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제주의 초지는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제주도 면적이 70% 이상을 차지했다. 지금은 숲이 우거져 높은 곳을 올라도 바다가 보이는 곳이 많지 않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계곡과 일부의 '곳'을 제외하고는 조금 높은 동산이나 오름에 올라가면 멀리 바다가 한눈에 들어올 만큼 시원한 섬 경관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주변의 초지와 관목으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으로 우리 선조들은 초가지붕, 곡식이나 소먹이를 쌓아둔 곳의 지붕, 우비, 새끼줄 등 만드는 데 사용하기 위해 띠밭을 가꾸고 관리했다. 또한 제주는 말, 소 등의 방목이 800여 년 전에서부터 꾸준히 이어져 왔기 때문에 넓게 초지를 목장으로 이용했고 진드기 등의 해충구제와 신선한 풀을 얻기 위해 불을 놓기도 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화학제품과 농업, 건설장비의 발달로 생활패턴도 바뀌게 되는데 집에서 농사를 위해 키우던 소를 없애면서 공동목장에 대한 이용률이 낮아지고 불 놓기가 금지됐으며 조림이 이루어지면서 초지는 점점 축소됐다. 또한 초지개량사업을 통해 목초가 재배되면서 자연초지가 점점 줄어들게 됐다. 이것은 초지를 이용한 대규모 개발사업의 기반으로 작용했고 개발과정에서 주변의 숲, 곶자왈 등이 훼손되면서 환경보전단체와 개발단체가 대립하는 빈도가 많아졌다. 이로 인해 많은 인적·물적 에너지가 소비되고 있다.
이와 같이 일련의 과정을 볼 때 과거의 초지이용은 소극적이고 자연친화적이지만 최근에는 건설장비와 건축기술이 향상으로 환경훼손이 많은 적극적인 토지이용을 하고 있다. 적극적인 이용은 주변 환경의 훼손과 일부 복원이 발생하는데 이때 복원은 본래 상태로 복원되는 것이 아니라 개발의 의도에 맞게 인위적으로 복원하는 것으로 주변 환경과 괴리가 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 현재 초지에 대한 보호등급이 낮게 평가되고 개발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고 있어 모든 초지가 개발의 압박을 받고 있다.
상상해 보자. 초지에 건축물이 들어섰다고 가정한다면 제주는 어떤 모습일까? 제주 면적의 80%가 중산간지대 이하가 차지하는데 이 중 30%를 초지라고 가정하고 20%에 건물이 들어서면 우도 면적의 13배가 콘크리트로 채워진다는 얘기가 된다.
개발 대상지 삼고 있는 자연초지에는 잔대, 삽주, 애기우산나물 등 100종이 넘는 생물들이 의존해서 살아가고 있다. 이는 제주도의 생물다양성의 한 축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초지는 개발 1순위 지역이 아니라 보호가 필요한 지역인 것이다.
지금이라도 제주도 전체를 대상으로 개발 가능한 지역과 불가능한 지역 등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개발에 따른 이익을 이용해 개발 불가능한 지역을 매수하고 관리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를 통해 자연초지를 비롯한 제주의 생태계를 유지·보호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송관필 농업회사법인 제주생물자원(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