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9] 2부 한라산-(5)삼신산, 3신산인가 3신의 산인가

[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9] 2부 한라산-(5)삼신산, 3신산인가 3신의 산인가
‘한라산=영주산’ 특정 근거.논리 타당성 불분명
  • 입력 : 2022. 07.12(화)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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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세기, 한라산은 영주산 기록


옛사람들이 삼신산이 모두 우리나라에 있다고 해왔을 뿐만 아니라, 금강산, 지리산, 한라산이 곧 그것이라고 지목해 온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동국세기'라는 책에는 금강산은 봉래산, 지리산은 방장산, 한라산은 영주산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지만, 출판연대는 알 수 없다. 세종 재위 연간 서기 1418~1450년 중에 출판했을 가능성이 있다.

서귀포에서 바라본 한라산.

이수광은 1614년 편찬한'지봉유설'권42, 지리부 산조에서 '세상에서 말하기를 삼신산은 우리나라에 있으니, 금강산은 봉래산, 지리산은 방장산, 한라산은 영주산이라고 한다'라고 했다. 이중환은 1751년 발간한 '택리지'복거총론에서 '세상에서는 금강산을 봉래산, 지리산을 방장산, 한라산울 영주산이라고 한다'라고 했다. 차천로는 그의'오산설림'에서 '삼신산은 모두 우리나라에 있으니 방장산은 곧 지리산이고 영주산은 곧 한라산이고 봉래산은 곧 금강산'이라고 했다. 이 책의 간행 시기는 저자 차천로가 1556~1610년에 생존했으니 16세기 말경일 것이다. 정렴은 '우리나라에는 삼신산이 있으며 백일승천도 보통으로 볼 수 있다'라고 한 일이 있음이 '북창선생시집'의 '북창선생행적'에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조선 후기의 학자 정렴(1506~1549) 일가의 시문집으로 1630년경에 간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홍만종도 그의 '해동이적'에서 '우리나라는 산수가 천하에서 첫째가니 이른바 삼신산도 모두 이 지역 안에 있다' 라고 한 바 있다. 이들은 모두 자기의 주장이라기보다는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세상에서 널리 일컬어지고 있는 말을 소개하고 있다. 이처럼 예부터 삼신산이 우리나라에 있다고 믿어 온 것은 사실이다.

동국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1530년(중종 25)에 편찬한 '신증동국여지승람', 1653년에 나온 이원진의 '탐라지', 1702년 이형상의 '탐라순력도', 1721년에 만들어진 '영주산대총도', 1750년대 초에 나온 '해동지도'에도 영주산이라는 기록이 있다.

삼신산이 각각 금강산, 지리산, 한라산을 지칭한다는 기록은 1450년 '동국세기'에 나오므로 영주산을 한라산이라고 한 첫 고전일 것이다. 다음으로 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 1610년 경 '오산설림', 1614년 '지봉유설', 1630년 '북창선생시집', 1653년 '탐라지' 등의 순이다.



태백산 곧 삼신산?


한편, 삼신산이라면 봉래, 방장, 영주 등 당연히 3개의 산을 떠올릴지 모르지만, 그와는 다른 측면에서 고려해 봐야 할 부분도 있다. 삼신산은 3개의 신산이라는 것이 보편적 흐름이다. 그러나 이걸 좀 달리 읽으면 '3신의 산'으로 읽힐 수도 있는 것이다. 삼신산이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한 '사기'라는 책에도 3개의 신산이라고 명확히 하지 않았다. 앞에 인용한 '사기'의 구절을 다시 한번 보자.

'제(齊)의 위왕, 연(燕)의 소왕 때부터 사람을 시켜서 바다에 들어가서 봉래, 방장, 영주를 찾게 했다. 이 삼신산은 전하는 바에 의하면 발해 속에 있는데 인간을 떠나기 그리 멀지 아니하다. …일찍이 거기까지 간 사람도 있는데, 여러 선인 및 불사약이 모두 거기에 있으며 거기에 있는 만물과 금수는 모두 붉(白)이다. 황금과 금은으로 궁궐을 지어 놓고 있다.'

이 이야기가 '3개의 신산'에 해당할까 아니면 '3신의 산'에 해당할까.

환인, 환웅, 환검(단군)의 3신(神 혹은 聖)과 인연이 있는 산으로서의 태백산(백두산)을 지칭한다는 견해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예로부터 산신(産神)으로 '삼신'을 신앙하는 습속이 있는데, 이 삼신이 바로 3신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환인(조화신, 칠성신),환웅(교화신, 독성),단군(치화신, 산신)은 각각 다른 3신이지만 하느님으로서는 1신이다. 따라서 3신은 곧 하느님이고 태백산은 곧 '삼신산'이라는 것이다. 3신신앙은 널리 행해지게 되었는데, 고려 시대엔 삼성사(원래는 삼성당, 조선 초에 와서는 삼성사 또는 삼성묘로 개칭)가 있었고, 평양엔 '단군사'가 있었을 뿐 아니라 옛날부터 사찰에는 '삼성각'을 설치하게 되었으며, 민간에서는 삼신신앙으로 이어져 내려온다는 것이다. 이러한 3신신앙과 깊은 관계가 있는 태백산이 3신산 즉 3신의 산이라는 것이다.



미스터리의 삼신산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결국, 금강산, 지리산, 한라산, 이 3 산이 곧 3 신산이라 판단하기에는 별다른 뚜렷한 근거가 없다. 우리나라엔 산이 많은데 왜 하필 이들 3개의 산으로 특정했는지 어디에서도 찾을 길이 없다. 왜 한라산이 영주산인지, 그게 무슨 뜻인지, 제주도 사람들도 영주산이라 한 적이 있는지 등은 기록이 없다.

더구나'사기'라는 책은 중국 전한의 사마천이 상고시대의 오제~한나라 무제 태초 연간(BC 104~101년)의 중국과 그 주변 민족의 역사를 포괄하여 저술한 통사이다. 기원전 100년도 더 전의 책이다. 기원전 82년에 고구려족이 한 4군 중 임둔, 진번군을 공격 축출하고, 기원전 75년에는 현도군을 공격하여 요동지역으로 축출하면서 세력을 키워 가는 중이었다. 이런 와중에 기원전 57년 혁거세가 즉위하면서 신라가 건국했고, 그 20년 후인 기원전 37년 고구려는 주몽이 졸본부여에서 즉위하면서 건국했다. 백제는 이보다도 거의 20년 후인 기원전 18년에 건국했다. 그러므로 제주도는 아직 집단이나 통치체제가 성립하기 전 상태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라산을 영주산이라고 부른 사람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결론적으로 영주산을 한라산이라 특정할 근거도 한라산 즉 영주산이라는 논리도 타당성을 찾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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