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희식의 하루를 시작하며] 스승의 삶과 멋

[부희식의 하루를 시작하며] 스승의 삶과 멋
  • 입력 : 2020. 11.04(수) 00:00
  • 강민성 기자 kms6510@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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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스승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지고지난의 길이다. 지식의 남보다 뛰어나서 남의 스승의 되려고 하면 경사(經師)는 될 수는 있어도 인사(人師)가 되긴 어렵다. 인사가 되려면 뛰어난 학식뿐만 아니라 몸과 심혼으로 스승다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

스승다운 삶이란 인간중심의 인생관, 자유민주주의의 역사관, 발달적 교육관, 학생 중심의 가치관 등을 견지하고 학생애, 교직애, 학문애 등의 '3애 교육'을 착실히 실천해야 한다. 먼저 학생을 사랑하는 일이다.

스승의 삶은 사랑의 삶이어야 한다. 예수는 이세상의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아들, 딸이라 불렀고, 석가는 일체중생 개유불성(一切衆生 皆有佛性)이라고 했듯이 학생들의 모든 것을 사랑과 자비심으로 사랑해야 한다. 예수를 신앙하듯, 석가를 신봉하듯 학생을 사랑할 때, 사랑의 힘을 발견하게 되고 스스로 교직의 보람을 느끼게 될 것이다. 둘째는 교직을 사랑하는 일이다. 직업을 다양하게 표현하지만 사명감을 전제로 하는게 천직이고 그 소명을 다하는 것이 교직이기에 천직관을 견지해야 한다. 교육현장에서 수월성, 개성, 창의성 등의 교육은 스승의 불타는 교육혼에서 비롯된다. 교육혼이란 천직에 대한 긍지, 열정, 충성, 사랑이 발현될 때 이루어진다. 이러한 삶을 지속적으로 영위하려면 신앙같은 신념으로 언행일치, 명실상부, 표리일체의 삶을 본보이며 살아가야 한다.

셋째는 학문을 사랑하는 일이다. 시시각각으로 급변하는 인공지능의 사회에서 가르칠 내용을 연찬에서 찾는 일은 사도의 필연적인 책무이다. 사도로서 다양한 직·간접의 경험을 쌓고, 교직의 전문성과 교양을 높이는 일은 미래 사회에 대응력을 제고하는 선행교육이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는 뜻을 되새기며 가르침을 배움에서 찾아야 한다. 스승의 탐구와 창조정신은 미래사회를 여는 문제이고 과제이다. 그래서 스승의 삶은 수범적인 삶 이어야 한다.

학생들은 스승으로부터 표면적 교과 지식만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정의적, 잠재적, 신체적 제 영역의 모든 것을 함께 배운다. 스승은 언제나 학생들에게 동일시 대상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스승의 일의적인 목적과 학생들의 다의적인 목적을 균형 있게 살펴 교육 활동을 전개해야 한다. 영어 교사가 영어를 가르칠 때, 학생들은 영어 교사에게 영어만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 선생님의 내·외현적으로 나타나는 말솜씨, 글씨, 걸음걸이 등 가치관, 인생관 등도 함께 배운다.

공자의 말씀처럼 군주가 군주다워야 신하가 신하답고, 아비가 아비다워야 자식이 자식답듯이, 스승이 스승다워야 제자가 제자답게 성장할 것이다. 이는 동일시 학습 원리에 의한 가르침이고 배움이다.

교직생활 초반에는 방황하고, 중반에는 철이 들고, 후반에는 보람을 느낀다는 말처럼 노스승의 모습에서 칠기품의 멋을 발견하게 된다. 스승의 삶은 언제나 청출어람의 보람으로 사는 게 멋있는 스승의 삶이다.

한평생 춥고 어렵고 힘든 삶에서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매화처럼 소박한 마음과 여유를 이고 살다가신 K스승이 떠 오른다. <부희식 컬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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