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정묵의 하루를 시작하며] 대중문화예술의 시의성(時宜性)

[좌정묵의 하루를 시작하며] 대중문화예술의 시의성(時宜性)
  • 입력 : 2022. 08.17(수)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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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말복이 지났다. 올해는 특히 더위와 더불어 정치, 사회 분위기 등이 따분할 정도로 지겨웠다. 이 지독한 여름도 마땅히 다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다. 벌써 과육을 떨어뜨린 복숭아나무나 아직도 열매 속으로 색깔을 다 담아내지 못한 사과나무며 배나무의 잎들이 한세상 살아온 삶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 삶이란 언제나 신비한 일이라서 어느 가지 옆으로 다음해를 기약할 새 가지가 돋아나기도 할 일이다마는, 누구의 삶도 살아온 과정의 누더기를 보게 되는 일은 몹시도 안쓰러운 일이다.

최근, 아 오래 됐다라고 해야겠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란 영화가 많은 이들에게 회자가 됐다. 한국 영화가 이슈가 되고 소비가 되는 일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개봉 후의 기세로는 한 해 내내 이야깃거리가 될 것처럼 매스컴이며 SNS로도 널리 퍼지더니 어느 순간 영화의 이야기는 우리 주위에서 조용히 사라져버렸다. 다른 무엇보다 흥행의 요소로 여주인공인 탕웨이 역할이 작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같은 시기에 경쟁할 다른 작품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벌써 시들해진 느낌이다.

영화 제목의 '헤어질 결심'이란 말은 유행어처럼 여러 곳에서 사용되곤 하는데 정치판에서도 그렇고 일상의 대화에서도 차용이 되곤 한다. 아마도 대사 중 몇은 또 유행어처럼 한때 번지기도 할 것 같다. 마땅히 대중문화예술인 영화가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 돼 새로운 사회적 언어로서도 이야기될 수 있다. 그리고 대중을 상대로 한 매스미디어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새로운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헤어질 결심' 엔딩 후의 허탈함은 몹시 부자연스러웠다. 소통에 작위가 개입된 것 같고 메시지가 위험스럽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80년대 학생운동이나 사회운동을 했던 이력이 있거나, 지금도 대사회적으로 적극적인 활동을 하는 사회운동가들은 대부분 경찰이나 검찰을 대면하면서 서너 번 정도는 조사를 받은 경험이 있을 수 있다. 몇 년 전, 참고인이며 증인 등이 검사실로 스시초밥을 제공했다는 매스컴의 보도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형사인 경찰이 피의자, 용의자에게 특제 초밥을 대접하는 장면이 있다. 경찰과 검찰의 조사를 적어도 네댓 번 받았던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장면이다.

따뜻한 돼지국밥이나 순대국밥, 또는 떡볶이 한 접시라도 검찰이나 경찰 조사 중에 대접을 받았던 이가 몇이나 있을까. 제75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공식 초청에 이어 감독상을 수상했다는 이유만으로 영화에 몰입할 수는 없었다. 하필 이 시점에 이런 이야기가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의 회의다. 대중문화예술의 사회적 효용에 대한 단서를 잡아챌 수가 없었다. 아, 서스펜스의 요소가 있기는 했지만 '사랑'이라는 인간 본성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일까. 아니면 검사는 제공받지만, 경찰은 제공한다는 메시지일까. <좌정묵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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