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올해로 600년 전,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에서 표선면 성읍1리로 정의현성이 이설됐다. 제주의 지속가능성은 유구한 전통문화와 수려한 자연환경을 보전하는 일에 달렸다. 이들 요소는 '보전이냐, 개발이냐'라는 관점에서 공통분모를 갖는다. 성읍민속마을도 '균형'을 잡는 일이 미래발전의 성패를 가늠한다. 본보는 올해 창간호를 시작으로 10여 차례에 걸쳐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법 찾기와 전통문화 계승 및 주민들의 주거환경 개선이라는 접점을 찾고자 했다. 또한 도내외 현장 취재를 통해 미래 1000년을 담보할 수 있는 체계적 문화재 관리와 지속가능한 마을발전을 위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주민의 노력, 그리고 행정 주체의 변환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지난 9월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민속마을 일원에서 정의현감 행차가 재현돼 주민과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한라일보DB
▶정의현성 이설… 방치된 고성리 성터='세종실록'에는 세종 4년(1422년) 12월에 정의현성 이설이 결정됐고, 다음 해인 세종 5년(1423년) 1월 9일부터 13일까지 불과 5일 만에 현성 이설이 완료됐다고 기록돼 있다. '태종실록'의 기록상 원래 정의현성은 태종 16년(1416년) 지금의 성산읍 고성리(古城里, 옛 성이 있었던 마을)에 위치했다. 당시 해안가와 불과 1㎞가량 떨어져 있어 잦은 왜구 침입과 성산읍 시흥리~법환동에 이르는 행정구역상 주민들의 접근 편의성 등의 이유로 현성이 이설됐다.
이후 60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현재, 남아 있는 고성리 성곽과 주변은 곳곳이 무너져 방치된 채 원형 훼손이 심각하다. 주변의 성곽이 잘려 마을 길이 되고, 밭담으로 사용하는 곳도 여럿 확인됐다. 오랜 시간에 걸쳐 수많은 개발로 인해 10여 필지로 성터가 나눠져 산재하며 전체적인 실체를 파악하기에도 어려움이 따랐다.
길이 140m, 높이 1~2m, 너비 2.2~4.5m 규모의 옛 성곽이 2021년 '향토유형유산'으로 지정됐으나 기초조사와 연구조차도 미미하다. 이에 복원을 통한 체계적인 보전 방안과 성터를 중심으로 하는 문화·역사·관광자원으로서의 활용 방안에 대한 고민이 시급하다.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 소재 옛 정의현성 모습. 역사적·학술적으로 가치가 매우 크지만 사실상 오랜 기간 방치되면서 훼손이 심화되고 있다.
행정이 일부 특정업체에게 복원을 맡기면서 제주의 전통초가가 아닌 다른 지역의 초가로 고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열악한 주거환경 개선 해법은 없나=문화재(민속 6, 무형 1, 천연기념물 1, 도 18)로 둘러싸인 성읍민속마을이 안고 있는 문제는 주민들의 주거환경 개선이다. 오랜 시간의 더께 속에서 전통문화 계승이라는 행정적 제한 요소는 실제 거주자들에게는 수백 년 전의 좁고 낡은 초가에서의 삶을 살라는 것과 같다.
형상변경 허가 절차가 복잡해 주거환경이 불편한 초가를 개조하는 데는 역부족이다. 화장실이나 샤워실, 보일러실 등 실생활에 꼭 필요한 시설들도 불법임을 알면서도 주민들은 이를 감수해야 한다. 태풍이나 집중호우 등에 따른 재난 피해에 의한 복구조차도 문화재청의 허락 없이는 할 수 없다.
그야말로 수백 년이 흐른 세월에도 옛날 집 구조와 그 속에서 살라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집을 개조해 민박 등으로 활용을 한다고 해도 가로 폭이 2m가 나오지 않아 빌려주기도 난무하다. 제주도가 매입한 초가 활용은 답보 상태이고 초가 개조 방식도 중구난방이다. 수백 년간 조상 대대로 물려왔던 집터를 팔고 나온 일부 주민들은 천미천 인근 공터에 컨테이너를 놓고 살고 있는 지경이다.
이에 주민들은 문화재지정구역 조정(기존 500m→200m 축소)을 비롯해 사유 재산 건축물에 대한 증·개축 시 규제 개선 등 문화재청의 형상변경 허가 심의 권한을 제주도로 이양하는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기존 업무도 업무량이 집중되는 제주도 유산본부에서 서귀포시로 이관하는 것을 간절하게 원하고 있다.
성읍민속마을 인근에는 자신의 집을 팔고 나와 컨테이너에서 수십년째 생활하는 주민들이 여럿 있다. 불편한 초가에서의 삶을 벗어나려했던 선택이었지만 경제적 문제와 고령으로 고향을 버릴 수도 없는 현실이다.
▶올해 더 풍성해지는 전통민속 재현축제=성읍1리마을회와 성읍민속마을보전회가 '600년의 역사 일천년의 미래'를 주제로 오는 11월 3~5일 3일간 성읍민속마을 일원에서 제29회 성읍민속마을 전통민속 재현축제를 연다.
주최 측은 '탐라순력도'를 기반해 역사적 현장을 재현하는 데 축제의 초점을 맞춘다. 탐라순력도에 기록된 정의현과 연관한 정의조점(旌義操點), 정의양로(旌義養老), 정의강사(旌義講射) 등의 모습을 연출한다.
정의조점은 제주목사가 정의현을 방문하는 순력 행차를 재현하는 내용이다. 올해는 현성 이설 600주년인 만큼 제주도지사가 제주목사로 정의현을 방문하면, 서귀포시장이 현감의 자격으로 이를 맞는다. 마을 주민으로 구성된 취타대의 흥겨운 풍악 속에 거리퍼레이드 형식으로 풀어내며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제공할 참이다.
또한 정의양로와 연계한 도축문화는 예전 축성할 때, 고기를 나눴던 풍습과 잔칫날 돼지를 잡았던 풍습을 보여준다. 마을 주민들이 축제 3일간 직접 돼지를 잡아서 삶고, 굽고, 전통음식인 몸국을 끓여 먹는 이벤트를 계획하고 있다.
부대 행사로 집줄 놓기, 감물염색, 전통주 만들기 체험 및 무료 시음관, 공예체험관 등이 다양하게 차려진다. 여기에 고사리육개장, 몸국, 접작뼈국, 빙떡, 오메기떡 등 향토음식이 곁들여진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재도전의 의미=2024년은 성읍민속마을이 국가문화재(1984년, 중요민속자료 제188호)로 지정된 지 40주년을 맞는 해다. 성읍민속마을이 지속발전하기 위해서는 앞서 제기한 초가를 포함한 체계적인 문화재 정비를 비롯해 주민 정주 여건 개선, 그리고 타 지역과의 연계를 통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성읍민속마을 차원이 아닌 제주도에서 서귀포시로 행정업무 주체의 변화를 통해 시 차원에서 읍성도시와의 연계성을 가져야 한다. 지난 10년간 제2차 종합정비계획(2013~22년)을 통한 문화유산 등재가 실패했기 때문에 차별성을 구축하고 타 지역과의 연대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순천시의 낙안읍성, 서산시의 해미읍성, 고창군의 고창읍성·무장읍성, 진주시의 진주성 등이 '한국의 읍성' 유네스코 등재에 대해 대응방안, 비전 제시 등 공감대를 형성해 공동 대응하고 있어 다행이다.
이와 맞물려 현재 진행 중인 제3차 성읍민속마을 종합정비계획(2023~32년)의 구체화·차별화 전략 마련이 필요하다. 마을주민은 물론 행정, 제주도의회의 힘이 모아져야 한다. 이와 관련, 제주도는 매입 초가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 민간위탁 등을 포함해 활용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또한 지자체 차원에서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도내·외 학계는 물론 전국의 읍성도시와의 연대 방안 마련이 이뤄져야 한다. 아울러 문화재청의 태도 변화와 향후 규제 완화 대상에서 제외된 건물들 간의 지원에 따른 형평성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그래야 밝은 미래 1000년을 기약할 수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