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눈 감아봐도
  • 입력 : 2022. 12.09(금)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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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올빼미'.

[한라일보] 진실은 언제 거짓이 되는가. 그것을 말해야 하는 순간을 외면했을 때 그렇다. 우리는 살아가며 맞닥뜨리게 되는 진실 앞의 순간에서 당연히 해야 할 말도, 끝내 해내야 할 일도 완수하지 못한다. 질끈 눈 감고, 이를 악 물고 시도할 때도 있지만 성공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옳은 일을 행하는 것, 진실을 토해내는 것은 신념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것은 스스로를 믿는 동시에 자신이 믿지 못할 결과까지 책임져야 가능한, 시도 자체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올빼미'는 진실 앞에 눈을 감는 이들을 또렷하게 지켜보는 한 사람의 이야기다. 그는 시각 장애가 있어서 어두워져야만 희미하게 볼 수 있는 인물이다. 대신 다른 감각이 예민하게 발달돼 있는 그는 침술사로서 출중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 재주로 궁에 들어온 이 침술사는 왕족의 몸에 깊이 바늘을 찌르며 궁의 한복판에 존재하게 된다. 궁에 어둠이 내릴 때, 그러니까 가뜩이나 폐쇄적인 공간에 비틀린 불안의 암막이 만들어질 때 그는 보지 않았으면 무탈했을 끔찍한 진실 앞에 눈을 뜨고 있었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편의 흥미진진한 창작물을 만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재료를 상하게 해서도 안되고 어울리지 않는 차림을 곁들여서도 안된다. '올빼미'는 이 점을 간과하지 않고서도 새로운 맛을 내는 데 성공한 작품이다. 가장 큰 이유는 시대극의 기본기라 할 수 있는 기술적인 요소들을 탄탄하게 구축한 뒤 어느 시대에도 통용될 수 있는 메시지에 주력했다는 점이다. 권력에 눈먼 자들은 시대를 막론하고 언제나 존재해 왔고 진실 앞에 눈 감지 않은 이들이 사자후를 뱉는 순간들 덕에 한 줄기 빛이 검은 거짓의 장막을 열어왔다. 숱하게 만들어지는 히어로물 또한 이 선과 악의 대결을 기본으로 한다. 악인이 합당한 처벌을 받고 정의로운 이가 영웅이 되는 것. 현실에서 쉽게 찾기 어려운 이 쾌감을 얻을 수 있는 영화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옳다고 믿고 있는 가치를 온전한 결과로 건네받는다.

방송가에서는 이런 속설이 있다고 한다. 육아가 힘들면 육아 프로그램이 결혼이 어려우면 결혼에 관련된 프로그램이 인기가 높다는. 영화 '올빼미'는 비수기 극장가에서 손익분기점을 돌파하는 수익을 올리며 200만 이상의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 모으고 있다. 배우 유해진과 류준열을 비롯 김성철과 조성하, 조윤서 등이 고른 호연, '왕의 남자' 조감독 출신인 안태진 감독의 정성스러운 연출의 공을 감안해도 기대 이상의 성과다. 이는 어쩌면 거짓으로 점철돼 있어도 어떤 속 시원한 권선징악의 결말로 이어지지는 않는 작금의 시대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힘없는 자들의 남은 힘까지 탈탈 털어 권력의 호주머니를 채운 채 뒤뚱거리는 이들의 달음박질을 못 본 척하기 어려운 이 시대에 '올빼미'의 결말은 지금 이 시대로 고스란히 옮겨오고 싶은 판타지처럼도 느껴진다. 권력에 눈먼 자들은 듣지 못할 것이다. 덮어놓은 모든 거짓들을 지켜보는 눈 밝은 이들의 함성이 얼마나 가까이에서 외쳐지고 있는지를.

<진명현 독립영화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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