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윤의 한라칼럼] 이별 준비

[조상윤의 한라칼럼] 이별 준비
  • 입력 : 2023. 04.18(화) 00:00
  • 조상윤 기자 sycho@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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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아프다. 많이 편찮으시다. 어려운 시절 힘들게 살아왔는데 몸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한 게 끝내 아쉬울 따름이다. 8·15 해방 전, 6·25 전쟁 전에 태어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이들이 병상에서, 가정에서 세상과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통계청 통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우리나라에서는 하루 1021명이 세상을 떠난 것으로 나타났다. 누구나 한번 태어나면 죽는다는 것은 세상의 이치여서 새삼스러울 게 없다.

문득 지인인 대학병원 교수의 얘기가 떠오른다. '탯줄'과 '콧줄'의 연관성을 알려줬다. 설명을 듣고 묘한 느낌이 들었다. 탯줄은 모체로부터 영양분과 호흡에 필요한 산소가 태아에게 공급되며, 태아로부터 나온 이산화탄소, 요소 등의 노폐물이 모체로 전달된다. 탯줄을 자르면 그때서야 비로소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다.

콧줄은 비위관 삽입(L튜브)을 통해 수분과 영양을 공급받는 장치다. 비위관 삽입은 음식물을 삼킬 수 없는 환자의 코를 통해 식도를 지나 위까지 삽입하는 관으로 음식물이나 약물을 투여하는 의료적 시술을 뜻한다.

언뜻 보면 '줄'은 새 생명을 맞이하는 것과 이승을 떠나는 전 단계에서 찾아볼 수 있는 단어인 셈이다. 그러나 탯줄과 콧줄은 엄연히 다르다. 탯줄은 새로운 세상을 위해 모체로부터 생겨나는 것이고, 콧줄은 질병 치료나 생명연장을 위해 하는 시술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호흡과 맥박만 살아있는 환자의 의지와 관계없이 연명 수단의 튜브인 콧줄에 대해서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임종을 앞두기 전 스스로 연명 치료 여부를 결정하는 사람들이 제주도에서도 늘어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만 19세 이상 성인이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됐을 때를 대비해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항암치료 등 연명의료 여부를 스스로 결정해 두는 문서다. 환자가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르렀다는 의학적 판단이 있어야 효력이 생긴다.

의향서 증가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가치, 품위를 지키며 삶을 마무리하기 위한 '웰 다잉(Well-Dying)'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것을 의미한다. 웰 다잉은 말 그대로 '잘 죽자'는 뜻이다. 하지만 잘 죽기 위해서 남은 삶을 잘 마무리하자는 의미가 더 크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지 않고, 유언장을 미리 써 놓고, 유산의 일부를 사회에 기부하자는 캠페인이 전개되고 있다. 사후 장기기증과 간소한 장례식 등도 포함돼 있다.

탯줄과 콧줄은 사실상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콧줄인 경우 질병치료와 음식물 등을 섭취하기 힘든 환자들은 예외이다. 탯줄은 태어날 때 어머니로부터 받는 것이고, 세상을 떠나기 전의 콧줄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코에 매달아 하는 것이다.

산울림의 명곡 '독백'의 가사 중 '오늘은 그 어느 누가 태어나고 어느 누가 잠들었소'라는 구절이 있다. 지금 이 순간 누가 영원히 잠들지 모른다. 결국 '존엄한 죽음'에 있어 늦은 준비는 없다.<조상윤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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