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농업유산 제주의 화전(火田)] (3)떠난 사람들, 남겨진 흔적들-④서홍동 생물도

[잊혀진 농업유산 제주의 화전(火田)] (3)떠난 사람들, 남겨진 흔적들-④서홍동 생물도
집터·올레·통시·우영… 잊혀진 마을 되살아나다
  • 입력 : 2023. 08.31(목) 00:00  수정 : 2023. 08. 31(목) 17:42
  • 이윤형 백금탁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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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숲속 감춰진 화전마을
4·3 이후 70여년 만 드러나 관심
무관심 속 방치 차츰 멸실 위기
실태조사·기록화 작업과 함께
보전·활용 방안 강구해 나가야

[한라일보] 서귀포시 산록도로변에서 연외천을 거슬러 직선거리로 700m 정도 올라간 고즈넉한 숲속. 나무들 사이로 오래된 돌담 구조물들이 연이어서 나타난다. 수십 미터 길게 죽 뻗은 돌담은 물론 장방형 구조물 등이 여럿 나타나고 주변은 계단식으로 조성됐다. 바로 오래 전에 잊혀진 생물도 화전마을 터다.

생물도는 서귀포시 서홍동에 전해지는 화전 마을 가운데 하나다. 1948년 발생한 비극적인 제주4·3사건으로 사람들이 떠나면서 오늘날까지 잊혀진 마을이 됐다. 이후 70여 년 만에 생물도는 취재팀 앞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날 이 마을의 존재는 나이 지긋한 일부 지역 주민들만 알고 있을 뿐이다.

생물도 화전마을에 남아있는 집터와 주변. 올레처럼 긴 돌담 오른쪽으로 집터가 보인다. 특별취재팀

생물도는 서홍동 산 3번지 일대, 연외천 상류 지역에 터를 잡고 있다. 마을 이름은 고인물이 아닌 살아있는 물, 산 물이 솟아나는 지경이라는 뜻에서 불리게 됐다고 한다. 해발 고도는 약 500m 지점이다.

수차례 취재 결과 이 곳에서는 집터를 포함 다양한 석축 구조물들이 확인된다. 집터 3~4곳과 통시, 올레, 우잣(우영)과 우잣담 등이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어 주목된다. 반경 수십 미터 안에 집터 등이 모두 자리를 잡고 있어서 조그만 공동체를 이루고 오순도순 살았던 마을이었음을 생생히 보여준다. 특히 집을 중심으로 통시와 올레, 외양간으로 추정되는 돌담 구조물, 부엌 공간 등 제주 전통 가옥구조에서 볼 수 있는 시설물들이 확인된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주변에서는 몰방애 등 생활유물도 확인됐다.

제일 동남쪽에 위치한 집터는 가로 7m, 세로 10m 정도의 장방형으로 돌담은 허물어진 채 기단부만 남아있는 상태다. 마당이 있으며, 집터와 바로 연결돼서 부속 건물지도 확인된다. 집 주변으로 높이 1m 내외의 견고하게 쌓아올린 우잣담이 둘러싸고 있다. 이 집터는 주변의 부속 건물지와 우영, 마당 등을 포함하면 대략 200평 가까이 되는 규모다.

원형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집터. 현무암을 촘촘히 쌓아올려 만들었다.

근처에서는 또 다른 집터가 자리하고 있다. 이 집터는 수십 년 세월이 흘렀음에도 일부만 허물어진 채 거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약간만 보수해서 지금이라도 서까래와 지붕만 얹으면 사용이 가능할 정도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내부는 5.1m×4.5m, 돌담 안쪽 높이는 2m 정도로 약 7평 되는 규모다. 돌담은 자연석을 다듬지 않고 겹담으로 촘촘히 쌓아올렸다. 집터는 북쪽이 약간 경사진 면을 이용해서 돌담을 축조했다. 이 집터는 내부에 커다란 고목이 고사한 채 썩어가고 있는 점을 보면 족히 100년은 넘을 듯하다. 집터 주변은 우잣담이 둘러싸고 오래 전에 경작이 이뤄진 듯 평탄하다.

생물도 인근을 흐르는 하천인 연외천의 물웅덩이. 생활용수 등으로 이용했다.

여기서 북서쪽으로 50여m 지점에선 덤불이 무성한 가운데 또 다른 집터가 확인된다. 이 집터는 일부 허물어졌지만 겹담으로 이뤄졌다. 집터 옆에 통시가 있으며, 내부에 부엌 용도로 쓰인 공간도 있다. 내부에선 화덕으로 보이는 흔적도 나타난다.

외담으로 쌓아올린 구조물도 여럿 확인된다. 외양간, 창고 등 다양한 용도로 쓰인 구조물들이다. 집터 주변은 대나무 숲이 무성하다. 대나무는 보통 지기를 잘 보존하기 위해, 또한 생활에 요긴하게 쓰기 위해 집 주변에 심었다. 앞쪽으로는 연외천이 흐르고, 생활용수는 물론 소 물먹이용으로도 충분할 정도의 물웅덩이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입지여건이 뛰어나 장기간 거주하면서 마을 공동체를 이어갔을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집터에 딸린 통시.

생물도에는 제주시 봉아름(봉개동)에서 넘어온 진주 강씨가 처음 살았다 한다. 3~4가구 정도 있었고, 연자골에서 하천 쪽으로 더 들어와 정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곳 생물도와 연자골은 지척간이다. 마을이 잊혀지게 된 것은 4·3사건으로 인해서다.

8세 때까지 서홍동에 살았던 강 모씨(85)에 의하면 "할아버지 때부터 온 가족이 생물도에 살면서 화전 농사 짓다가, 1930년대 아버지가 일본으로 돈 벌러갔다"고 했다. 이어 "해방되자 아버지가 일본에서 돌아와 다시 생물도로 들어가 마을 공동목장을 관리하면서 화전 농사 지었지만, 자신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서홍동 마을로 내려왔다"고 한다. "아버지 역시 4·3의 소용돌이 속에 온갖 고생하다가 토벌대의 중산간 마을 초토화 작전 이후 완전히 서홍동 마을로 내려오게 되었다"고 기억했다.

생물도는 제주의 화전 마을 가운데 가장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제주 화전 마을 대부분은 지명이나 구전으로만 전해지고 유형의 유산들은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만큼 집터 등 다양한 석축 구조물이 남아있는 생물도는 그 자체만으로도 보전해야할 생활유산으로서 가치가 높다. 집터, 올레, 통시 등 다양한 석축 구조물 등은 제주 화전과 화전마을의 역사와 생활문화상을 상징하는 유산이다.

그렇지만 생물도 마을은 무관심속에 방치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부터라도 관심을 갖지 않으면 멸실 우려가 높다. 생물도 화전 마을 실태조사와 기록화 작업 등이 서둘러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제주 화전생활문화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산으로서 보전 활용 방안 마련이 시급히 이뤄져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진관훈 박사(경제학)는 "다양한 구조물이 남아있는 생물도는 제주도 화전 마을의 원형과 변천과정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곳"이라며 "집터는 물론 화전 생활문화상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와 향후 보전 활용방안을 강구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이윤형 편집국장·백금탁 제2사회부장

자문=진관훈 박사·오승목 영상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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