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주의 제주살이] (39)처마 밑 비 떨어지는 데 양하를 심었다

[황학주의 제주살이] (39)처마 밑 비 떨어지는 데 양하를 심었다
  • 입력 : 2022. 06.21(화) 00:00
  • 오은지 기자 ejoh@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양하는 생강과에 속하는 채소이다. 제주 특산물 중의 하나이며 제주에서는 양애라고도 부른다. 아직까지 국내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 특유의 향과 맛 때문에 일본에서는 고급 향신료 채소로 널리 애용되고 있다. 버릴 데가 없는 것이 또한 양하의 장점이다. 봄에는 양하 줄기로 국을 끓였고, 여름에는 부드러운 잎을 따서 먹었다. 양하근이라 부르는 꽃봉오리는 가을에 절임, 무침, 구이 등으로 요리해 먹었다. 향신료로 쓰이는 부분은 어린순과 뿌리이다. 약재로도 많이 사용된 채소이다. 기침, 가래, 진통, 월경불순, 식욕부진 등의 개선에 효과가 있고, 최근엔 보라색 껍질에 항산화 성분인 안토시아닌이 함유되어 있어 암 예방과 혈관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졌으며 풍부한 섬유질 때문에 체지방 감소, 다이어트에도 인기 있는 음식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렇듯 쓸모 많고 여러 용도로 사용된 양하를 제주 가정집에서는 처마 밑 비 떨어지는 데에 심었다고 한다. 땅이 부족하고 물이 적은 척박한 제주살이의 한 지혜라고도 할 수 있으리라. 그대로도 좋지만 처마 밑 비 떨어지는 데마다 양하를 심고 가꾼 그 자체가 한편의 아름다운 이야기이며, 어려운 삶을 풀어내는 것 또한 삶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이다. 이러한 양하 이야기는 제주향토음식 명인 1호인 김지순 선생님에게 들었다. 어느 날 월정리의 백년된 구옥 카페인 '카페로쥬'에 앉아 선생님의 음식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제주에 생각보다 먹을거리가 많지만, 일 년 내내 먹었던 것으로 톳과 쌈을 꼽았다. 특히 톳냉국이 제일이라고 했다. 바다에서 가져와 말리면 소금이 피는데, 그걸 날된장을 넣고 물만 부으면 바로 톳국이 되고 톳냉국이 된다. 마찬가지로 계절마다 나는 야채를 이용한 쌈이야말로 제주의 참 먹거리였다는 것이다. 그런 기억을 더듬는, 아끼고 아껴서 먹었던 그 몇몇 가지를 떠올리는 자의 눈빛은 아련했다.

또한 제주에서는 '리'자 들어가는 네 가지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도 했다. 자리, 벤자리, 객주리, 북바리가 그것이다. 가장 귀한 것은 물이었다. 오죽하면 "돼지 한 마리에 물 한 허벅"이라는 말이 있었겠는가. 가정에서 여인들의 물 구하는 일이란 바다에서의 밭일만큼 어려운 일이었고, 섬에선 먹을 것 자체가 귀했으니까 종합하면 "제주 음식은 볼품이 없다"고 했다. '볼품없다'는 건 제주 음식의 귀함과 일미(一味)의 애정어린 표현이지만, 무엇이건 귀했던 섬에서 나는 것들은 특별한 조건과 환경 속에서 특별한 효능과 맛을 가진다. 그래서 제주 향토 음식들은 단순히 그저 알만한 재료와 레시피에 의한 것이 아니다. <시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6993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