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원하고 원망하죠

[영화觀] 원하고 원망하죠
  • 입력 : 2022. 09.02(금)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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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올해 2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발견 섹션 대상의 주인공은 김세인 감독의 장편 데뷔작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에게 돌아갔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상을 비롯 5관왕 수상, 무주산골영화제 뉴비전상, 서울독립영화제 독립스타상에 이은 수상 행보다.

 모녀 관계의 정면과 이면을 거침없이 그려낸 이 작품은 올해 하반기 극장 개봉을 앞두고 있다. 집요할 정도로 밀착된 카메라, 그 카메라를 뚫고 나올듯한 배우들의 생생한 연기 그리고 보는 이의 마음까지 전해지는 뜨거운 호흡이 140분의 러닝타임 동안 관객들을 뒤흔드는 작품이다.

 가족이라는 틀 안에 함께 존재하는 엄마와 딸 사이에는 어떤 강이 흐르고 있을까. 그리고 그 강을 건널 다리는 안전할까. 세상 누구보다 가깝지만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내밀한 관계. 엄마와 딸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놀라운 점은 그 모든 이야기가 다르다는 것이다.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의 모녀 관계는 때론 이 작품이 공포 영화가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섬뜩하고 강렬하다. 서로를 용서하고 이해하며 화해로 이르는 이야기들과는 전혀 다른 결의 모녀 이야기이다. '같은 속옷을 입고 있는 두 여자'의 엄마 수경과 딸 이정은 함께 살고 있고 속옷을 공유하기도 하지만 사이가 좋지 않다. 그들은 독한 말과 차가운 눈빛으로 서로를 찌르고 찔리며 매일 다른 상처를 남기고 입는다. 수경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다혈질에 매사 급한 성격이고 이정은 수경과 다르게 말수가 적고 행동이 느리다. 둘은 모녀 관계이지만 닮은 데가 없어 보인다. 어느 날 수경의 차가 급 발진해 이정을 칠 뻔한 사고가 생기고 이정은 엄마 수경이 고의로 자신을 해하려 했다고 확신한다. 수경의 다급한 성격과 이정의 느릿한 행동이 어긋나 이 사고를 만들어 낸 것일까. 아니면 정말 이정의 생각처럼 수경의 의도된 가해였을까. 모녀는 결국 법정까지 가게 된다.

 엄마와 딸 또한 타인이다. 아무리 가까운 혈연이라고 해도 완전히 이해할 수도 온전히 이해받을 수도 없음은 당연하다.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는 모녀 관계를 예민하게 들여다보며 사실은 각자인 타인들의 삶을 그려낸다. 너무도 다른 너와 나의 충돌이, 고통이 사실은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는 그리고 그렇기에 자연스러운 것 일수도 있다는 이 지독한 관찰기는 관객의 예상과는 다른 결말로 이어지지만 끝내 깊은 공감을 남긴다. 김세인 감독은 특히 개성 넘치는 엄마 수경의 캐릭터를 통해 모녀 관계의 환상성을 해부한다. 엄마라는 역할과 중년 여성의 욕망이 혼재된 수경의 캐릭터는 배우 양말복을 통해 구체화되는데 마치 배우 전도연과 신신애를 동시에 떠오르게 만드는 그의 열연은 이 영화의 발화점인 동시에 구심점이기도 하다. 극 중 엄마 수경이 빨간 슬립만을 걸치고 거리를 걷는 장면은 너무 또렷하게 인상에 남아 지워지지 않을 정도다. 누군가의 엄마인 동시에 연인으로 친구로 살아가는 일의 고단함 그 고단함 속에서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어떤 욕망의 감정들이 배우 양말복의 걸음에 새겨져 있다고 느껴진 장면이다.

 이토록 각각에게 사적인 모녀의 역사를 기록해낸 책이 있다. 비비안 고닉의 '사나운 애착'은 흥미진진한 에세이인 동시에 감정의 파고를 기록한 보고서이자 세상 모든 모녀 관계의 역사를 떠오르게 하는 생생하고 풍성한 논픽션이다.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의 모녀 관계처럼 '사나운 애착'의 모녀 관계 또한 다르지 않다. 비비안 고닉은 이 자전적 회고록을 통해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었던 자신의 엄마에 대해 이렇게 썼다. '누군가 엄마의 그 지독한 우울함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겐 폭력이 된다고 하자 엄마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나와 닮은 사람이 나와 다를 수 있다는 것, 나와 다른 사람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함께 살아왔지만 각자로 존재한다는 것.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는 여러 번 스스로에게 했던 질문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영화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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