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아름답고 희생하지 않는 엄마에 대해

[영화觀] 아름답고 희생하지 않는 엄마에 대해
  • 입력 : 2022. 07.22(금)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영화 '로스트 도터'.

[한라일보] 나는 고양이 두 마리를 입양해 5년째 한 식구로 지내고 있다. 둘째 고양이를 입양할 때는 입양자의 자격을 시험하는 여러 가지 질문에 대답해야 했다. 싱글남인데 고양이를 잘 케어할 수 있는지, 고양이에 대한 지식과 양육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 고양이와 함께 살아갈 안정적인 경제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비롯한 여러 가지 질문들이었다. 나는 고양이의 입양자로는 다소 부족한 조건이었지만 첫째 고양이가 나와 함께 집 안에서 잘 지낸다고 판단되었기에 둘째 고양이를 입양할 수 있었다. 내가 선택한 고양이와 함께 사는 일은 자주 행복하고 종종 골치 아팠으며 가끔은 힘에 부쳤다. 우리는 함께 잠들고 따로 깨어났으며 원하는 것들에 대해서 토론으로 합의에 이를 수 없는 관계였다. 우리 사이에 사랑이 커져가는 순간들 틈에 다른 감정들도 함께 자라났다. 어느 날 고양이와 내가 함께 아픈 날이 있었다. 고양이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다녀온 뒤 나는 한참을 앓았다. 그리고 내 앞에서 나를 걱정하듯 소리를 내는 고양이를 보며 엉엉 울어버렸다.

배우 메기 질렌할의 감독 데뷔작 '로스트 도터'는 모성이라는 수갑과 욕망이라는 열쇠를 함께 지닌 여성들의 이야기다. 임신과 출산, 육아를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못했던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에 깊은 공감을 느꼈다. 선택의 결과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의 무게와 의무에 대한 부담감을 아마도 조금은 알고 있어서였던 것 같다. 결혼과 출산이 스스로의 선택이라고 하더라도 그 결과는 누구도 쉽게 짐작할 수 없는 영역일 것이다. 이해의 영역을 넘어선 지점에서는 넘치는 오해가 파도처럼 생겨나고 그 오해를 끌어안고 나아가는 곳은 대체적으로 망망대해다. 아름답게 반짝이는 윤슬을 만드는 것이 짐작할 수 없는 넓이와 깊이의 바다 그리고 타오를 듯 뜨거운 태양의 조합이라는 것은 망연자실한 사실이다. '아름답고 희생하지 않는 엄마에 대하여'라는 '로스트 도터'의 홍보 문구는 부드럽지만 날카롭게 오래되고 무딘 관성을 파고드는 이 뾰족하고 눈부신 영화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

'로스트 도터'의 주인공 레다는 그리스의 아름다운 휴양지를 찾은 중년의 교수다. 그녀는 홀로 찾은 휴가지에서 책을 읽으며 한적한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한 무리의 대가족이 그녀의 앞에 나타나 해변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대가족의 일원 중에서 칭얼대는 어린 딸을 데리고 있는 젊은 여성 니나가 자꾸만 레다의 눈에 밟힌다. 휴양지에서 레다는 종종 사소한 불안의 징조들을 마주친다. 그리고 그 징조들은 레다가 과거에 두고 온 환영들을 데리고 온다. 딸들을 버리고 가출을 감행했던 엄마 레다는 모성이라는 낡고 무거운 수갑을 번쩍이던 욕망의 열쇠로 열어버린 적이 있다. 엄마라는 이름 앞에 삶의 많은 것이 무력화되어 무너지던 지점에서 레다는 자신의 의무 대신 욕망을 선택한 경험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수면 아래 있던 레다의 죄책감과 상처가 니나라는 나를 닮은 누군가를 통해 휴양지의 해변으로 올라와 서걱거리는 마찰음을 내기 시작한다.

'로스트 도터'는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을 극 중 인물들은 물론이고 관객들에게 연이어 던지는 영화다. 모성이란 무엇인가, 모성에 대한 오해와 이해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그리고 이상과 현실 사이 우리는 어디쯤에서 파도치고 있는가. 어느새 레다와 니나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모성을 강요당하는 압박감과 나를 나로 만드는 꿈과 감정에 대해 말하지 않아도 공감할 수 있는 사이가 된다. 불안한 눈빛으로 많은 대화를 나누던 그들은 끝내 입을 열어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는다. '이런 감정들이 지나가냐'고 묻는 니나를 보며 레다는 '지나가지 않는 감정들도 있다'고 답한다. '로스트 도터'는 여름의 휴양지라는 일견 평화롭게 보이는 공간에서 완전무결이라는 불가능한 모성 신화의 환상성과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실체를 다양한 각도로 들여다보는 영화다. 마치 먼지 쌓인 귀금속을 닦아내듯이, 썩은 과일의 밑부분을 도려내듯이 그렇게. 그리고 불가능함과 불완전함이야 말로 완전한 사랑과 충만한 욕망의 불가역성일지도 모른다.

<진명현 독립영화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 (전문가)>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6222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