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그녀를 보기만 해서는 알 수 없는 것

[영화觀] 그녀를 보기만 해서는 알 수 없는 것
  • 입력 : 2022. 03.25(금) 00:00
  • 박소정 기자 cosorong@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영화 '스펜서'

영화 [스펜서]의 도입부, 스크린에는 ‘실제 비극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자막이 뜬다. 그렇다. 이 이야기는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한때 세계에서 가장 주목 받았던 한 여자의 실화이자 비극을 담고 있다. 왕비가 되지 않고 자신의 이름 ‘스펜서’를 찾고자 했던 왕세자비 다이애나. [스펜서]는 그녀가 이혼을 결심한 성탄 연휴 3일 동안의 마음의 지옥도를 그리고 있는 영화다. 영화 [네루다]와 [재키]를 통해 실존 인물의 삶을 감각적인 영상미로 그려온 파블로 라라인 감독과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통해 이름을 널리 알린 촬영 감독 클레르 마통, 그리고 [팬텀 스레드]와 [파워 오브 도그]를 통해 영화 음악 감독으로도 빼어난 성취를 보여 주고 있는 조니 그린우드가 합세한 영화 [스펜서]는 실제 비극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 아름답고 또 아름답다. 미술과 의상을 담아내는 카메라는 미세한 색감의 변화를 놓치지 않는 황홀경을 선사하고 인물의 마음 안을 울리는 듯한 음악은 유려하다.



하지만 [스펜서]는 관객에게 다이애나라는 실존 인물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담보하는 영화다. 사건이 아닌 심리 중심의 이 영화는 일반적인 전기영화와는 다른 길을 간다. 영화 내내 인물의 전사가 드러나지 않고 서사는 드라마틱 하게 전개되지 않는다. [스펜서]는 가끔 연극의 모노 드라마나 실험 영화 같이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는데 이러한 부분들은 관객의 몰입을 다소 방해하기도 한다. 다소 불친절하거나 혹은 불균형적으로 느껴지는 영화를 말 그대로 자신의 멱살을 잡고 끌고 가는 건 다이애나를 연기한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다. 이미 전세계 유수 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을 휩쓸고 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후보 지명되며 생에 최초로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쥘 것으로 기대와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 [스펜서] 속에서 그녀는 화려한 샤넬 착장 안에 자리한 부서질 것 같고, 부러질 것 같은 다이애나의 마음을 힘겹게 끌어 안은 채 관객 앞을 비틀거리며 걷고 도망치듯 뛰어간다. 손에 잡힐 것 같지는 않지만 결코 눈 돌릴 수 없는 어떤 인물을 그려내는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는 대단히 인상적이다.



[트와일라잇]시리즈의 하이틴 스타로 전세계에 이름을 알린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대형 프랜차이즈의 아이콘으로 많은 이들에게 각인된 배우다. 눈부신 뱀파이어 에드워드와 사랑에 빠지는 소녀 벨라는 로맨스 판타지 장르에서 가장 유명한 캐릭터 중 하나다. 실제로도 에드워드 역의 로버트 패틴슨과 연인 관계가 되기도 했던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이후 아이코닉한 하이틴 스타에서 이슈 메이커로도 유명세를 얻게 된다. 대히트를 기록한 시리즈물에서 실제 연인 관계로 이어지며 파파라치들의 표적이 되기도 했던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로버트 패틴슨과의 이별 후 본인이 양성애자임을 커밍 아웃했고 최근에는 동성 연인과의 약혼식을 발표하며 또 한 번 세간의 이목을 집중 시켰다.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행보다. 물론 배우로서의 행보도 이에 못지 않다. 장르물의 스타였던 그녀는 이후 아트 필름으로도 영역을 넓혔다. 특히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과 함께 한 두 편의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와 [퍼스널 쇼퍼]는 그녀의 필모그래피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 두 작품 속에서 그녀는 설명하기 어려운 영적인 기운들, 신비스럽고 불안한 체험들을 특유의 눈빛과 몸짓에 담아 연기해냈다. 기존의 그녀의 작품들과는 확연히 달랐고 흥미로운 건 두 작품이 크리스틴 스튜어트에게 놀라울 정도로 잘 어울렸다는 점이다.



지난해와 올해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연달아 선보인 두 편의 영화 [셰버그]와 [스펜서]는 모두 실존 인물을 영화화한 작품들이다. 유명한 실존 인물을 연기한다는 것은 모 아니면 도의 상황이라는 것을 우리는 여러차례 경험해왔다. 헐리웃의 신데렐라와 월드와이드 이슈메이커 라는 외피 안에 도사리고 있던 서걱거리는 불안과 신비로운 존재감 그리고 무엇보다 거침 없는 호기심에 더해진 정교하고 능숙한 표현력까지. [스펜서]는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패닉 룸]이후 20년의 세월에 농축한 진액을 기어코 관객에게 떨어뜨리는 영화다. 그 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깊고 진하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4940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