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연의 문화광장] 제프 쿤스의 새로운 저작권 소송

[이나연의 문화광장] 제프 쿤스의 새로운 저작권 소송
  • 입력 : 2023. 07.04(화) 00: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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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불리는 제프 쿤스는 미술사적 가치와 미술시장의 가치를 동시에 인정받는다. 예술의 유일성과 원본성을 추구하던 모더니즘의 기준을 전면 부정하는 탈근대적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고급예술과 저급예술 사이의 간극이 애매해졌다. 도리어 대중문화에서 차용된 이미지들이 고급문화인 순수예술에 적극 유입되면서, 고급예술 향유층에서는 이른바 악취미라 불리는 ‘키치’가 등장한다. 대중문화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차용하는 팝아트와 그다음 세대의 네오팝이 현대미술사에 자리 잡는 과정에서 비주류였던 키치가 역으로 현대미술의 주류가 된다. 쿤스는 ‘키치의 제왕’으로 등극했고, 2019년에는 대표작인 ‘토끼’가 1000억원이 넘게 거래되면서 ‘가장 비싼 예술가’가 되기도 했다.

쿤스는 소비문화 속 상품, 이미지, 광고들을 적극적으로 작품에 끌어들임으로써 미국의 대중문화를 상징하고 대표하는 현대미술가가 됐지만, 이 작업방식의 특성 탓에 이미 저작권을 둘러싼 수많은 소송에 휘말렸다. 그 와중에 새롭게 저작권 침해를 주장하는 고소인이 등장했다.

쿤스가 벌이고 있는 최근의 소송은 그의 초기 시리즈 중 하나인 '천국에서 만들어진'과 관련한다. 포르노 스타 출신으로 급진적인 국회의원이기도 했던 치치올리나와 결혼한 쿤스는 그들 부부의 성행위를 드러낸 조각과 사진, 회화 등으로 '천국에서 만든'이라는 시리즈를 제작한다. 포르노와 예술을 접목한 시도가 신선한 것은 아니지만 쿤스급의 작가가 자신과 부인을 대상으로 작품을 발표한 것은 이례적이었기에 미술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미술계에서의 반감도 심해서, 쿤스는 한참이나 기관 전시나 관계자들에게 전시 초대를 받는 데 애를 먹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제는 저작권 침해 소송까지 겪게 됐다. 이 시리즈의 퍼포먼스용 무대가 문제였다.

1989년에 치치올리나의 퍼포먼스를 위한 무대를 제작했던 소품제작 담당자인 휴 헤이든이 30년이 지난 2022년에야 뉴욕 법원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쿤스가 헤이든에게 조각품 사용 허가를 요청한 적이 없으며, 헤이든의 이름을 표기하거나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원에 금전적 손해 배상을 요청하는 내용이다. 2022년 7월 18일 자 의견에서 지방 판사는 헤이든이 "충분히 유효한 저작권 주장을 한다"고 썼다. 항소 판결은 기다려 봐야 하지만, 차용미술의 확장된 사용과 저작권 보호에 대한 개념이 심화되면서 생기는 이런 충돌은 쿤스가 아니더라도 향후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시각예술에 있어 오랜기간 확립된 전통인 ‘모방을 통한 독창성’이 법원에서는 높은 확률도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원저작자의 권리와 재창작가의 권리 모두를 보장하기 위한 대안을 찾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저작권 침해 통보를 받게 되면 대부분의 예술가는 해당 작품의 제작과 전시, 유통을 단념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동시대 예술가들에게 저작권에 대한 법적인 제한들은 예술창작의 자유에 대한 위협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기존 사례를 바탕으로 시대흐름에 맞는 현명한 판단이 기대된다. <이나연 제주도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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