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코로나19는 처음 보고됐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지구를 장악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리가 살았던 이전의 시간은 빠르게 회귀하듯 혹은 빠르게 감아지듯 흘러갔다. 세계는 봉쇄됐고 모든 길은 건조하게 말라갔다. 바이러스가 움켜쥔 일상은 세상에서 모든 개인들을 분리시켰다. 잠시 주춤거리면 될 줄 알았던 시간은 절기를 지나고 해를 넘기며 지속됐다. 그렇게 2년이 훌쩍 지났고 우리는 New Normal이 됐다. 그러나 세계는 물론 한 국가 안에서도 공간을 폐쇄하고 개인을 격리하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비대면 접촉이 야기한 New Normal이 과연 정상적인가는 의문으로 남는다.
'이전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하는 물음은 종식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긴 시간의 터널을 지나며 점차 체념으로 바뀌었다. 세계화는 아득해졌고 개인 생활방식은 변화하며 이른바 '각자도생의 시대'로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그러는 사이 자연과 인간, 남성과 여성, 부유층과 빈민층의 경계는 뚜렷해졌다. 나라 안팎은 혼란스럽고 세계질서는 전쟁으로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 어떠한 추세도 영원히 지속되지 않으며 또한 원점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더 악화될 수도, 더 나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 그것은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코로나 시대를 건너며 마주한 모든 경계의 민낯은 우리가 애써 외면했던 참혹한 진실이었을지 모른다. 이제 '돌아갈 수 있을까'의 물음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의 절박함으로 다가왔다.
2020년 3월부터 시행된 거리두기가 2022년 4월 18일, 2년 1개월 만에 해제됐다. 꿋꿋하게 버텨온 일상이 드디어 변곡점 위에 있는 듯하다. 여전히 예측할 수 없는 변수에 불안한 '해제'이지만, 긴긴 '격리'에 지친 마음은 조심스레 참았던 숨을 내쉰다. 어쩔 수 없이 지난 시간들이 빠르게 스쳐간다. 마음 편히 마주하지 못했던 시간 속에서 안부의 끝자락은 '이전' 일상에 대한 그리움이었지만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시간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발자국을 남기기 마련이다. 일상의 변곡점 위에서 찍혀진 발자국을 돌아보고 걸어갈 방향을 가늠해 보는 시간, 남겨진 것과 잃어버린 것을 헤아려보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끝내 살아야 하는 시대라면, 그래서 꿋꿋하게 버텨낸 시간이었다면 이제 당면한 과제들을 하나씩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2020년 서늘했던 봄을 기억하기에 더욱 따뜻한 봄, 모두가 섬이 됐던 지난 시간 속에서 우리가 발견한 것이 '괜찮은 나'였기를, 더 격렬하게 서로를 보듬어줄 수 있는 동력이 됐기를 무수히 많은 '괜찮은 우리'들이 '이후'의 시대, 모든 음지를 비추는 햇살이 되길 간절히 기원한다.
우리는 오래 멈춰있기도 했으나 '함께'의 소중함 또한 아프게 깨달았으니 말이다. <김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