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현의 하루를 시작하며] 자기애(自己愛)에 빠진 권력

[김동현의 하루를 시작하며] 자기애(自己愛)에 빠진 권력
  • 입력 : 2023. 10.04(수) 00: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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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오랜 시간이 지나 역사학자들은 오늘을 어떻게 평가할까. 몰염치와 적대와 혐오로 오염되는 언어들의 홍수 속에서 내일의 판단을 기다리는 일도 어쩌면 난망하다. 우리 역사에서 정의와 자유, 법치를 강조했던 정권들이 있었다. 광주의 시민을 학살한 전두환이 정권을 잡고 내건 것이 '정의 사회 구현'이었다. 노태우 정권도 보안사 민간인 사찰 파문으로 위기에 몰리자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박정희도 1966년 필리핀에서 열린 월남 지원국 정상회담에서 '정의가 지배하는 사회를 희구한다'는 연설을 한 바 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말조차 방향이 같아야 날 수 있다고 고쳐 말한 대통령의 발언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언론들은 국민통합을 강조한 발언이라고 해석했다. 자유와 인권, 법치를 강조하는 대통령의 발언을 들을 때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의 연설들이 떠오른다.

법치주의는 국민들의 준법 의식을 계몽하기 위한 용어가 아니다. 근대 국민국가에 대한 정치철학들 중에서 하나의 상식처럼 통용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국가는 물리적 폭력을 독점한 체제'라는 점이다. 발터 벤야민은 그것을 '법 제정적 폭력'과 '법 보존적 폭력'으로 나눠 설명한다. 국가는 유일하게 폭력적 수단을 합법적으로 소유한 집단이다. '공권력'이라는 말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국가가 소유한 폭력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폭력의 강도가 크면 클수록 국민을 향한 폭력의 행사는 법에 의해 엄정히 집행돼야 한다. 국민들 법 잘 지키라는 것이 법치주의가 아닌 것이다.

무도한 정권일수록, 자기가 선이라고 믿는 권력일수록 '정의와 법치'를 강조한다. 자기애도 이 정도면 중증이다. 마치 강박증 환자 같다. 권력의 반복적 언어들은 역설적으로 권력을 가진 이들 스스로 정의와 법치를 얼마나 무시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프로이트가 신경증을 자아와 이드 사이에서 생겨난 갈등이라고 말한 것처럼 어쩌면 권력은 무소불위의 권능을 욕망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것을 조금이라도 제어할 수 있는 것은 그동안 한국 사회가 쌓아 올린 민주적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무한한 권력은 없다. 역사는 무도한 권력의 말로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권력을 손에 쥔 이들도 그것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잘 안다. 대통령을 비롯해, 김기현 대표, 한동훈·원희룡 장관 등 정권 핵심 인사들의 신경증적인 발언들은 그들의 불안한 무의식을 잘 보여준다.

명절 연휴 밥상의 화제는 단연 먹고 사는 문제였다. 물가도, 금리도 오르지만 서민들의 지갑은 가볍다. 다 오르는데 내 월급만 안 오른다는 허탈한 웃음조차 씁쓸하다.

무도한 정권을 탓하자니 제주도 만만치 않다. 권력의 자기애는 서울과 제주의 정치가 다르지 않다. 조바심 때문인지 무리수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상선약수라고 했다. 결국은 순리다. 자기애라는 강박을 버리지 않는다면 파국이 제일 먼저 권력의 현관에 도달할 것이다. <김동현 제주민예총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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