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미술의 창작과 유통 및 향유를 촉진하기 위한 미술진흥법이 지난 6월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뒤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우리나라 미술진흥에 대한 입법부의 의지와 법제를 통한 결의가 확인된 셈이다. 이제 행정부인 문화체육관광부가 바통을 넘겨받아 동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제정하는 일이 절차상 남아 있다. 일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2024년 하반기부터 시행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숙원사업을 추진해 온 단체는 (사)한국시각예술저작권연합회로 21개 미술단체와 기관들과의 협력을 통해 소정의 결실을 거두게 됐다. 이 연합회는 지난 7월 31일 서울의 한 비즈니스센터에서 미술계 주요인사 80여 명을 초청해 시행 준비에 관한 설명회와 의견수렴을 위한 간담회를 열었다.
설명회에서 공개된 미술진흥법의 주요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진흥 대상이 되는 장르는 회화, 조각, 판화, 미디어아트, 설치미술, 행위예술, 응용미술 등이며 이 분야의 작가를 지원하고 작가들이 산출한 유무형의 창작물과 기록물을 전시하고 유통하고 보존하고 관리하기 위한 시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미술인들의 창작공간을 확충하고 전문인력 양성과 연구조사 활동을 위한 시책을 마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제교류 및 해외진출을 촉진하고 활성화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들도 정해 놓았다. 미술진흥을 위한 전담기관의 지정에 대해서도 명시해 놓음으로써 향후 미술진흥원 탄생의 가능성도 열어 놓았다.
미술진흥법은 이렇듯 미술진흥에 필요한 사항을 다양하게 나열하고 있으나 문제점도 지적되고 있다. 우선 미술진흥을 위한 기본 방향과 철학이 명확하게 기술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급변하는 현실에 대응하는 미술진흥의 주체로서 창작자와 기획자 그리고 평론가들에 대한 균형 잡힌 제도적 지원체계가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미술진흥법의 제2조(정의)을 보면 미술진흥법의 기본 얼개가 미술업계진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보면 미술전시를 비롯해 미술서비스업, 화랑업, 미술품경매업, 미술품 자문업, 미술품 대여·판매업, 미술품 경매업, 미술품 자문업, 미술품 감정업, 미술전시업, 미술서비스업, 공공미술 등 업계의 직종을 망라해 놓고 있다. 미술진흥법이 아니라 미술유통법이라는 전문가들의 비판을 받는 이유다.
미술진흥법의 제정으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미술진흥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그에 필요한 예산확보와 지원을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미술진흥법의 기본 취지를 제대로 살리는 동법 시행령을 만들기 위해서는 미술창작과 전시기획 그리고 미술평론 분야를 포함한 균형 잡힌 미술진흥법이 되도록 모두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김영호 중앙대교수·미술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