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영화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 입력 : 2023. 11.24(금) 00:00  수정 : 2023. 11. 25(토) 08: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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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리의 하루'.

[한라일보] 하루가 너무 느리거나 또는 정신없이 빠르다고 느낄 때가 많다. 실상 주어지는 시간은 매일 똑같은데 말이다. 내가 잘 살고 있는 건지 남들에 비해 뒤쳐지고 있는 건 아닌지 혹은 내가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건 아닌지 또는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들이 두서없이 뭉쳐지며 머리가 복잡하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이렇게 마음이 분주해지면 질문이 늘어난다. 나에게 묻기도 하고 남에게 묻기도 한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정답을 원했던 것은 아닌 것 같고 대답을 듣고 싶어서였다. 변화무쌍하기도 하고 요지부동이기도 한 하루라는 징검다리를 건너면서 도착지에 놓일 발의 안위가 견딜 수 없이 궁금하다. 나는 어디로 어떻게 어째서 가고 있는 것일까. 이렇게 닿은 곳에서 나는 안전하고 평온할까. 원하던 것을 이루는 순간은 찾아올까. 앉을자리를 찾는 나비처럼 뱅뱅 돌면서, 달콤하지만 사실은 수행이기도 한 순간들을 쌓는다. 때로는 고통은 달고 인내는 짜릿하며 열매는 원했던 모양이 아니기도 하다. 내가 고심을 다해 빚어낸 반죽들인데 구워진 모양새는 내가 상상한 형태가 아닐 때 헛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눈물이 흐르기도 한다.

홍상수 감독의 서른 번째 장편 영화 '우리의 하루'는 닮은 구석이 있지만 다른 삶을 살며 비슷한 생각을 통과한 말을 꺼내는 두 사람, 상원과 의주의 하루가 교차되는 영화다. 상원은 배우로 일했던 경력이 있지만 현재는 일을 쉬고 있고 의주는 일흔이 넘어서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시인이다. 둘의 하루에는 방문객들이 있다. 상원에게는 사촌 동생 미소가 찾아와 배우를 하고 싶다고 고민 상담을 하고, 의주에게는 배우를 꿈꾸는 상국이 찾아와 여러 가지를 묻는다. 묻는 이들은 현재가 불안하고 미래가 막막한 상태다. 하지만 자신감이 없어 보이지 않고 예의를 차리는 일 또한 숙지하고 있다. 답하는 이들은 단호하고 의젓한 태도를 갖춰서 일견 여유롭게 보이지만 사실 자신이 하는 말들이 정답이 아님을 알고 있다. 생의 여러 면이 깎인 이들이 성심껏 내놓는 조언들이지만 어쩐지 그것이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진리는 아닌 것 같다. 맞는 말인데 말로는 설명되지 않음을 말하면서 깨닫는 표정들이 보인다. 이들의 대화는 끊어지지 않지만 듣는 이도 말하는 이도 흡족한 상태가 되지는 않는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대화는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다. 공간이 있고 인물이 들어선다. 인물들은 각자의 말을 꺼내놓고 서로를 들여다보는 순간들 마다 이야기가 태어난다. 그의 영화에서 대화는 공간이라는 재료를 요리하는 수억 개의 레시피다. '우리의 하루'는 묻는 이들과 답하는 이들이 정확하게 호응을 이루지 못하며 결국은 각자의 삶으로 다시 회귀하는 영화다. 좋은 시간을 보냈고 의미 있는 순간을 채집했지만 결국은 낮은 즐거움을 향해 포복하는 이들을 보여준다. 상원은 고양이 우리에게 간식을 주고 쪼그려 앉아 꽃을 쓰다듬는 일에서 가장 큰 즐거움과 행복감을 느끼고 의주는 의사가 만류한 술과 담배를 맛보는 행위에서 더 없는 해방감을 맛본다. 타인에게는 적절하고 합리적인 조언을 했지만 자신의 삶은 흘러가는 대로 두는 쪽이 그들은 오히려 좋다. 그것이 순수하고 즐겁게 자신의 시간을, 짧거나 긴 하루를 온전하게 채우기 때문이다.

 '맑은 눈을 가지고 자신을 에워싼 겹들을 벗어내고 진리에 목매지 말고 살아가라고, 생은 짧고 정답은 없다고'하는 상원과 의주의 말들을 겹치듯이 관객들에게도 전달된다. 명확한 듯 들리지만 당장 실행하거나 결과를 손에 쥐기엔 꽤 두툼한 조언이다. '우리의 하루'는 홍상수 감독의 수많은 전작들처럼 관객들에게 뾰족한 답을 내려주는 영화가 아니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는 작가의 의도, 연출의 목적, 정확하게 딜리버리되는 메시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우리의 하루'라는 영화를 보며 같이 하루를 보냈고 무언가를 나눴고 무언가가 바뀔 수도 있음을 희미하게 감각하게 만드는 만남의 흔적이 있을 뿐이다. 잘 안다고 생의 즐거움이 더욱 견고해지지는 않을 것이고 잘 알지 못한다고 삶의 아름다움들을 볼 수 없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의 하루는 불안과 불만 속에서 맡는 찰나의 향기로 완전해지기도 하고 가짜의 안전함을 비집고 나오는 진짜의 일탈로 온전해지기도 할 것이다. 누구의 인생도 퀴즈 쇼의 승자로 완성될 필요는 없는 거니까.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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