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식의 월요논단] 한라산신과 탐라

[박찬식의 월요논단] 한라산신과 탐라
  • 입력 : 2023. 07.10(월) 00: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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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600년 전인 조선 초기, 탐라의 구비전승 기억이 기록으로 각인됐다. 하나는 탐라 개국신화인 '모흥혈 삼성신화'이며, 또 하나는 탐라의 멸망과 복원 열망을 담은 '광양당·호종단 전설'이다. 조선 초 성주·왕자직의 폐지(1402)를 계기를 탐라의 멸절이 다가왔을 때 탐라의 기억은 강하게 되살아났다. 두 기록은 탐라 복원 기억의 반증이다.

두루 알려진 삼성신화 내용은 각설하지만, 광양왕(廣壤王)·호종단(胡宗旦) 전설을 담은 '세종실록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의 내용은 각별하다. 한라산신의 아들(아우)인 광양왕신이 매로 변해, 탐라의 맥을 끊어버린 호종단의 배를 격침시켜 버렸다는 호쾌한 복수 설화를 담고 있다. 더욱이 광양왕신을 모신 광양당은 한라산신의 호국신사(護國神祠)라고 명기하고 있다.

두 기록은 공히 탐라와 한라산신을 주제로 삼고 있다. 삼성신화는 탐라 개벽을 모흥혈과 삼을나에서 찾았다. 삼을나의 탄생지인 모흥혈을 '한라산 북쪽 기슭에 있는 곳', 세 공주를 보낸 벽랑국 임금이 삼을나를 "한라산에서 내려온 신의 아들"이라 했다. 광양당 전설에서는 광양왕을 한라산신의 아들신이라 했다.

한라산은 하늘산·신산(神山)이며, 한라산신은 천신(天神)이다. 광양왕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신의 아들이다. 삼을나의 후손이 탐라왕 성주·왕자이며 이들은 광양왕신의 후손이다. 성주(星主)는 하늘·신산(한라산)의 별 군주이며, 왕자(王子)는 천왕(하늘신)의 아들, 곧 탐라왕인 것이다. 환인(천신)의 아들신 환웅이 태백산 신시(神市)를 건설하고 웅녀와 결합해서 낳은 단군왕검이 조선을 건국했다는 단군신화와 탐라 개벽신화의 구도가 너무도 흡사하다.

광정당 본풀이에 보이는 계보(하로산또-광양당·광정당·광원당 3형제) 및 일도(광양당)·이도(광정당)·삼도(광원당) 좌정과도 일치한다. 한라산신 제사가 삼의악 주변에 산천단을 설치해서 모셔졌으며, 그곳에서 산저천(山底川)이 발원해 모흥혈·광양당을 거쳐서 탐라도성 방면으로 흘렀다. 그러기에 18세기 초 남구명 판관은 광양당을 "제주섬 전역에 산재한 신당의 조종(祖宗, 곧 불휘공)"이라 했다.

1702년 이형상 목사는 제주민들의 탐라에 대한 생각을 말살하는 문화 정책을 펼쳤다. 모흥혈에서 삼을나를 분리시켜 성안 내팟골에 삼성사를 세워 유교식 제사를 치렀다. 독자적으로 운영하던 옛 탐라식 풍운뇌우제는 폐지시켰고, 드디어는 한라산신의 탐라 호국신당 광양당과 광정당·광원당·차귀당·내왓당 등 신당 129곳을 없애버렸다.

'잃어버린 탐라' 1000년을 넘어 '잊어버린 탐라'의 세월이 300년 가까이 흘렀다. 탐라는 없어졌어도 탐라를 탄생시킨 한라산(신)은 지금도 우리 눈앞에 선연하다.

다음 주부터 선보이는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의 탐라 특별전에 여러분을 정중하게 초대한다. 오셔서 섬나라 탐라, 잃어버린 천년을 깨우고 기억을 되살리는 소중한 시간이 되길 기대한다.<박찬식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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