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문자는 인간의 언어를 적는 시각적 기호로, 우리문자는 뜻글자인 한자와 소리글자인 한글로 구성된다. 한자문화권인 중국,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한글전용정책을 펼치다보니 한자말이 80%인 우리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한글은 알지만 우리말은 잘 모른다"는 우스갯말이 나돌기도 한다. 사실 한글의 장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한자를 모르고서는 우리의 역사를 알 수가 없는 게 현실이다. 우리의 역사, 문화적 맥락에서 보면 한자가 중국만의 글자가 아니다. 신교육제도가 자리 잡기 전인 조선말(朝鮮末)까지 국가가 사용했던 공식문자였다. 지금은 학교에서 한자교육이 소홀해, 자신의 이름자가 무얼 뜻하는 지도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한자교육의 문제는 지식을 습득하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역사적으로 우리 정체성을 찾는 문제이기도 하다. 또한 한자교육이 부재한 상태에서는 서예술의 발달을 기대할 수 없다. 애당초 서예는 3500년 역사에서 한자를 기반하고 예술심미도 한자를 쓰는 것에 두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글만으로는 미적 다양성을 드러내기가 어렵다는 것이 통론이다.
서예사를 보면 어느 시대나 규범적 서체와 격에 못 미친 막글씨가 상존했다. 막글씨는 민간 유행서체로 민체 또는 막체, 나름체로 부르기도 한다. 소위 '캘리'라 약칭 하는 요즘의 한글서체도 엄밀하게 말하면 민간 유행서체의 범위에 속한다. 한글 전용시대의 분위기에 편승한 이런 서체는 서법(書法)에 준함이 없고, 근사(近似)하기도 수월해 대중적 접근이 쉽다. 그런 연유로 작금 전통적 한글서예는 시류에 떠밀려'공모전용 글씨'로 제한되고, 한글작가들이'캘리'문턱을 넘나드는 기이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 복잡하거나 힘든 것을 싫어하는 요즘 세대에게 서예미학의 전통적 가치를 전달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예술의 숭고성을 지키며 묵향에 빠져 한길을 걷는 서예가들이 적지 않다. "귀할수록 소중하고,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 는 게 시대의 순리임을 그들은 잘 알기 때문이다.
시내 거리를 걷다보면 간판들과 정류장 게시물 등에 쓰인 막글씨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는 공원, 학교, 관공서 뿐 아니라 신문, TV방송도 다름없다. 서체로서의 미감은 차치하더라도 결자방식(結字方式), 조자원리(造字原理)도 맞지 않은 글씨들이 흔하다. 'ㅁ·ㅂ·ㄹ·ㅌ·ㅎ' 표기가 제각각이고, 예를 들면 받침자 ㅁ이나 ㅂ의 아래 가로획을 길게 쓴다든가, ㄹ을 거꾸로 쓰는 등 읽기가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공공장소의 글씨는 약속이다. 곳곳에 발견되는 이런 왜곡된 글씨들은 한글을 익히는 어린아이들이나 외국인들에게도 혼란을 준다.
나일론이 비단을 대신하고 콘크리트가 바위를 대신하는 모조의 시대에, 서예도 난관을 겪고 있다. 전통에는 지켜야할 격식이 있다. 만약 사찰, 고궁건물 등에 규범에서 벗어난 막글씨가 걸린다면 한정식에 피자처럼 어색할 것이다. 전통서체는 시대를 관통하며 필획의 예술적 미감을 찾고 이를 지켜온 글씨다. 이제는 관청이 앞장서서 전통을 지켜주는 일이 중요해졌다. 옛 법이 예법(禮法)인 것처럼, 옛날의 격식과 형식 중에 잃지 말아야할 것들이 많다. 우리 문화의 품격을 지키기 위해 서예의 전통성을 찾는 일도 그 중 하나다.<양상철 융합서예술가·문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