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희식의 하루를 시작하며] 눈(眼)의 또 다른 의미

[부희식의 하루를 시작하며] 눈(眼)의 또 다른 의미
  • 입력 : 2021. 01.13(수) 00:00
  • 강민성 기자 kms6510@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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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眼)이라는 것은 눈을 뜻한다. 안목(眼目)이 있다 없다라고 말 할 때에는 눈(眼)자와 눈 목(目)자를 함께 쓴다. 눈 목(目)이라는 것은 모든 생류(生類)가 공통적으로 지니는 오관(五官)의 하나를 말하는 것이지만 ‘안(眼)’이라는 것은 ‘목(目)’을 통해서 외부세계의 사물을 살필 줄 아는 지적능력의 개념인 것이다.

사람마다 눈은 다 지니고 있지만 안목(眼目)이 없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다. 안목은 그 사람됨과 수준과 능력을 보여준다. 이른바 신.언.서.판(身言書判)의 조건을 얼마만큼 갖추고 있는냐, 따라 인격과 거의 정비례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국민적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일수록 안목의 높고, 넓고, 깊고, 원대하기를 국민들은 기대한다.

안목이 높으면 시계고도(視界高度)가 높아지고 안목이 넓으면 시계반경(視界半徑)이 넓어지며, 안목이 깊으면, 사려의 깊이가 있고, 안목이 원대하면 과거 현재 미래를 통관할 수 있어, 밝은 세상을 상세하게 설계해 나갈 수 있다.

지도자의 안목(眼目)을 도안(道眼), 정안(情眼), 물안(物眼)으로 구별하고 후세 사람들을 깨우쳐 주며 살아간다.

첫째 도안(道眼)이다. 도안인은 옳고, 그른 것을 으뜸으로 볼 줄 아는 안목의 소유자를 말한다.

사물이 존재한다는 것은 모든 사물이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법칙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가리켜 유물유칙(有物有則)이라고 한다. 불이 위로 타오르는 것을 임상(炎上)이라고 하고, 물이 아래로 흘러내리는 것을 윤하(潤下)라고 한다.

인간을 비롯해 미물(微物)에 이르기까지 그 나름의 생존의 법칙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그것을 올바르게 볼 수 있는 안목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면 그런 사람에게는 도안을 견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도안이 없는 사람은 사리(事理)의 세계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도덕적인 측면에서 요구되는 가치기준이 상응하는 주격(主格)이 될 수 없다. 따라서 그런 사람을 지도자로 내세운다는 것은 조직발전을 위해서도 부적절하다.

둘째 정안(情眼)이다. 정안은 수시로 느껴지는 정감에 따라 애증의 기준을 척도로 삼아 사물을 판단하는 것으로서 애증을 으뜸으로 여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흔히 말하기를 상황판단을 하게될 때 팔도 안쪽으로 굽는다고 한다.

팔은 생태적으로 보았을 때 밖으로는 굽을 수는 없다. 그러나 손바닥도 세우고 일도양단하는 식으로 옳고 그름을 판가름 할 수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팔은 안으로 굽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안쪽에 사심, 사정, 사욕, 사리, 사연 등의 심리적 제요인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물안(物眼)이다. 물안자는 흑백을 변별하지 못하고 청탁을 혼돈하는 것을 말한다.

물안 자란 눈대중으로 사물의 진부를 판단하려는 경향을 지니기 때문에 위험천만하기 이를 데 없다.

물안자(物眼字)는 솔선수범으로 본을 보여줘야 함에도 위정자들이 먼저 편가르기 실정을 쏟아내는 것을 목도하다 보니 검수한 추기경이 말씀이 떠오른다. “가슴의 눈으로 인간을 보는데 70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얼마나 아름답고 힘이 되는 메시지인가! <부희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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