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클럽에서 이 한권의 책을] (16)작별하지 않는다

[북클럽에서 이 한권의 책을] (16)작별하지 않는다
꿈과 현실 맴돌며 찾아오는 4·3, 제대로 작별할 수 있기를
  • 입력 : 2022. 08.26(금) 00:00
  • 최다훈 기자 orca@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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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형상화로 시적 서사
참혹함 치유할 지극한 사랑
‘옴죽옴죽 엄마 손가락 빨던'
신음 섞인 탄식 나온 문장들
순환의 역사인 눈(雪)과 함께
사실 목격하는 증언의 눈(目)

친구 인선의 부탁으로 새를 구하러 제주 중산간 마을에 오게 된 경하는 폭설로 고립된 그곳에서 인선의 식구들이 겪었던 제주 4·3을 목도하게 되는데…. 이미지들의 형상화로 이루어지는 시적 서사는 참혹한 제주 4·3을 오직 지극한 사랑의 힘으로만 치유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저자 한강, 출판사 문학동네>

▶대담자

▷양은심 : 서귀포 시민의책읽기위원회 위원

▷한상용 : 남주고등학교 교장, NJ북클럽 회원

▷고종성 : 남주고등학교 문학담당 선생님, NJ북클럽 회원

▷김효정 : NJ북클럽 회장

▷문귀례 : NJ북클럽 총무

▷강은희, 김미화, 김혜진, 이현정, 조성진 : NJ북클럽 회원

▷양은심(이하 위원) : 책에 대한 전체적인 소감은?

▷김혜진 : 제주에 이주한 지 10년째이지만 4·3에 대해 잘 몰랐었는데 이 책을 통해 조금이라도 알게 됐다. 책을 읽으면서 먹먹했던 순간들이 있었고 그 일을 겪으신 분들과 가족들에게는 4·3이라는 단어 자체가 아픔의 다른 말이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이현정 : 꿈과 현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인선의 어머니가 인선에게, 인선이 다시 친구 경하에게, 경하가 우리에게 전달하는 4·3의 이야기는 다소 혼란스럽고 어려웠다. 하지만 이러한 전달방식은 4·3이 세대와 시, 공간을 넘어 규명되어야 할 그것들과 화해해야 할 것들이 서로 맞닿아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종성 : 이 책은 작가의 이름만으로 무게감이 있었기에 각오하고 읽었지만 몇 번 실패했다. 특히나 제주의 4·3을 인물이나 사건 중심이 아니라 이미지화시켰기 때문에 이 파편들을 연결하는데 꽤 힘들었다. 그래도 한강 작가가 그려낸 4·3의 이미지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이 4·3을 알게 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새는 연약하지만 구하고 싶은 것의 구체적 실체이자 모든 걸 걸고서라도 지키고 싶은 사랑의 다른 말이기에 인선의 어머니가 오빠의 행방을 찾으려 하고, 인선이 다시 어머니의 기억에서 빠진 4·3의 흔적을 쫓았던 것은 지극한 사랑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조성진 : 다소 무겁고 부담스러울 수 있는 역사적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시를 읽는 듯한 섬세한 표현들로 4·3을 이야기했고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그것들을 증명했다.



▷위원 :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문장은?

▷한상용 : 4·3에 대한 잔인한 폭력성을 드러냄과 동시에 가족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엿볼 수 있었던 부분 중에 '어둠 속에서 옴죽옴죽 엄마 손가락을 빨던 입이'란 구절이다. 군경이 쏜 총알이 가슴을 뚫고 턱을 관통해 팥죽을 뒤집어쓴 것 같이 피를 많이 흘린 8살 난 동생에게 인선의 어머니가 자신의 손가락에 피를 내어 그것을 입에 물려줬었던 그 날을 회상하는 장면에서 그 옴죽대는 감촉이 내 손가락에도 전해졌고 앞니 빠진 자리에 그 손가락이 딱 맞았다는 구절에서는 신음 섞인 탄식이 나왔다.

▷김효정 : 인선의 어머니랑 이모가 초등학교 운동장을 헤매면서 아버지, 어머니, 오빠와 8살 동생의 시신을 찾는 장면은 잊을 수가 없었다. 특히 '죽으면 사람의 몸이 차가워진다는 걸. 맨 뺨에 눈이 쌓이고 피 어린 살얼음이 낀다는 걸.'이란 문장은 이 소설에서 소중한 것을 잃어버릴 듯한 예감이 들 때마다 끊임없이 되풀이되곤 하는데, 이것은 잊을 수 없는 비참한 가족의 죽음을 소환하면서도 이 이야기를 이어가야 하는 것은 지극한 사랑의 힘만이 그 아픔을 보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위원 : 작가는 '의지로 택한 작별', '상상조차 못 했으며 모든 걸 걸고서라도 멈추고 싶은 작별'을 말하기도 했는데요. 책 제목 '작별하지 않는다'에 자신만의 해석을 곁들인다면?

▷고종성 : 부재했음에도 불구하고 함께 했음을 느낀다는 의미로 폭력에 의한 작별은 작별이 아니며, 작별하지 않았으므로 생과 사가 공존하고, 4·3과 작별하지 않았으므로 유가족의 아픔이 온전한 우리들의 아픔으로 함께하기에 언제쯤이면 이런 제주 4·3과 잘 작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조성진 : 작별은 만남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수많은 4·3 희생자와 유가족들은 당시 생사를 알지 못했고 국가권력에 의한 희생이었음에도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명예 회복이라는 만남과는 거리가 있었다.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이었음에도 유죄라는 판결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4·3은 아직 작별할 수 없는 비극적 역사'라고 해석해 봤다.

▷한상용 : 봉합된 상처 자리에 바늘을 찔러 피를 흘리게 하여 신경을 살리는 고통과 그 과정에서의 두려움과 아픔, 희생이 있더라도 우리는 결코 국가나 권력, 이념에 의해 저질러진 잘못에 대해서는 작별해서는 안 된다. 아니 작별을 못 한다. 아픔이 있더라도 기억하고 그 속에서 진실을 밝혀내고 용서하고 화해하고 상생하며 평화와 인권과는 절대 작별하지 말아야 한다고 해석해 봤다.



▷위원 : 작가는 '눈'이라는 소재를 감각적 아픔으로 집요하게 표현하고 있는데요. 이것에 관한 생각은?

▷김효정 : 책 전반에 걸쳐 내리는 눈은 1948~1949년 가장 많은 사람이 희생된 겨울을 상징함과 동시에 아픔과 고통을 촉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물은 끊임없이 순환되므로 48년 겨울의 눈이 올해 내렸던 눈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이렇듯 눈(雪)은 순환의 역사임과 동시에 사실을 목격하는 증언의 눈(目)이라고도 할 수 있다.

▷김미화 : 온다. 떨어진다. 날린다. 흩뿌린다. 내린다. 퍼붓는다. 몰아친다. 쌓인다. 덮는다. 모두 지운다. 작가는 단순히 눈이 내리는 형상을 표현한 것 같지만 가슴 아픈 4·3의 주어를 여기다 대입해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눈은 4·3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의 고통이라는 것을.

▷김혜진 : '눈처럼 가볍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눈에도 무게가 있다,' 순전히 개인적인 무게일 수 있는 눈의 무게가 인선에겐 과연 몇 킬로그램이었을까?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눈이 내리면 생각나, 내가 직접 본 것도 아닌데. 그 학교 운동장을 저녁까지 헤매다녔던 여자애가'라는 부분을 읽고 나자 가슴에 얹히는 눈의 무게는 상상을 초월했다.



▷위원 : 내가 생각하는 4·3은?

▷김효정 : 남아있는 사람들의 아픔이기에 4·3은 아직도 진행형이고 개인적으로는 4·3을 겪으신 할머니의 삶이다.

▷한상용 : 이 책의 표현을 빌린다면, 제대로 들여다볼수록 더 고통스러운 것, 명치에 걸려 그토록 이글이글 타던 불덩이 같은 것, 화살촉처럼 오목 가슴에 막혀 있는 것, 예리하게 벼린 칼 같은 기억이 4·3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미화 : 아버지 어머니가 실제 4·3을 겪으셨고, 아버지는 당시 다리에 총상을 입어서 4·3 기념행사에도 참석하시곤 하셨다. 어머니는 아홉 남매와 중산간 동굴에서 숨어 지냈다고 얘기하시면서 그때의 참혹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하셨다. 최근에 4·3 희생자들이 수록된 책을 보게 됐는데 한 마을에서만 삼사백 명이 희생자 명단에 올라가 있는 것을 보고 어머니, 아버지 가족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운이 좋았던 거라는 씁쓸한 생각을 하게 됐다. 가슴이 아팠다.

▷문귀례 : 5·18민주화운동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데 4·3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정확한 진상규명과 함께 희생자들의 명예 회복이 이뤄지고 4·3의 올바른 이름을 찾았으면 좋겠다.

<정리=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학부모 독서동아리 ‘NJ북클럽’

2015년부터 시작한 NJ북클럽은 남주고 학부모와 교직원 등 12명 내외로 한 달에 한 번 책을 통해 소통하고 공감하는 독서 모임이다. 다양한 장르의 책 읽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작년에는 줌을 통한 모임을 할 만큼 열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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