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어서도, 보여서도 안되는…] (8)‘공존’으로 나아갈 길

[없어서도, 보여서도 안되는…] (8)‘공존’으로 나아갈 길
‘3D업종 노동력’ 아닌 ‘사람’으로 인식 바꿔야
  • 입력 : 2022. 08.23(화) 00:00
  • 강다혜 기자 dhka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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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제주시 한림읍 한림항 인근 카페에서 만난 함영식(왼쪽)씨와 미얀토씨. 강다혜기자

[한라일보] "동료 선원이 바다에 빠졌는데, 선장이 모르고 배를 운항해버린 경우도 있었어요. 다른 동료가 발견하지 못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인도네시아 선원·제주시 한림읍)

"처음 입국해서 한국어를 잘 모를 때, "이 새O, 저 새O"라는 말이 제 한국어 이름인 줄 알았어요. 또 저는 종교가 있어서 고기를 먹지 못하는데, 2주 동안 배를 타고 나가는 내내 고기만 줘서 거의 굶다시피 했어요. 복귀한 날 밤에 도망 나왔어요"(미등록 외국인·서귀포시)

"농촌 외국인근로자를 대상으로 비닐하우스 숙소를 제공하면 고용을 불허하도록 법이 강화됐지만, 도내 곳곳에 비닐하우스 합동 숙소에서 미등록 외국인들을 재우며 월 30~40만원의 숙소값을 받는 곳도 있다. 미등록이다보니 관리·감독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것"(도내 이주민센터 관계자)

"본인이 미등록 외국인을 고용해놓고 스스로 그들을 고발하는 고용주나 브로커들도 있다. 한 번은 도내 한 제조업체에서 중국 출신 미등록 근로자가 톱으로 작업 중에 손을 크게 다쳤다. 미등록이기 때문에 산재보험과 의료보험 적용이 안되는데, 고용주가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불법체류라고 그 사람을 신고했다. 불법 고용한 만큼의 과태료만 내면 되니까 치료비보다 저렴해서다"(〃)

제주 1차산업·경제구조, 외국인 없으면 존립 불가
외국인 근로자 처우개선 통한 상생 목소리 비등
전문가 "이탈문제, 농·어민 인식 개선 절대 필요"


취재 과정에서 만난 외국인 근로자와 이주민단체 관계자들이 공유한 사례다. 코로나19는 제주사회가 그동안 이주 노동자들에게 얼마나 의존해왔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됐다. 제주도민의 필요와 수요에 의해 노동력이 송출되고 있으며, 그 이익은 제주도민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팬데믹 시대를 지나며 외국인 근로자들의 인권과 노동권, 건강권을 넘어 공존과 연대라는 가치 확장으로 이어져야 한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한국인이 기피하는 '3D'업종에 이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이들 없이는 1차산업을 운영할 수 없다는 심각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노동력 수입' 아닌 '사람이 온다'는 인식을"

제주평화인권연구소 왓 신강협 소장은 "미등록 외국인들은 도내 노동 시장의 상당한 부분을 커버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처우를 고려하지 않으면 산업적 위협이 지속될 것"이라며 "혐오냐 아니냐의 문제에서 나아가야 한다. 처우 개선이 선행되지 않으면 (근로자) 이탈 문제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신 소장은 이어 "이탈 방지 방법을 신분증·여권 수거 등 불법을 자행하는 데서 찾을 게 아니라, 인도적 측면에서 농·어민 스스로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며 "저렴한 임금으로 이들을 계속 고용하기 위해 억압하는 방식으로는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천주교제주교주 나오미센터 김상훈 사무국장은 "특별한 연줄을 갖지 않는 한 제주에는 청년이 없고, 그 자리를 메울 주인공은 외국인인데 이 현실을 인지하는 이들이 많지 않다"며 "도내 합법 외국인 근로자들을 관리하기 힘든 이유는 1차 산업에 쏠린 산업 구조 등 제주의 경제상황이 그것을 뒷받침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김 국장은 이어 "고용주들에게 물어보면 '얼마나 노동자들을 지키기가 힘든지'에 대해 하소연할 것"이라며 "결국 외국인 근로자는 '제주의 노동력'이라는 걸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코로나19 2년을 지나며 인력난을 겪으며 외국인 근로자들의 중요성을 깨달았는데, 그동안 우리 인식이 얼마나 성숙해지고 변화했는가, 정책적인 고민이 있었는가 라는 고민을 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명찬 제주글로벌센터장은 "미등록 외국인들의 문제는 본인 스스로 권리를 지키지 못하는 데 있다"며 "결국은 이들을 노동력으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사람이 온다고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제주 산업 구조에서 외국인 근로자가 필요하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라며 "미등록 외국인 고용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동시에 고용 절차나 제도를 완화할 필요성도 제기된다"고 제안했다.

|"일이 힘든 건 누구나 똑같아… 인간적인 대우를"

지난 7월 제주시 한림읍 한림항에서 선주 함영식씨와 미얀토(E-10비자·34)씨를 만났다. 지난 2008년 입국한 미얀토씨는 입국 시기부터 현재까지 함씨의 선박에서 일하고 있다. 현재는 거주 비자를 취득한 '제주도민'이다.

함씨는 "미얀토는 아들같은 존재"라며 "오래도록 같은 선박에서 일하지 않으면 성실근로자 인정도 어렵고 거주비자 취득도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선주들이 소속 선원에게 잘해주면 이탈하지 않는다. 선주들끼리 단합이 잘 되면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1년에 한 번씩 선원들 월급을 인상해줘야 하는데 올려주지 않는 선주들도 있고, 숙소를 열악하게 제공하는 선주들도 있다"며 "뱃일이 힘든 건 누구나 똑같다. 선주 인식 개선도 필요하고, 결국 외국인 처우 개선이 이뤄져서 상생해야 한다. 국내 청년은 바다에 없다"고 했다.

제주시 한림읍에서 축산 농장을 운영중인 A씨는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뒤 비자 연장까지 해 가며 꽤 오래 같이 일했던 외국인 2명이 어느 날 도망가버린 적이 있다. 그런데 3개월 쯤 되니 돌아왔더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이유를 물어보니, 임금을 2배 이상 주겠다는 브로커의 말에 흔들려서 경기도 인근 공장으로 취업했었다고 하더라"라며 "그런데 막상 근무를 시작하니까 여기보다 더 고된데다 임금도 적어 속았다는 생각에 다시 돌아왔다고 하더라"고 설명했다.

A씨는 "괘씸했지만 그동안의 정도 있고, 이들도 자기 살 길 찾아 갔던 것이라고 생각해 그냥 받아줬고, 현재까지도 잘 지내고 있다"며 "결국 우리같은 1차산업 종사자들은 외국인을 지속적으로 고용해야 하기 때문에, 현재 일하고 있는 외국인들에게 인간적인 대우와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다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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