 영화의 여름
  • 입력 : 2020. 06.05(금) 00:00
  • 박소정 기자 cosoro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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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매번 겪는 일이지만 참 신기하다. 얼마 전까지 꽃들이 흐드러지던 오월이었는데 유월이 되자마자 세상은 온통 초록으로 변했고 조금만 움직여도 이마에선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한다. 계절이 이렇게 빠르다. 철마다 제철의 과일과 야채를 먹고 입지도 않을 봄옷을 사며 에어컨 커버를 씌워야 할 지, 전기 장판을 창고로 넣어야 할 지를 고민하게 되는 일이 매년 반복된다. 그 반복은 매우 귀찮은 일이기도 하지만 때론 그 덕에 내가 맞이하고 있는 계절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볼 시간을 갖게 되기도 한다. 나는 이 반복을 재미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 재미를 더하고자 몇 가지 방법을 생각해냈는데 그 중 하나가 제철영화를 보는 일이다. 이를테면 겨울이 찾아오면 나는 '러브레터'를 즐겨 봤었는데 작년부터는 '윤희에게'가 겨울의 영화로 추가됐다. 창 밖으로 내릴 눈을 기대하면서 눈이 가득한 겨울의 영화들을 다시 보는 일은 꽤 낭만적인 일이다. 봄에는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앙: 단팥 인생 이야기'를 본다. 흩날리는 벚꽃의 아름다운 꽃그림자와 대배우 키키 키린의 따뜻한 미소가 싱그럽게 마음을 다독여주는 영화다. 거기에 스크린 가득 펼쳐지는 달콤한 단팥의 공감각적 즐거움까지 더하니 봄의 기분 좋은 나른함이 가득한 영화다.

그렇다면 여름의 제철영화는 뭐가 있을까. 여름은 영화에게 특별한 계절이다. 짧고 뜨겁고 강렬한 그래서 늘 폭발 직전의 에너지를 품고 있는 이 계절은 로맨스 영화들이 폭죽처럼 터지는 계절이기도 하다. '더티 댄싱'은 여름, 춤사위에 녹아든 매혹과 연정을 담아낸 대표적인 여름 영화다. 여름을 맞아 떠난 낯선 곳에서 만난 소녀의 거의 모든 감정들이 빼곡히 담긴 이 영화에는 동경과 설렘이 몸의 언어로 파도친다. 만들어진 지 수 십년이 지난 작품이지만 제철 여름 영화가 지녀야 할 감정들을 결코 녹슬지 않은 보석 같은 여름 영화다. 그리고 몇 해 전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라는 여름 영화의 클래식과도 같은 작품이 개봉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원작인 소설의 제목인 '그해 여름 손님'처럼 그 여름 열 일곱 소년에게 찾아온 첫사랑이라는 눈부신 손님과의 여름 한 때를 담고 있는 영화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무브먼트 대표

첫사랑이라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파고를 그려내는 데에는 여름이라는 계절이 한 몫을 했다. 이미 '아이 엠 러브', '비거 스플래시'라는 전작을 통해 여름의 열기를 감각적으로 스크린에 옮겨냈던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솜씨는 여전하다. 여름 바람을 타고 춤추듯 움직이는 초록의 잎사귀들, 여름의 햇살을 그대로 머금은 아미 해머의 찰랑이는 금발 머리칼 그리고 성마른 소년의 조바심 가득한 마음을 말갛게 보여주는 티모시 샬라메의 맑은 눈동자. 감독은 두 인물의 사랑이 익어가는 과정을 섬세하고 과감하게 따라간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사랑 영화에서 말을 아끼는 것이 어떤 장점이 있는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조금은 뜨겁고 습하고 하지만 그 끈적임이 싫지 않았던 열병의 시작 그리고 온 몸을 관통하는 한 여름 소낙비같은 사랑이라는 감정 그리고 결국은 사랑의 한 철이 지난 후 소멸되는 관계를 오롯이 지켜보는 이 사랑 영화는 간곡하고 아름답다.

여름이라는 한 철의 뜨거움이 지나기 전에 제철 영화들을 찾아보아야겠다. 영화가 끝나고 문을 열고 나설 때 훅하니 얼굴에 닿을 여름의 뜨거움이 조금은 낭만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를 일이다. 아마도 싫지 않을 것 같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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