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정해진 시간 동안 정해진 거리를 달리는 기록 경기인 육상, 그중에서도 단거리 경기는 수많은 스포츠 중에서도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승부가 결정되는 종목이다. 채 1분이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출발선에 섰던 모든 선수들의 등위가 보는 이들이 시선만으로도 명백하게 정해진다. 선수가 그 경기를 위해 얼마나 긴 시간을 준비했는지, 얼마큼의 노력을 했는지를 가늠하기엔 가혹하게 느껴질 정도로 짧은 시간이다. 한 순간, 최대치의 역량을 끌어올려 질주하는 이 경기는 짜릿한 스피드의 쾌감을 전해주지만 한편으로는 외롭고 허무하게도 느껴진다. 다른 스포츠 경기와는 다르게 동료와의 협업에서 주는 서사와 감동을 기대하기 어렵고 예술과 기술 등 다양한 측면에서 채점하는 과정도 생략되기 때문이다. 그저 늘 실수 없이 달려야 한다. 옆을 봐서도 뒤를 돌아봐서도 안된다. 스프린터의 숙명이란 그런 것이다.
영화 '수색역'을 연출했던 최승연 감독의 작품 '스프린터'는 단거리 육상 선수들의 이야기를 마치 연작 소설처럼 엮은 작품이다. 은퇴를 할 나이, 여전히 트랙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현수와 에이스 자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불법을 저지르는 정호, 유망주로 손꼽히지만 소속된 팀이 해체 위기에 놓이게 되는 준서. 각기 다른 연령대, 세 명의 스프린터들은 한 방향을 보고 달린다. 달려야 답이 나오고 달리지 않는 걸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속의 그 누구도 짜릿한 보상을 얻지 못하고 뜨거운 환호를 받지도 못한다. 커다란 경기장 안에는 뛰는 이들과 뛰는 이들을 초조하게 지켜보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보이지 않는다. 등위를 통해 메달이 주어지는 경기가 아닌 선발을 위한 마지막 경기가 펼쳐지는 경기장에는 관객석 마저 텅 비어있다. 그러니까 영화 '스프린터'는 누군가가 자신의 인생 역경을 이겨내고 승리를 거머쥐는 종류의 스포츠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마지막일지도 모를 기회를 잡기 위해 나라는 결승선을 포기하지 않고 통과해야 하는 이들의 마음을 마주하게 하는 영화다.
우연히 하게 된 일이 좋아하는 일이 되고 심지어 잘하는 일이 되는 건 모두에게 축복인 동시에 불행이다. 더 잘 해내기 위해 혹은 더 못하는 상황에 놓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달린다. 뒤쳐지는 일은 너무 쉽지만 앞서가는 일에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해서다. 심지어 노력 이상이 필요함을 깨닫는 순간이 불현듯 오게 되고 믿고 있던 노력이 해낼 수 있는 한계가 보이기 시작하면 좋아하고 잘하던 일은 어느새 족쇄와 고통이 되기도 한다. 비단 달리기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재능으로 촉망받고 노력으로 인정받던 순간들은 누구에게나 쉽게 잊히지 않는다. 짜릿했던 스포트라이트와 뜨겁던 환호가 착시나 이명처럼 흐릿하게 남아 스스로를 맴돌기 시작하면 한때는 그저 축복 같던 시간들이 상상하지 못했던 고통이 되어 스스로를 절망에 밀어 넣기도 한다. 그럴 때 누군가가 포기가 답이라고, 당신은 전성기를 지났다고 말하기 시작한다. 그 말들이 조언인지 비난인지 판단이 어려워질 때 그제야 알게 되는 것이 있다. 가장 어려운 승부는 자기 자신과 겨루는 것이라는 것을.
'스프린터'의 인물들은 일반적인 스포츠 영화의 감동 서사를 부여받지 않는다. 그들은 각자의 상황과 처지에서 힘겹게 고군분투한다. 관중이 없는 경기장, 카메라가 비추지 않는 뙤약볕 아래에서 마지막일지도 모를 기회를 얻기 위해 달리는 일. 영화 '스프린터'의 선수들은 박수와 환호 대신 자신과의 약속에 미련을 두지 않기 위해 내달리는 사람들이다. 오직 스스로 달리기를 시작했던 사람만이 멈추는 것을 택할 수 있다. 나의 생은 누군가의 판단이나 예측으로 완성되지 못함을 용기 내어 시도했던 이들만이 알게 된다. 익숙한 스포츠 영화의 서사를 선택하지 않는 '스프린터'가 택한 것은 그저 달려보는 일이다. 이러한 영화의 태도는 관객 역시 선수들과 같은 출발점에 서게 만든다.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은 내가 달리기 시작했던 순간을 재생하고 숨이 차도 포기할 수 없었던 도전들을 상기한다. 무모한 나의 도전에 지치지 않던 응원을 보냈던 이들의 얼굴을 떠올리고 빛나는 성취를 품에 안진 못했더라도 끝까지 달렸던 경험들이 내 안에서 사라지지 않았음을 기억한다. 누군가가 걸어주지는 않았지만 스스로의 목에 걸어줬던 메달을, 실체는 없었지만 분명히 쥐었던 감각이 살아있는 트로피를, 그 작고 뜨거웠던 영광들을 꺼내어 닦는 것이다. 빛바랜 모든 것들이 녹슨 것은 아니다. 세월의 먼지가 쌓인 것들을 닦아내는 일은 오로지 그 세월을 기억하는 자의 손길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달리는 모습을 그저 바라보기만 했던 사람들은 절대 알 수 없는 감각이 있다. 스스로가 밟았던 땅, 흘렸던 땀, 가빴던 숨과 가장 어려운 나라는 관문을 통과한 뒤 멈추는 기분. 최선을 다해 뛰었던 이는 그 멈추는 기분을 알기에 다시 뛸 수 있다. 신비로울 정도로 정직한 기쁨이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