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철의 한라칼럼] 학교가 사법기관이길 강요하는 사회

[김동철의 한라칼럼] 학교가 사법기관이길 강요하는 사회
  • 입력 : 2023. 07.11(화) 00: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한라일보] 모두가 더 나은 해결책을 알고 있음에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있다. 이를테면 국민연금이나 기후위기 문제 같은 것들 말이다. 현재의 방식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음에도 모두가 눈치만 볼 뿐 선뜻 말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미루고만 있다가 그 시기를 놓쳐버리는 문제들 말이다. 아마도 그 이유는 서로에 대한 불신이 기본 전제로 깔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학교폭력 문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학교폭력 대책이 대단히 비교육적이고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아마도 앞선 문제들처럼 교육 주체들 간의 뿌리 깊은 불신의 벽이 문제 해결을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과거 인격모독적인 체벌과 대우를 받았던 지금의 부모 세대들이 학교를 믿지 못하고 불안함이 가득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나 역시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그런 부모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드라마 속 혹은 뉴스에서 나오는 한 사람의 마음과 인생을 잠식하고 파괴하는 사례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학교폭력에 대해 더욱 강력한 징벌을 내리라는 엄벌주의를 부추긴다. 하지만 점차 강화되는 학교폭력 대책들은 오히려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영화와 드라마 속 나쁜 악인 학생들처럼 권선징악으로 끝낼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일부 심각한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자면 현실 속에서 그 학생들 사이의 복잡한 맥락과 사연을 들여다보면 그게 결코 분명하게 흑백으로 나누기 힘든 일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학교폭력으로 심의되고 조치가 이뤄지고 끝나더라도 학생들 사이의 관계는 지속된다. 이러한 조치들로 학생들 사이에서 화해와 용서가 이루어질까? 오히려 서로에 대한 반감과 감시만 강화할 뿐이다.

더욱 강력한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다. 이제는 법률로 규정된 학교폭력의 지나치게 광범위한 정의와 범위를 축소하고 구분할 필요가 있다. 명백한 범죄행위와 학생 간 교육이 필요한 부분을 구분해야 한다. 심각한 폭력을 저지른 학생에게는 강력한 책임을 지워야 한다. 그러나 학생 간 교육으로 접근해야 하는 경우라면 관계회복 중심의 갈등 조정 과정이 필요하다. 상호 간에 진심 어린 사과와 용서를 통한 화해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공동체성 회복 중심의 교육적 접근이 필요하다.

교사로서 모든 학생이 상처받지 않고 컸으면 좋겠다. 어린 시절 마음의 상처가 오랫동안 남아 한 사람의 인생을 녹슬게 만들지 않았으면 하는 부모의 마음처럼 대다수의 교사들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학교는 작은 사회이다. 갈등이 없는 사회가 없듯, 갈등 없는 학교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갈등 사이에서 겪는 상처와 고통을 과소평가해서도 안 되겠지만, 그 과정에서 갈등과 상처를 다뤄 함께 어울려 사는 방법도 익히는 법이다. 그 과정과 갈등 자체를 배우는 곳이 바로 학교이기 때문이다.<김동철 도련초등학교 교사>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7264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