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58] 3부 오름-(17)어승생오름이란 '어슷하게 놓여 있는 봉우리'

[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58] 3부 오름-(17)어승생오름이란 '어슷하게 놓여 있는 봉우리'
어승생오름은 한라산을 가로막은 오름
  • 입력 : 2023. 11.07(화) 00:00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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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승생(御乘生)의 생(生)은 고구려어 '수리'의 다른 표기


[한라일보] 어승생오름의 이름에서 보이는 '생'이야말로 제주의 지명에서나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승생오름은 표고 1169m, 비고 350m, 둘레 5.8㎞나 되는 큰 오름이다. 산처럼 보인다. 제주의 오름이라는 자료를 보면 오름 자체의 높이로 볼 때 가장 높은오름은 자체높이 389m의 오백나한이라 한다. 어승생오름은 그다음으로 높다고 한다. 그다음은 산방산으로 어승생오름보다 5m가 낮다.

한라산에 어슷한 지세의 어승생오름./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김진

어승생오름은 제주시에서 볼 때 매우 큰 산으로 보인다. 과거의 지도들을 살펴보면 어승생오름은 과장되어 보일 정도로 크게 그려져 있는 걸 볼 수 있다. 실제로 크기도 크기려니와 한라산을 완전히 가릴 정도로 웅장하게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사실 이런 크기와는 상관없이 우리말에서 산을 가리키는 말은 여러 가지다. 대표적인 단어가 '뫼'라는 말이다. 제주도의 지명에서도 많이 나타나므로 앞으로 이 뫼의 기원을 다루게 될 것이다. 언젠가 산굼부리 지명에서도 보았듯이 부리라는 지명어도 제주에 꽤 남아 있다. 이 말도 설명이 더 필요하다. 종달리 지명에서 보이는 '달'이라는 말도 순우리말로서 산을 의미한다. 그 외로도 상상하기 어려운 지명어들이 있다.



고구려어 봉우리 성(省)은 생(生)과 같은 음


'생'이라는 말도 그중 하나다. 순우리말에 산이나 산봉우리를 지칭하는 말에 '수리'가 있다. 이 말은 지금도 남북한을 막론하고 전국에 산재한다.

1750년쯤 제작한 '해동지도 제주삼현도'의 어승생오름. 다른 오름들과 방향이 다르다.

대체로 수리봉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는데 수리가 봉을 지시하므로 수리봉이라는 말은 봉우리+봉우리 혹은 수리+수리인 셈이다. 예를 들자면, 강원도 원주시 수리봉, 충북 단양군 수리봉, 경기 가평군 수리봉, 충남 부여군 수리봉, 강원도 평창군 수리봉, 강원도 정선군 수리봉, 은평구 삼각산의 수리봉, 황해북도 연산군 수리봉 등이다. 경기도 남양주 소리봉은 이전에는 수리봉으로 부르다 지금과 같이 바뀐 경우다. 이렇게 수리봉의 이름으로 혹은 소리봉, 수리가 매를 지칭하기도 하므로 매봉, 매 응(鷹)자를 써서 응봉으로 변형하면서 가지를 친 이름들도 있다. 수리산으로도 쓰는데, 이 이름도 전국에 산재한다.

그렇다면 이 '수리'라는 이름은 어떻게 표기되어왔을까? 수많은 산 이름에서 修理(수리), 술(述) 혹은 술이(述爾), 수래(水來), 거(車, 수래 거), 주(酒, 술 주), 수(首) 혹은 수을(首乙) 같은 한자들이 나타나는데 이들이 바로 '수리'를 차자한 글자들이다. 이 말은 상(上), 봉(峰)과 대응한다. 법화경언해라는 책은 1463년도에 간행했는데, 여기에 취두산(鷲頭山)이라는 산 이름이 나온다. 우리말로는 '수릐머리산'이라고 풀었다. 이 이름의 취(鷲)는 '수리 취'라는 글자이고 두(頭)는 머리를 나타내는 글자다. 그러므로 꼭대기라는 뜻의 수리에 또다시 꼭대기라는 뜻의 두를 더하고 여기에 다시 산을 붙인 것이다. 결국 '꼭대기+꼭대기+산'의 구조가 된다. 요즘 언어 감각으로 보면 수리봉이 될 것이다. 위의 응봉산이라는 산이나 취두산은 모두 고유어와 한자어의 중복어형이다.

'수리'라는 말은 흥미롭게도 지명만이 아니라 인명이나 관직명에도 쓰였다. 고구려의 상가(相加(對盧)), 백제의 달솔(達率), 은솔(恩率), 덕솔(德率), 나솔(奈率) 같은 관직명에서 보이는 '-솔(-率)', 신라의 서벌한(舒發翰)의 '서-(舒-)'가 해당한다. 여기의 상, 솔, 서 등은 '사로', '솔', '수리' 등으로 발음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꼭대기 혹은 봉우리를 지칭하는 '수리'가 시대적으로 지역적으로 여러 가지로 표기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말이 어승생의 '생'과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다랑쉬오름의 '쉬', '수리'에서 기원 가능성


삼국사기 지리지에 그 해답이 있다. 이 책에는 술천군일운성지매(述川郡一云省知買)라는 대목이 나온다. 여기서 술천(述川)=성지(省知)의 대응구조임을 알게 된다. 좀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 두 말이 어떻게 같다는 것일까? 술(述)이라는 한자의 옛 음은 숱(sut)으로 보고 있다. 성지(省知)의 성은 '살필 성'이다. 이 성의 옛 음은 '생', 지(知)는 알 지로서 옛 음은 '티'와 '투'의 중간 정도였을 것으로 파악된다. 성지는 수투 정도로 발음했을 것이지만 모음 사이의 ㅌ 음은 모음동화에 의해 흔히 ㄹ로 변한다. 따라서 실생활에서는 시루 혹은 수리 등으로 점차로 바뀌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결과적으로 오늘날의 수리봉, 시루봉과 같은 지명이 되는 것이다.

어승생의 '생(生)'이란 고구려 지명에 나타나는 성(省, 생으로 발음)의 다른 형태로 '수리'의 뜻을 나타낸다. 결국, 어승생오름이란 '어슷하게 놓여 있는 봉우리' 즉, '한라산을 가로막은 오름'의 뜻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수리라는 말이 실생활에 쓰이다 보면 '쉬'로 축약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수리의 'ㄹ'은 어디로 갔나? '하나, 둘'할 때의 '둘'은 '둘 사람'이라고 쓰게 될 경우는 '두 사람', '솔나무'는 '소나무', '버들나무'는 '버드나무'로 쓴다. 이런 음절 사이에서 일어나는 'ㄹ'음 생략 현상은 우리말에서만 아니라 일본어와 만주어에서도 일어난다. 우리말 심방은 만주어로 '薩滿(살만)'이라 하는데 이 말은 '살만-사만-샤만'으로 발음되는 예의 하나다. 이런 언어 법칙을 살려 '쉬'에 ㄹ 음을 복원시키면 '수리'가 된다. 수리(峰)가 '수이'가 되고 이게 다시 '쉬'로 되는 것이다. 다랑쉬오름 혹은 달랑쉬오름이라는 지명의 '쉬'도 아이누어사전에 분명하게 분화구라고 명기되어 있으므로 이걸 근거로 '깊은 분화구가 있는 높은 오름'이라고 풀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보는 '수리'에서 기원한 '쉬'임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 <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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