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일의 월요논단] 집단기억의 파괴

[김태일의 월요논단] 집단기억의 파괴
  • 입력 : 2023. 06.12(월) 00: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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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집단기억의 파괴'는 2012년 국내에 출간된 도서로 저자인 로버트 베번(Robert Bevan)은 영국 건축 잡지 '빌딩 디자인(Building Design)' 전임 편집인 출신이다. 그는 '집단기억의 파괴'를 통해 전쟁과 테러, 혁명적 질서 추구과정의 이면(裏面) 속에 지역과 국가의 집단 정체성을 말살하기 위한 야만적인 파괴의 참상을 고발하고 있다. 파괴 자체는 친숙한 사물을 모두 지워버리는 것이며 사물과 관련된 개인의 연속적인 기억상실과 장소적 방향감각을 소멸시켜 집단의 정체성과 연속성 상실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참상은 일제강점기에서 비문화적, 폭력적 말살정책으로 이미 경험했다. 그러나 '집단기억의 파괴'는 단순히 전쟁 과정에 국한되지 않으며 근현대사회에서도 경제적 논리와 개발성장의 논리 속에 빈번하게 자행돼 왔다. 옛 제주시청사, 제주대학 옛 본관, 옛 카사델아구아, 옛 현대극장, 그리고 서귀포시민회관 등 보존의 필요성이 높았던 건축물들이 철거됐다.

지난 5월부터는 제주시민회관이 철거되고 있다. 비록 철거라는 결정의 칼날을 피할 수는 없었지만 제주시민회관의 상징, 철골구조물을 존치하고 기록화보고서를 남겨두려는 노력은 평가할 부분이다.

그리고 7월 초에는 제주대학 옛 본관 복원에 대한 전국적인 토론회를 제주대학교와 제주건축가협회 공동으로 개최할 예정이다. 건축가 김중업 탄생 100주년이자 제주대학교 70주년이었던 2022년에 제주대학교 자체적으로 준비하고 기획했던 복원에 대한 논의 결과를 공유하며 복원공론화 과정을 거치게 됐다. 제주대학 옛 본관은 제주대학이 국립대학으로 승격되면서 첫 시설 확충사업으로 지어졌고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영원한 제주대학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2023년은 도립 제주초급학교로 출발한 제주대가 개교 71주년을 맞이하는 해이자 미래 70년을 준비하는 해에 제주대학 옛 본관 복원을 논의하는 것은 상징적 의미가 크다.

복원과 관련해 장소와 활용방안, 예산확보를 위한 복원방식 등 다양한 논의가 기대된다. 복원과 재현의 논의도 함께 다루어질 부분이기도 하다. 제주대학 옛 본관이 위치했던 용담캠퍼스에 재현하기에는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고 판단된다. 원위치에는 이미 다른 용도의 건축물이 자리 잡고 있고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에는 신축할 부지가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자연스럽게 아라캠퍼스로 좁혀질 수밖에 없는 복원의 한계성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대학 옛 본관 복원은 제주대학 구성원 개개인의 집단의 정체성 복원과 미래의 상징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파리와 로마는 역사문화의 축적이자 그 축적물에 의한 역사도시의 정체성과 집단기억 때문에 시민들이 자긍심을 갖는 것이다. 도시에 대한 의미와 가치존중을 바탕으로 오랫동안 기억과 추억을 향유했고 이러한 활동들의 축적된 건축과 장소를 남겨두려는 노력과 실천적인 정책이 아쉬운 시점(時點)이다.<김태일 제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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