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유년의 집
  • 입력 : 2021. 03.05(금) 00:00
  • 김도영 기자 doyou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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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매의 여름밤'.

강화길 작가는 이를테면 '고딕 스릴러'라고 불려도 무방할 장르적 색채가 강한 이야기를 쓰는 소설가다. 여성 작가인 그가 그려내는 여자의 시간과 공간들은 때론 무섭고 가끔은 아프며 그 시공간에서 태어난 이야기들은 익숙한 듯 시작되지만 굉장히 낯설고 완전히 새롭게 끝난다. 그의 작품집인 '화이트 호스'에는 '가원'이라는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작품 역시 그렇다. 나는 그 단편을 읽고 난 후 마치 쓸쓸한 괴담이라도 들은 것 마냥 책을 덮고 정체 모를 불안에 조금 무섭고 많이 슬펐다. '가원'은 느닷없이 사라진 외할머니를 찾기 위해 잊고 있던 옛집으로 향하는 외손녀의 이야기다. 엄하고 혹독했던 할머니와는 다르게 손녀에게 다정했던 할아버지가 당신의 피난처이자 손녀의 유토피아로 만들었던 집이 바로 '가원'이다. 또한 '가원'은 할머니의 '호'이기도 했던 외롭고 아름다운 시공간의 '이름'이기도 했다. 꾸짖는 어른을 좋아할 어린이가 세상천지 어디에 있겠는가. 그래서 어린 시절 손녀는 무서운 할머니의 눈을 피해 다정한 할아버지와 '가원'에 숨곤 했다. 그렇게 손녀와 남편이 가원에 숨는 사이 할머니는 그들의 삶까지 먹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삶을 메꾸려 애쓰는 바지런한 여성과 삐죽이 튀어나온 솜처럼, 세상을 떠도는 남성의 이야기는 동화가 될 수 없다. 할머니는 세상을 살았고 할아버지는 구름 위를 걸었다. 솜사탕 같이 달콤함 구름을 쳐다보며 자란 손녀는 이제는 성인이 되어 가원 속으로 사라진 할머니를 찾아내면서 또 다른 그녀를 조금씩 발견하게 된다. 몰랐거나 혹은 알 수 없었던. '가원'은 추억 속에서 무섭고 혹독 하기만 하던 할머니의 속내를 알아가는 다 큰 손녀의 끄덕임과 되새김질 그리고 세찬 도리질로 기억되는 작품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름답지만 서글프고 무서운, 유년의 공간이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게 되는 소설이기도 했다.

 윤단비 감독의 데뷔작 '남매의 여름밤'은 어린 남매가 여름 한 철 할아버지의 집으로 거처를 옮겨 할아버지, 아빠 그리고 고모와 함께 지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정말 이렇게 간단히 설명할 수 있는 줄거리이고 제목의 영화다. 하지만 단조로운 설명의 가능함과는 달리 '남매의 여름밤'은 유년 시절의 공간과 시간이 얼마큼 복잡하고 미묘하게 매일 다른 얼굴로 삶을 마주 보게 되는지를 정밀하게 묘사하는 작품이다.

 어느 여름, 중학교 고학년쯤으로 보이는 옥주와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로 짐작되는 동주 남매는 약간은 데면데면한 사이인 할아버지의 집으로 이사를 온다. 몸이 불편하고 말수가 적은 할아버지는 이층 집에서 혼자 지내고 계셨고 그 집은 창이 크고 채광이 좋은 아름다운 양옥집이다. 마당에는 할아버지가 가꾼 식물들이 초록의 시간들을 충분히 누리고 있고 카메라는 여름의 식물들을 가꾸고 있는 집의 마당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대사가 많은 작품은 아닌데 인물과 시간 그리고 공간이 짓는 표정들이 유독 대사 이상으로 큰 역할을 하는 영화가 '남매의 여름밤'이다.

 나는 이 장면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할아버지가 정원에 물을 주고 있던 여름날이다. 손자 동주는 열린 창문으로 할아버지를 부르고 손을 흔든다. 아무 표정 없이 호스로 물을 뿌리던 할아버지는 동주 쪽으로 돌아서서 환하게 웃으며 손을 마주 흔든다. 이런, 나는 그 장면의 아름다움 앞에서 그만 울어 버렸다. 그 장면에서 대사는 동주가 외치는 "할아버지!" 한 마디뿐이었지만 동주의 숨소리와 파열음 없는 할아버지의 웃음소리, 수분이 많은 바람에 천천히 부딪히는 잎들의 소리, 물을 뿜는 호스에서 나오는 방울과 줄기의 소리 그리고 마주 흔드는 두 사람의 손에서 느껴지는 어떤 작고 좋은 소리들이 여름의 마당집이라는 시공간을 눈부신 감각의 언어로 전해주고 있었다.

 '남매의 여름밤'은 공감각적으로 유년의 집을 추억하는 영화다. 고소한 콩국수의 맛, 술 취한 고모의 입에서 나오던 들척지근한 맥주의 향, 할아버지의 손때가 묻은 오래된 전축의 질감, 동주의 손에 꼭 쥐어진 쇼핑백에 묻은 엄마의 온기와 그것을 바라보는 옥주의 마음속에 서린 뭉쳐진 덩어리의 무게감이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재미있게도 옥주와 동주 남매뿐만이 아니라 아빠와 고모 역시 남매로 그들의 여름밤을 다시 함께하고 추억한다. 엄마의 자리가 비워진 공간 안에서 남매는 서로의 어깨를 내어주는 사이이자 여전히 서툰 아빠의 걸음을 부축하는 동반자가 된다. 어쩌면 남매는 태어나 처음 만나는 가장 가깝고도 먼 타인일 것이다. 자라나는 매일 동안 서로의 마음을 들고 났던 이 관계는 생각보다 어렵고 생각 이상으로 애틋하지 않을까. 슈퍼 앞에 앉아 어둠이 내린 여름밤을 어깨에 지고 캔맥주를 나누는 남매의 대화 속에 더 뾰족해질 수도 있을 고된 투정들이 자욱하게 되살아나는 지나간 향의 기운에 덮인다. 나는 그 장면들이 주는 덜 못된 것들의 토닥거림에 완전히 반해 버렸다.

 지나가고 있는 시간들과 지나버린 시간들 사이에 놓인 계절의 공기를 이토록 아름답게 담아낸 여름 영화가 있었을까 생각하면 다시 '남매의 여름밤'이 더 좋아지기 시작한다. 이제껏 여름 영화는 대개 청춘의 상징처럼 느껴지곤 했는데 이 작품이 그리는 여름은 십대 후반부터 삼십 대 초반에 걸쳐진, 이를테면 욕망하는 젊음의 바다 라든가 한 철 로맨스의 정념 같은 것들이 담겨 있지 않다. 그저 유년의 집 안에 들고 나는 공기를 한 모금씩 들여 마시는 것처럼 만들어진 장면들이 모여 근사한 가족 영화가 완성됐다.

 포털 사이트에서 누군가 이 작품에 대해 쓴 한 줄의 평이 가슴에 콕 하니 박혀서 기록해둔다. '계절은 다시 오지만 시절은 다시 오지 않는다'라는. 그런데 우리에겐 영화가 있어서 그 시절과 계절을 함께 다시 불러올 수 있으니 정말 기쁘고 아름다운 일이다. '남매의 여름밤'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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