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15] 2부 한라산-(11)백두산 이름은 어디서 왔나

[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15] 2부 한라산-(11)백두산 이름은 어디서 왔나
천지 속에 들어있는 백록담 명침의 단서들
  • 입력 : 2022. 10.25(화)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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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한라산의 별칭 두무의 기원을 밝히기 위해 백두산을 더듬어 보고 있다. 그런데 그런 중에 백두산 천지의 명칭에서 두무와 관련이 있을 것 같은 단서들이 나오고 있다. 여기서 잠깐! 백록담을 연상하면서 궁금해하실 독자들을 위해 이 문제를 해결하고 넘어가자.

호수를 가리키는 글자- 의문의 '박'과 '포'
한자는 또한 소리글자다


"흰 사슴(白鹿)이 이곳에 떼를 지어서 놀면서 물을 마셨다는 데서 백록담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그리고 옛날 신선들이 백록주를 마시고 놀았다는 전설에서 백록담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백록담의 명칭의 유래는 한라산 정상에 백록(흰사슴)이 많이 놀았다 하여 명명되었다고 하며, 백록담과 관련된 고문헌으로는 최익현의 '면암선생문집 별도진', '면암선생문집 한라산유람기' 등에서 나타난다."

서쪽에서 바라본 백두산 천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국가문화유산포털에 나오는 설명이다. 이런 황당무계한 이야기는 온갖 이야기책은 물론 정부 공식 설명에서까지 난무한다. 흰 사슴이 한라산 정상에 많이 놀았다는 것이 사실일까? 신선들이 백록주를 여기서 마셨을까? 이런 이야기는 그야말로 글자에 매몰돼 헤어나오지 못하는 꼴이다. 한자로 백록담(白鹿潭)이라고 쓰여 있으니 이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한 것인데, 이게 백록담의 지명 유래라고 내놓는 것이다.

만약 위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한자가 널리 쓰이기 전에는 무엇이라 했을까? 지명이란 글자가 들어오기 전에 이미 있었다. 그걸 어떻게든 기록해야겠기에 글자를 빌려 쓰는 것이다. 이 명칭의 유래가 분명치 않고, 알 도리도 없으니 글자를 풀이하여 설명할 수는 있으나 이건 어디까지나 우스갯소리로 넘어가야지 그게 마치 사실인 양 설파하고 다니면 곤란하다. 지명 유래라는 것이 대부분 그렇듯이 초기에는 그렇게 했을지 모르지만, 점점 세월이 흐르면서 대중화돼 정설로 굳어져 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백두산은 머리가 흰 산이요 한라산은 운한을 끌어당길 만큼 높은 산이 돼버리는 것이다. 백두산을 생각해 보자. 거의 모두가 천지를 연상할 것이다. 백두산의 풍경 사진을 걸면서 머리가 흰 산을 표현한 것보다 천지의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움, 천지 주변의 아름다운 야생화 그림이 훨씬 많은 건 이 때문이다.



이런 방식의 해석 풍토는 한자는 표의문자라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훈민정음이 우리의 독창성, 백성을 위한다는 창제의 위대성과 함께 표음문자가 가지는 다양한 장점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한자의 기능성에 대해서는 다소 소홀하게 다룬 게 아닌가 하는 면이 있다. 한자는 당연히 상형문자로 뜻글자다. 그러나 여러 가지 방식으로 표음 기능을 보완하고, 발전시키면서 한편으로 그냥 표음문자처럼 쓰기도 했다. 훈민정음이 없을 때도 우리는 소리를 기록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걸 한자 없이 어떡하란 말인가. 이런 점에서 지명 혹은 여타의 명칭의 어원을 밝히고자 할 때는 한자의 소리와 표음성에도 주목해야 한다.

중국인 주학연이란 언어학자는 이와 같이 한자의 표음성을 강조하는 편이다. 한자가 동이계 왕조인 상나라에서 창제되었으며, 고대와 현재의 동이계 민족들이 음성언어를 사용하는 알타이어족에 속한다는 점에 주목한다면 이 같은 주장이 일리가 있다고 할 것이다. 이런 말이 나오는 걸 보면 중국에서도 지명, 인명, 족명, 국명 등을 해석함에 있어 비교언어학적 실증주의보다는 문자의 표의성을 중시하는 폐단이 매우 크다는 점을 보게 된다. 참고로 여기에서 말하는 알타이어족이란 용어는 원전에 충실히 하게 따랐을 뿐 필자의 견해와 일치하는 건 아님을 밝힌다.

중국의 기록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천지에 대해 중국 역사책에 일찍부터 기록되어 있다는 점을 밝히면서, "청나라 강희제 16년(1677), 내무대신 오문신은 강희의 명으로 장백산에 올랐다. 산꼭대기에 못이 있고 다섯 봉우리로 둘러싸여 있고 물가에 서 있는데 물은 맑고 잔물결이 일며 물속에는 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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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성경지략이라는 책에는 '산 정상에 천지, 도륜박(圖倫泊), 그리고 다른 말로 달문(門)이 있다'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1908년 청나라 관리 유건봉은 장백산을 직접 조사하여 '장백산 강강지략'을 썼는데, 그 기록에 "천지는 장백산 정상에 있다. 중심점과 봉우리를 안고 지면에서 약 20여 리 정도 떨어져 있으므로 천지라고 한다."

동삼성여지도설에는 "꼭대기에 큰 못이 있는데 타문포(他們泡)라고도 한다" 동삼성기략에는 "산 정상에 도문박(圖們泊)이라는 연못이 있는데, 이를 '만'이라 한다. 번역하면 만물의 근원이라 한다". 도문(圖們), 타문(他們), 달문(門) 등은 모두 만주족 언어로 '만(萬)'을 의미한다. 천지는 또한 용담(龍潭), 해안(海眼), 온량박(溫泊) 등과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참고로 여기에서 발음은 우리 국어로 썼다. 인용한 문헌들은 모두 우리의 국경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들이다.

일단 여기에서는 백록담과 관련한 언어학적 단서를 발굴하는 데 목적이 있으므로 그런 내용에 초점을 맞춰본다.

호수를 나타내는 말로 천지의 지(池), 도륜박, 도문박, 온량박의 박(泊), 타문포의 포(泡), 용담의 담(潭) 등이 추출된다. 이 네 글자는 어떤 뜻을 가질까? 그중 담(潭)이란 말은 백록담에도 있으니 이는 공통의 뜻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박'과 '포'는 무슨 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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