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수의 문화광장] 삶이 괴로운 것은 경계를 짓기 때문이다

[박태수의 문화광장] 삶이 괴로운 것은 경계를 짓기 때문이다
  • 입력 : 2022. 09.20(화)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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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사람은 태어나 얼마 지나면서부터 경계를 짓기 시작한다. 몸을 뒤척이고 네발로 기어 다닐 때, 제일 먼저 하는 행동 중 하나가 물건을 잡거나 입에 가져가는 일이다. 이 시기에 누군가 그 물건을 달라고 하거나 뺏으면 저항하지 않고 쉽게 준다. 그러다가 조금 더 자라면 뺏기지 않으려고 기를 쓰거나 "안 돼, 내꺼야"라며 소리를 지른다. 내 것에 대한 의식이 생기면서 남과의 사이에 경계를 짓는다. 이 때 나타나는 중요한 마음의 하나가 "좋다", "나쁘다"라는 경계의 감정인데 그 감정이 고통을 가져오는 씨앗이 된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만족하면 '행복하다'고 말을 하고 불만족하면 '불행하다'라는 말을 쓴다. 그러면서 행복한 것과 불행한 것 사이에 경계를 짓는다.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점차 경계를 짓는 범위가 넓어진다. 부부사이에 남편과 아내, 아이를 낳으면서 부모와 자식, 직장에 다니면서 상사와 부하 등 무수히 많은 경계를 짓는다.

특히 결혼의 대상으로 이성을 선택할 때는 외모, 학력, 재정, 성품 등 여러 요소들이 일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계의 조건이 돼 우리의 삶에 괴로움의 원인을 제공한다.

나는 결혼 후 한동안 아내의 외모에 경계를 지으며 20대와 30대의 결혼생활이 평화롭지 못했다. 그러한 경계는 나의 대인관계를 위축하게 만들었다. 부부모임이나 가족들 간의 모임을 기피했고, 부부여행의 횟수도 줄어들었다.

이러한 경계의식은 세월이 흐르면서 변화하기 시작했다. 아내에게 지워진 부정적 경계의 조건이 점차 긍정적으로 돌아섰다. 내가 갖지 못한 아내의 8남매간의 우정, 조용하고 이성적인 태도, 자녀들을 키우는 자애로운 모습 등은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가질 수 없는 품성이었다. 한편 나도 요가와 명상을 통해 의식의 힘이 생겨나고 점차 경계로 인한 삶이 내 인생을 얼마나 편협하게 하는지를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경계의식이 서서히 나에게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이러한 경계로 인한 감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나는 개인의식을 확장하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가능한 방법이라고 봤다. 그것은 호흡을 하면서 경계가 사라지는 것을 체험하는 일이다. 호흡명상에서 숨을 들이쉬면서 들숨, 내쉬면서 날숨이라고 알아차리고 바라보면 어느 순간 숨은 쉬되 들숨과 날숨이라는 경계는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부부간에도 처음에는 서로간의 다른 점이 눈에 띄면서 경계로 나타나지만 점차 의식이 확장되면서 경계가 사라진다.

이처럼 우리는 삶을 경계 긋는 과정으로 시작해 나이 들고 어른이 되면서 경계 없이 생을 마감할 수 있다. 그러므로 긴 인생의 과정에서 좀 더 일찍 경계 없는 무경계(無境界)로 살아갈 수 있는 길도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박태수 제주국제명상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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