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실의 하루를 시작하며] ‘고향무정’ 유감

[이종실의 하루를 시작하며] ‘고향무정’ 유감
  • 입력 : 2022. 09.07(수)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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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구름도 울고 넘는 저 산 아래 그 옛날 내가 살던 고향이 있었건만…' 1960년대 중반에 발표돼 70~80년대에 많은 사랑을 받았던 노래, '고향무정'의 첫 구절이다.

노래는 새대를 구분하고 추억을 소환한다. 필자는 이 노래를 무척이나 즐겨 듣고 불렀었다. 7080세대에다 시골 출신어서 그랬던 것 같다. 한곳에 붙박여 살아온, 당시의 시골 청년은 노년의 도시인이 돼 있다. 50여 년 전부터, 도시는 정들었던 삶의 터를 허물며 서서히 찾아왔다. 예전의 맛과 멋이 인정·인심과 함께 사라졌지만, 편리해진 삶의 환경 때문에 옛날을 잊고 살았다. 이 노래에 대한 사랑도 줄어 갔다.

노래는 때로 시대의 한과 설움을 담는다. 7080세대는 1970년대와 80년대에 대학생활을 하며 청년기를 보냈다. 그들은 당시 암울한 정치 상황과 가난한 사회에서 힘들게 지냈다. 시대 탓에 학문의 제약을 겪거나 방황도 했다, 디제이가 있는 음악다방에서 팝송이나 포크송을 들으며 낭만을 찾기도 했다. 그러면서 통기타와 맥주, 장발로 대변되는 청년문화를 형성했다. '고향무정'은 버려진 고향을 그리고 있지만, 얼추 그 시절 국민의 정서를 대변했던 것 같다. 일제 강점기의 '타향살이'와 '나그네 설움'이 그랬던 것처럼, 이 노래도 그 시대의 황량함을 '고향의 쇠락'에 비유했다.

요즘,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7080 그 시절이 새삼 그립다. 국민들은 가난했지만 근면하고 성실했다. 부족한 게 많았지만 스스로 이겨내려 노력하고 협동정신으로 힘을 함께 모았다. 국가는 살아 숨쉬는 동력으로 국민과 함께 간난을 극복하며 희망을 주었다. 그래서 그때는 행복했다. 지금은, 이루어보자고 그렇게 바랐던 시대다. 그런데 그렇게 갈구했던, 자유롭고 정의로운 사회는 구현도 그 가능성도 잘 보이지 않는다. 역사상 가장 훌륭해야 할 세상이 어지럽기만 하다. 불편함을 이 노래로 달랜다. 1절 끝이 이렇다. '산골짝엔 물이 마르고 기름진 문전옥답 잡초에 묻혀 있네.'

세상이 어지러운 것은, 정도와 위계질서를 흩트리는 자들과 그 부류들 때문이다. 이들은 역사를 호도하고 국민을 기만한다. 국리민복이 아니라 사리사욕을 추구한다. 지난날의 폐해를 욕하면서 닮아가고, 같은 편끼리 용인한다. 그러면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고 떠든다.

기억만 하는 역사, 무슨 가치가 있나. 교훈을 얻고 나은 미래를 지향해야 의미가 있다. 왜곡해서 해로울 수 있는 역사는 차라리 잊는 게 낫다. 도처에 노랫소리와 예능에 취한 웃음소리가 높으니 태평성대 같다. 하지만 의견 백출에다 중구난방, 무질서의 형국으로 보면, 이 시대는 혹세에다 난세다. '고향무정'의 2절 끝이다. '바다에는 배만 떠 있고 어부들 노랫소리 멎은 지 오래일세.' 민초들이 체감하는 세상이 아마 이럴 것이다. 이 모든 게 필자만의 생각일까? 만약 그렇다면 참 다행이다. <이종실 (사)제주어보전회 이사장·독자위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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