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잘 부탁드립니다

[영화觀] 잘 부탁드립니다
  • 입력 : 2022. 01.21(금) 00:00
  • 최다훈 기자 orca@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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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지난 1월 12일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 두 편이 같은 날 한국 극장가를 찾았다. '글래디에이터', '델마와 루이스', '마션' 등을 연출한 리들리 스콧의 '하우스 오브 구찌'와 '쥬라기 공원', '라이언 일병 구하기', '마이너리티 리포트' 등의 작품을 만든 스티븐 스필버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그 두 작품이다. 1937년생인 리들리 스콧과 1946년생인 스티븐 스필버그는 시네필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큼 대중적인 인지도와 호감도가 높은 감독들이다. 리들리 스콧은 1977년에, 스티븐 스필버그는 1964년에 데뷔작을 발표했으니 두 감독 모두 40년 넘게 영화 인생을 살아오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또한 두 감독 모두 아카데미 시상식의 트로피를 여러 차례 거머쥐었고 전세계 박스오피스를 호령한 작품들도 한 두 작품이 아닌 명실상부한 거장들이다. 관객들이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의심을 갖지 않게 만드는 신뢰감은 아무나 갖을 수 있는 영광이 아닐 텐데 이 두 감독의 행보는 놀라움을 넘어 존경심이 들게 만든다. 특히 두 감독의 전작들인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와 '레디 플레이어 원'은 각각 '리들리 스콧'만이 하는 것, '스티븐 스필버그'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을 담아낸, 영화 팬들에게는 선물과도 같은 작품들이었다.

 1주일 사이에 두 감독의 신작들을 극장에서 관람했다. 신뢰와 기대를 너무 크게 마음에 담았던 것일까. 두 편 모두 아쉬웠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 모두 2시간 30분이 훌쩍 넘는 러닝타임 안에 두 감독의 이름 만큼이나 유명한 소재들을 다루고 있었다. 리들리 스콧은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구찌' 가문의 스토리를, 스티븐 스필버그는 뮤지컬의 클래식으로 불리우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선택했다. 두 편 모두 흠잡을 데 없는 완성도를 지닌 것도 공통점이다. 안정된 연출, 매끄러운 편집 그리고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는 훌륭하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전초전이라 불리는 수많은 시상식들에서도 두 편 모두 다양한 부문에 후보 지명되며 그 작품성을 인정 받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흥행 성적은 기대치를 밑돌고 있다. 자국인 미국은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관객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개봉 2주차에 접어 드는 시점에서 두 작품 모두 국내 관객은 10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 이름값에는 못 미치지만 무난한 평작이라는 평가를 받는 '하우스 오브 구찌'에 비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 대한 관객들의 평가는 심각할 정도로 좋지 않다. 대중성의 한 지표라고 볼 수 있을 포털 사이트와 멀티 플레스의 평점 모두 6점대를 형성하고 있을 정도다. 조금 의아한 것은 두 감독 모두가 이를테면 아트 필름을 만들어 온 이들은 아니라는 것이다. 리들리 스콧의 '마션'은 500만에 가까운 국내 관객을 동원했고 스티븐 스필버그 또한 근작인 '레디 플레이어 원'으로 200만을 웃도는 관객을 모은 바 있다. 이른 바 대중성을 이미 확보한 두 감독들이 작품이 왜 2021년 대중들에게 좋지 못한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일까.

 결과적으로 패션 브랜드 구찌에 관심이 없어 보이는 리들리 스콧의 영화는 뜨겁고 선명한 내면의 욕망을 다루느라 흥미로운 시각적 재미를 등한시 했고 스티븐 스필버그는 원작에 대한 깊은 애정을 표현하느라 동시대의 관객들을 설득할 카드를 준비하지 못했다. 창작자가 보여 주고 있는 것과 관객이 보고 싶은 것 사이에는 언제나 괴리가 있기 마련이다. 리들리 스콧은 시대극의 외피 안에서 겹겹이 쌓인 인간의 욕망을 벗겨내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다. 그의 영화는 늘 묵직하게 관객의 마음을 흔드는 구석이 있었는데 그것은 아마 감독 리들리 스콧의 시선이 늘 인간의 본질을 꿰뚫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덕분에 촘촘하고 집요하게 인물들을 파고드는 그의 영화들에 늘 감탄해 왔는데 '하우스 오브 구찌'에서 리들리 스콧의 시선은 다소 기계적이다. 그가 이 작품 속에서 애정을 가지고 탐구한 캐릭터가 있는지 조금 의문이 들 정도였다. 반대로 스티븐 스필버그의 놀라운 지점은 상상력이다. 그가 그려내는 세계들은 장르와 무관하게 경이로울 정도로 새롭고 특별해서 누구와도 닮지 않은 작품들을 선보여왔다. 하지만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완성도를 넘어서는 쾌감을 전해 주지 못한다. 천의무봉의 솜씨라 할만큼 기술적으로는 탁월하지만 스필버그 특유의 빛나는 상상력이 엿보이지 않는다. 무려 셰익스피어의 스토리를 차용한 작품이기에 구태의연하게 느껴질 수 있는 시대착오적 설정들을 감안하더라도 스필버그가 지금 시대의 관객들을 사로잡을 만한 비장의 무기를 고려 했는지 에는 의문이 든다. 기능적으로 흠 잡을 데는 없지만 '올드함'이 매력이 되지 못한 이 작품을 마음에 둘 데도 많지 않다는 얘기다.

 이름에 값 하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 이토록 아쉽다는 투정은 어서 다음 작품을 보고 싶다는 뜨거운 응원이다. 두 거장의 다음 작품을 기다린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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