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올 상반기 개봉한 독립영화 김초희 감독의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봤다. 어느 날 갑자기 일자리를 잃어버린 여성 영화 프로듀서 찬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작품을 보고 꿈의 안부에 대해 생각했다. 할 줄 아는 것, 하고 싶은 것이 그저 영화 뿐이라서 결혼은 못해도 이렇게 계속 영화를 만들며 살 수 있을 줄 알았다는 찬실이. 영화 속에서 그녀가 웃으며 흘린 눈물의 고백은 뭉클했다. 한 때는 일을 잘한다는 칭찬도 듣고 당신 없이는 현장이 굴러가지 않는다는 상찬도 들어봤는데 어느 순간 찬실이가 손에 쥔 건 불확실한 미래와 버거운 지금 뿐이다.
그마저도 모래알처럼 주르륵 흩어지고 돈도 마음도 어디 하나 여유가 없는 불혹의 나이까지 어쩌다 보니 '나에게도 부담스러운 내가 되어버린 것'이다. '아직 젊은데 뭘, 또 다시 시작하면 되지'라는 섣부른 위로와 조언은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작도 어려운데 다시 시작이라니, 여기저기서 얹히는 말이 너무 많아 찬실이는 먹은 것도 없이 체할 지경이다. 꿈만 꾸고 살아온 것 같은, 세상 물정 모르는 내가 한심하게까지 느껴진다.
찬실이 뿐만이 아니다. 나도 참 많이 들어본 말이다. '그래도 너는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잖아'라는 부러운 듯 심드렁한 표정으로 건네지는 말.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발끈했다. 당신은 마치 나의 고민과 힘든 시간들을 그저 원더랜드에 사는 피터팬의 놀이 시간처럼 여기고 있구나 당신이 뭘 안다고 하는 불쾌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일을 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은 좀 다르다. 누군가의 어떤 말에 휘둘리는 게 얼마나 불필요한지 알아버린 지는 좀 됐고 무엇보다 꿈에 익숙해져 버렸다. 스리슬쩍 꿈은 일상 쪽으로 넘어와버렸고 덕분에 꿈 때문에 힘들고 버겁지는 않다. 그런데 이건 꽤 슬픈 일이라는 생각이 종종 든다. 왜 어느 순간 꿈이 성취나 완수 같은 낭만과는 멀리 있는 것으로 바뀌어 버린 걸까.
영화 '라라랜드'는 오랫동안 꿈을 꾸는 예술가들의 인생을 그린 음악 영화다. 또한 각자의 꿈을 꾸는 상태로 서로를 꿈꾸게 된 두 사람의 러브 스토리이기도 하다. 뮤지션을 꿈꾸는 남자와 배우를 꿈꾸는 여자가 우연히 만나고 서로의 꿈을 응원하며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말이 어느 순간 두 사람을 찾아온다. 둘 중 한명이 꿈에게 먼저 프로포즈를 받는 상황이 온 것이다. 서로를 향하던 진심 어린 응원은 어찌할 수 없이 질투가 되고 함께하는 시간이 적어지자 사랑은 당연한 듯 천천히 식어간다. 이별은 분명하고도 집요하게 둘의 주위를 맴돈다. 풍성한 추억들로도 어찌할 수 없는 헤어짐의 시간이 찾아온다. 웃자란 아이처럼 각자의 손을 잡고 있는 꿈의 형상은 더 이상 낭만적일 리가 없다.
우리는 꿈을 꾼다. 침대에 누워서 꾸는 꿈이기도 하고 깨어나는 순간 다시 시작되는 꿈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자신의 꿈을 서랍 속에 넣어두었고 어떤 사람은 냉동실에 얼려 두었다. 어디에 꿈을 두던지 어디서 꿈을 꾸던지 우리는 꿈이 우리에게 주는 아름답고 벅찬 순간을 모르지 않는다. 힘든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당신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아름다운 꿈을 꾸고 그 꿈을 욕망하고 실현시키던 시간들이 있었고 또 있을 것임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스스로의 꿈들을 꺼내어 천천히 닦아주면 어떨까. 당장 이뤄지지 않더라도 빛이 바래지 않게 좋은 눈으로 꿈의 구슬을 바라봐 주면 어떨까.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