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은 산, 다양한 형태로 변화해'오리' '올악' '올리악' '오리오름' '우리' '올이' '우악' '월악' '워리' 모두 같은 말
[한라일보] 다시 '물장오리오름'이라는 이름으로 돌아가 보자. 여러 책이나 논문에서 이 오름에 대해 나름의 설명을 하고 있다. 그중에는 물장오리, 장오리오롬, 물장오리오롬, 물장오리(물장올, 水長兀)라 한다면서 그 뜻을 설명한 것이 있다. 제주도민 중에는 어렸을 때부터 '물장올'이라고 들어왔던 분들이 많을 것이다. 실제로 과거 도로변 이정표에도 물장올(수장원, 水長元)이라고 되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그렇게만 알고 있는 분들도 있다. 수장원도 아마 당시 일반에서 혹은 업무담당자가 兀(올)이라는 한자가 元(원)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쓴 것이 아닐까 한다. 이 올(兀)이라는 한자는 '우뚝할 올'로 자주 쓰는 글자는 아니다. 초기의 기록이랄 수 있는 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 1552년 ‘충암선생문집’, 1601~1602년 ‘남사록’, 1603년 ‘탐라지’, 1679년 ‘남천록’에는 장올악(長兀岳)으로 나온다. 1703년 ‘탐라순력도’에는 장올리악(長兀里岳), 1709년 ‘탐라지도’, 1709년 ‘탐라지도 및 지도병서’에는 '수장올(水長兀)', 1700년대 후반 ‘제주삼읍도총지도’에 '수장올악(水長兀岳)', 1872년 ‘제주삼읍전도’, 1899년 ‘제주지도’, 1899년 ‘제주군읍지’에는 수장올(水兀), 1954년 ‘증보탐라지’에 수장올(水長兀)과 물장오리, 1965년 우낙기의 ‘제주도’에도 물장우리와 수장올(水長兀)로 나오는 것이다. 심지어 주변 비문에는 수장올이(水伊), 장우악(藏雨岳), 수장월악(水藏月岳)이라고 되어있다고도 한다.
시호테-알린 산맥의 칸틴봉, '알린'은 '올'과 어원을 공유하는 만주어이다. 출처 위키 커먼스
이와 같이 여러 문헌에 나오는 '올(兀)'이 바로 '산'을 뜻하는 것이다. 이걸 모르는 채 위에 든 것처럼 저자에 따라 '올', '올리(兀里)', '오리', '우리', '워리' 등으로 표기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잠깐, 이 오름에 붙은 이름을 정리하고 넘어가자. 물장올, 장올악(長兀岳), 장올리악(長兀里岳), 수장올(水長兀), 수장올악(水長兀岳), 물장오리, 물장우리, 수장올이(水伊), 장우악(藏雨岳), 수장월악(水藏月岳) 등 10가지도 넘는다.
널리 쓰였던 '장오리'는 미스터리?
‘한국지명유래집’이라는 책에는 ''장오리'의 뜻은 확실치 않은데, '둘러서 있는 오름'이라고도 하고 '올(오리)'은 몽고족 말로 산을 뜻한다고도 한다.'라고 되어있다. 제주도가 발행한 ‘제주의 오름’에는 '장오리-장올'의 어원은 미상이며, 다만 '올'은 바이칼호 부근에 사는 부리야트족(몽골족)의 말로 '산'의 의미가 있다고 하는데, 이의 의미를 해석하면 '물장오리'란 물(창터진물)이 있는 오름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한다'로 되어있다.
어느 오름 이름 연구서에는 이 '올(兀)'을 '오리'로 읽고 있다. 일찍부터 '장오리오름' 또는 '물장오리'로 불려 왔다는 것을 전제하면서 장올악(長兀岳), 장올리악(長兀里岳), 수장올(水長兀·水兀), 수장올이(水伊) 등으로 표기한 것으로 봤다. 그러면서 '水(수)'는 물의 훈독자 표기, 올리(兀里)와 올이(伊)는 '오리' 음가자 결합 표기라고 설명한다. 이렇게 자세히 분석은 했으나 정작 '장오리'의 뜻은 모른다는 것이 결론이다.
그런데 올(兀·)은 '이'가 표기에 반영되지 않은 것이라고 하는 데는 다소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오히려 '올이', '오리' 같은 말들이 '올'에 '이'가 첨가된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한 것이다. 즉, 오름의 어근은 '올'이고, 지금은 소실어가 되었지만 고대어에서 '올'은 '산'의 뜻이며, 제주방언 '오름'에 마치 화석처럼 남아 있다. 이것은 만주어, 퉁구스어, 몽골어, 일본어에서 어원을 공유하는 것을 예로 들었다. 또한, 현대 몽골어에서도 '올(uul)'은 '산', 만주어에서는 '알린(alin)'은 '산'이라는 점만 보더라도 중앙아시아와 동북아, 한국, 일본어에 광범위하게 분포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리'가 '오롬(岳)'의 뜻이라면 장올악처럼 올과 악의 중첩표기에 대한 설명이 곤란하다고 걱정하는 이가 있지만 중첩표기는 우리말에서 '역전앞', '처가집', '초가집', '완두콩'처럼 무수히 많다.
'올', 산을 의미하는 최고의 조상어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이러한 변화를 보면 어느 앞선 시대에 이 오름의 이름은 '장올'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러다가 소위 육지에서 온 한자 문화에 익숙한 선비들로서는 '올'이라고 하는 이해할 수 없는 제주어를 표기하면서 '장올악'으로 되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추측이 아닐까? 그럼에도 이러한 표기와는 별도로 일반에서는 '올'이라고 하는 말이 지속적으로 전승되다가 '오리'로 변했을 것이다.
여기에 물이라고 하는 접두어가 붙은 것은 이 오름의 특징의 하나가 언제나 마르지 않는 분화구이므로 그걸 강조하는 의미였을 것으로 보인다. 산림 또는 목축문화에서 물이 갖는 의미는 지금보다 훨씬 컸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결국 현재 '오름'은 '오롬'으로, '오롬'은 '오리'로, '오리'는 '올이'로, '올이'는 마침내 '올'로 소급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물장올'이라는 이름에 남아 있는 '올'이야말로 우리 국어에 남아 있는 '산'을 의미하는 최고의 조상어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 순우리말을 잃어버린 채 한자어 '산'을 쓰고 있지만 이 '산' 이전에는 우리말 '올'이 널리 쓰였음을 알 수 있고, 이것은 진화상의 잃어버린 고리 '올'임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